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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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25 19:3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무엇을 입고 사나?


옷이 날개다(The coat makes the man). 이 말은 동서고금에 익숙하다. 인간들의 일상사는 의식주의 중심이다. 제복(uniform)의 힘에 대해서는 대개 인정한다. 말(口)의 힘이 있는 것처럼 시각(目)의 효과도 있는 셈이다. 2017년도 5월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지나가고 있다. 교과서에서 듣고 보았던 역사가 4대 열강(미,중,일,러)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금도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 이 작은 나라 안에서도 대통령의 선출을 위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경쟁하였다. 동서남북을 둘러보고 살펴보아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오늘도 무슨 옷을 입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인 면과 깊이 관계되기 때문일 것이다.

의식주의 순서로 되어 있는 의미도 있을까? 이와 같이 이목구비의 체계로 되어 있는 것에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들어있지 않을까? 이러한 것들은 인간사에서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 요소들은 모두 건강과 돈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속담을 앞세우고 싶다. 그 말은 바로 “교회에 가까울수록 신과 멀어진다(The nearer to church, the farther from God)"이다. 이 속담을 내세우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일상사에 파묻히기 쉽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이 말이 얼마나 다반사인가를 우리는 보지 않았던가? 대통령이 탄핵 되는 바탕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 겉으로 드러난 휘황찬란함인가? 아니면 눈 밑에 가려진 어두움인가? 바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런 일상적인 의식주에서 제일 앞에 위치한 옷만을 끄집어내어 사람의 속과 연관시키고자 한다. 얼굴은 공기오염이나 추위방지 등과 같은 일이 아니면 가리지 않는다. 그 머리의 얼굴에 중요한 이목구비의 역할이 항상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목구비의 중요한 네 가지 감각기관에는 뇌와 목으로 연결된 일곱 개의 통로가 요긴하게 적재적소에 자리하고 있다. 이 네 가지의 출입은 모두 입는 옷과 관계가 있다. 물론 먹고 자고 하는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취지에서 당연히 옷을 입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렇게 일상사에서 중요한 필수적인 요소를 통하여 그보다 더 내적인 속의 옷도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문제를 살피고 제기하고자 한다. 위에서 가볍게 문제를 던져놓은 이목구비의 순서가 지니는 의미도 함께 염두에 두면서 고찰하고 분석하면 좋을 것 같다. 외적인 옷에서 내적인 옷으로 논리를 잡아서 크게 두 가지로 간단히 분석한다.

첫째, 겉으로는 옷을 입는다. 여기서의 겉은 몸 밖이다. 몸에 천이나 옷을 걸치며 입는 것이다. 짐승에게는 자체적으로 좋은 털이 있어 든든한 옷이 되기도 한다. 성경에는 옷이 인간의 타락 이후에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와 관계하여 의복사(衣服史)와 그 의복의 의미를 연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의 몸을 두고 볼 때 옷은 신체의 목 아랫부분을 중심으로 더 깊이 관계된다. 이제 아래에서 얼굴 중심으로 입는 힘을 제시하고 싶다.

둘째, 속으로는 힘을 입는다. 힘을 입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힘이 쭉 빠진다고 한다. 빠지는 힘을 다시 입지 않고 살 수 있는가? 힘이 너무 없어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위에서 겉으로 입는 옷보다 속에 입는 힘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 성령이 얼굴의 용어 중심으로 임한 사례를 제시한다. 귀 있는 자이고 욥의 봄이다. 입으로 말한 방언과 코로 숨 쉬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진리를 강조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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