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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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09 18:3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늙지 않고 자라갈 수 있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매우 논리적이며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간상 모든 인간에게 다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 육신이나 신체적으로 모든 사람이 각자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체계적인가를 보기 위하여 ‘생로병사’란 말의 어원을 짚어 본다. ‘생(生)’은 사람이 태어나 땅 위에 서는 모양이며, ‘노(老)’는 긴 머리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모양이다. ‘병(病)’은 사람이 기대거나 누운 모양이며, ‘사(死)’는 땅 밑에 파묻힌 뼈들의 모양이다.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변화는 180도이다. 이 시간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크게 저항할 수 없으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생로병사는 위와 같은 상황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특히 매주 진행되는 방송 프로그램 속에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어가고 있다.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21세기는 100세 시대를 공공연히 장담하고 있다. 이런 관심의 깊은 이면에는 진정으로 길이길이 살고 싶은 소망이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방송사의 사회자는 90세가 넘어서도 씩씩하고 활발하게 여러 곳을 멀리까지 다니면서 일정을 잘 소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그 사회자를 보면서 자신을 한번 보게 된다.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둔 대부분의 젊은 층들은 100세 가까이 건강하게 활동하다가 조용히 자는 중에 그 인생이 마무리되기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 시대의 큰 조류 속에서, 그것과 관련된 주제를 던져 문제를 풀어가려는 자세로 몇 가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생로병사는 역사적이며 인류사적인 설득력이나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반대하거나 부정하여 색다른 문제 제기나 이론을 제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위의 주제를 제기하는 필자에게 1989년 5월 12일 석가탄신일과 30년이 지난 2019년 5월 12일의 날이 연계되어 연상되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를 더 던지고 싶은 것은 단순한 30년의 경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30년의 시간 속에 밀레니엄(millennium)이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비롯하여 다각도의 관점과 시각으로 분석되기를 바라면서, 간단히 세 가지로 주제에 접근하여 분석한다.
첫째, 육신은 늙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늙어간다는 것은 시간의 경과와 밀접하다. 육신이라는 의미 속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고대 철학사에서 ‘영혼불멸설’은 일찍 제기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영혼을 상정하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로병사에서처럼 남자와 여자로 출생하기 때문에 늙어갈 수밖에 없다. 이것으로 늙어갈 수밖에 없는 근거나 이유를 제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육신이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는 것은 늙어가는 것과 관계있다는 점에 훨씬 가깝다.
둘째, 영혼은 자라갈 수도 있다. 위에서 ‘영혼불멸설’이라는 철학의 큰 가설을 육신과 관련되기 때문에 제시해 놓았다. 여기서는 이러한 가설의 큰 문제에 그 진위를 논할 수 없다. 영혼의 의미를 짚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영혼이 이 주제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과 시각으로 자리매김했을 뿐이다. 위에서 제기했듯이 영혼이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질까? 다시 말해, 남자와 여자가 육신적으로 다르듯이 남자의 영혼과 여자의 영혼으로 구분되어 있을까? 육신이 늙어가듯이 영혼은 오히려 자라갈 수 있음을 제기하고 싶다.
셋째, 죽음을 향하여 자라간다. 죽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죽게 되면 돌아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디로 돌아갔다는 말인가? 돌아간 것이 아닌데,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말로만 돌아갔다고 하는 것일까? 어쨌든, 죽음의 무게는 대단하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한편, 죽음을 두고 자는 것에 비유한다. 잠과 성숙과 성장!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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