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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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19 19:5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삶의 만족도


삶은 사람을 압축한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각자의 삶이 있고 모든 삶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3일의 뉴스에 “대한민국 50대, 삶의 만족도 가장 낮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제목에 이어 세대별의 걱정거리로 “20대 일자리· 30~40대 교육· 50대 이상 건강”임을 실었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세대는 50대이며, 여성보다 남성이 삶에 불만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11월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공의 장소에 “이게 무슨 나라냐?”와 같은 문구들이 보인다. 이것은 크게 불만족한 감정들의 표출이 아닌가? 개인이나 국가의 국민에게 모두 삶에 있어서 만족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삶의 목적과 사는 희망이 아주 밀접하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있어서의 만족도는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게 할 만큼 중요한 삶의 근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매우 높다. 이 또한 삶의 만족도와 관계된다.
위와 같은 현재의 삶을 두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이러한 심각한 삶의 문제를 두고 자기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연구해야만 하는 주제다. 이런 생각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함께 생각하며 연구하고픈 심정으로 이 주제를 감히 던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목이 주어졌고, 그 제목에 따라서 몇 가지의 목차를 설정하게 되었다. 주제에 의한 제목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이 목차를 문제와 연구의 내용으로 제시하게 되었다. 삶의 만족도는 무엇과 관계되는가를 중심으로 잡아 보았기 때문에 아주 지엽적일 수도 있다.

첫째, 삶의 주인과 가장 관계가 깊지 않을까? 여기서 삶의 주인을 당연히 살아가는 개인 자신으로 생각할 것이다. 삶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개인 주체가 아니면 또 무엇인가? 인간 개인의 삶 즉 출생부터 죽음까지 일생을 이끌어가는 주관자가 있을까?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삶의 주인을 확인하여 확증하는 문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천명하였다. 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분의 이러한 선포는 구약시대를 점검하고 신약시대를 바라다볼 수 있는 중요한 말씀이다. 인간은 생각하면서 산다. 어쩌면 그 생각이 삶의 전부일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매여 있는 인간이 마음대로 이것들을 벗어날 수 있는가? 이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벗어나 자유자재로 이것들을 운용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삶의 주인의 자리가 아니겠는가?
둘째, 삶의 결과와 많이 관계될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만족도는 과거로부터 살아온 현재까지의 만족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삶의 결과는 삶의 열매이기도 하다. 이 삶의 열매가 진정으로 성령의 열매라면, 그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다. 이러한 것들은 위의 삶의 주인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현재의 대통령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는가?”라고 탄식하는 모습을 바라다보게 되었다. 과거에 대한민국의 어린아이들의 학창시절에 장래희망을 물으면 대부분 대통령이라고 답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삶의 만족도는 그 과정에서 완전히 평가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셋째, 삶의 희망과 관계되리라고 본다. 위의 삶의 결과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이라면, 삶의 희망은 미래의 시간이다. 지금까지는 그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는데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와 관계된다.
사람들은 좌뇌와 우뇌를 지니고 그 뇌를 통하여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땅 위의 사람들은 아마 돈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다면 진정한 만족은 무엇일까?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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