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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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2 18:5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안전지대


‘안전 불감증’은 자주 듣는 말이다. 사회생활이나 개인생활에서 안전에 대해서 자각하는 정도가 매우 낮은 상태다. 어떤 면에서는 개인은 모두 안전에 대해서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생각하며 의식한다.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날마다 생존에 대해서 자각하든 못하든지 간에 본능적으로 고민하며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해서 특히 심각하게 느끼며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만난 다음이다. 이것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더 잘 알려지고 있다. 2014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한 나라의 정치적 판도를 바꾸어 놓을 만큼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사후 약 방문(After death, the doctor)”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Lock the stable door when the horse is stolen)”와 같은 속담은 특히 안전사고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일단 안전사고가 있으면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갈구한다. 그렇지만 평생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전하며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그 논리적인 설득력이나 인간들에게 호소하는 측면에서 큰 동감을 불러온다. ‘생(生)’은 사람이 태어나 땅 위에 서는 모양이며, ‘노(老)’는 긴 머리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모양이다. ‘병(病)’은 사람이 기대거나 누운 모양이며, ‘사(死)’는 땅 밑에 파묻힌 뼈들의 모양이다. 이렇게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사람의 모양을 각도로 표현하면, 서 있는 모양부터 땅 밑에 파묻힌 모양까지의 각도 변화는 180도이다. 이 시간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크게 저항할 수 없으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생로병사’에 대해서 아주 설득력 있게 안전장치를 취한 것이 아마도 ‘윤회(輪廻)’일 것이다. 이 윤회는 윤회생사(輪廻生死)의 준말이다.
여기서 논하는 안전지대는 생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편적인 안전한 체계에 대한 제의(提議)를 내놓고 싶다. 의식주를 생활의 기본으로 하는 인간에게 중심을 두고, 시간적인 측면과 공간적인 측면을 고려해 보았다. 안전지대는 언제이고 어디이며 어떤 사람의 처지인가.
첫째, 잠든 때이다. 위에 언급한 생로병사에서 ‘죽음’은 완전히 잠든 것이다. 의식주에서 잠은 세 가지와 모두 깊이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의식주의 생활에서 잠을 가장 중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은 자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안전사고를 당할 확률은 매우 높다. 잠은 뇌(腦)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정신상태와 안전지대는 매우 밀접하다. 정신상태와 안전사고의 발생은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의 생로병사를 사람 몸의 각도로 표현하면 거의 45도씩의 차이를 가진다. 잠들었을 때의 위치는 땅(바닥)에 붙어서 가장 낮은 곳이다.
둘째, 낮은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앉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서 있다면 상대적으로 더 불안하다. 공사 현장이나 화재 시에 밑에 있는 것보다 위에 처한 경우에 안전사고가 더 크게 발생한다. 높을수록 떨어지기 쉽다. 공간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신분상의 위치도 높을수록 더 크게 떨어지기 쉽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이 논리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추락사고는 보통 높은 곳에서 발생한다. 잠든 때와 낮은 곳은 매우 밀접하다. 그러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는 무엇인가? 여기서의 높은 곳은 공간상이나 신분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오히려 어떤 경지나 소속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인간들의 보다 좋은 안전지대는 어디에 소속해 있는가와 크게 연결되어 있다.
셋째, 속(屬)한 자(者)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이들은 당연히 불안하다. 소속감은 사람들에게 큰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참다운 안전지대에 속해 있다는 확신과 확증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 소속감이 고난을 당하는 이에게 참다운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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