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16-12-28 21: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01


<한국크리스천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동을 소원하며 특별대담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특별대담은 2016년 12월 21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과 배윤리(화요성경공개강좌 사회담당) 권사가 대담자로 참여하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회개혁론』을 집필한 배경과 동기는

저는 평생 성경을 알고 싶어 연구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교를 다녔고 성경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면서 진리를 알려주려고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른바 ‘목회 성공’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로 세워지는 교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 교회를 양육하고 설립해가는 문제는 처음부터 어려웠습니다. 장로교의 대표 교단인 합동개혁, 고신 그리고 통합 측과 은퇴 무렵까지 진리 문제로 싸워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부담스러워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더 분명하게 성경적 교회관을 제시할수록 성도들과 후배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짐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적 우려가 많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치면서 서서히 온건하게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서구 교회의 몰락은 물론 한국교회의 침체를 보면서 마음에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은퇴 무렵에 총회장(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측)까지 하면서 교회 개혁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온건한 개혁은 현 교회 체제로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확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 개혁’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이렇게 개혁되어야 한다고 소속 노회 목회자들과 장로님들을 모시고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했습니다. 모두 공감했으며 제가 몸 담았던 교회부터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재정과 행정 그리고 교육 방면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계속 지켜보았으며 그 험증을 바탕으로 개혁파 선배들이 세우고자 했던 성경적 교회가 무엇인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그 동안 성경을 연구하면서 가다듬어 놓은 교회의 모습을 개혁론을 통해 밝히고 가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교회를 염두에 두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글로 밝혀야겠다고 생각하고 『교회개혁론』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개혁론』을 출간한 역사적 의미는

독일에서 시작된 16세기 종교개혁은 엄청난 사건임에는 누구보다 공감합니다. 그러나 미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학교에서 개혁파 신학을 공부하면서 종교개혁의 근본원리이자 귀한 구호인 ‘성경 권위’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계승하겠다는 마음도 다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쳤던 서구 교회가 몰락과 패배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기에 제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왜 종교개혁은 완수되지 않았는가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바로 성경 권위를 강하게 부르짖은 것처럼 성경의 진리성을 확증하지 못한 것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성경을 신학적으로 또한 해석학적으로 성경 진리의 권위를 확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해석학의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개혁파 선배들의 일관된 해석의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성경 자체의 권위에서 비롯된 신학을 수립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60여 년 동안 10년 이상의 신학과정 속에서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관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셨으며, 결국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통해 16세기 종교개혁의 근간이었던 성경 권위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신학총서가 밝혀 놓은 성경 진리를 통해서 성경 권위는 분명하게 확보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문서설로 훼손당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증뿐 아니라 하나님 존재에 대한 확증까지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권위와 진리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교회개혁론』을 통해 펼쳐낸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서구 개혁파 교회가 걸어온 진리 침체와 몰락은 이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확신과 용기와 소망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신학에 바탕을 둔 『교회개혁론』을 통해 성령께서 세우시는 성경적인 교회를 설립하게 하시는 일에 우리가 선한 종,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집필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에 한국교회 곳곳에서 외치는 교회 개혁에 대한 소리를 들으면서 특별히 저서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한국크리스천신문’ 편집국장님께서 한국 교계와 신학계를 취재하면서 교회 개혁의 과제는 정말로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공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성도들이나 교회를 전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 개혁의 출발점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철칙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는 상명하복의 명령체계가 절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힘과 권력이 무절제하게 횡행하는 정치기구와는 그 질이 다르다고 봅니다. 교회는 ‘협의 기구’이어야 합니다. 성경 진리를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현행 기독교의 종교법은 성경 권위라는 말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데만 급급했지, 실제 교회 운용은 성도들이 합력하고 협의하는 기구체의 면모와는 거리가 너무 멉니다. 협의 기구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함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도들의 신령한 유기체로서의 모임 기구입니다. 교회 개혁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는 ‘신앙의 자유’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자유라는 말은 육체적 방종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성경을 깨달은 자유는 전적으로 성령께 사로잡힌 영혼의 상태에서 나오는 자유입니다.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행위가 될 때 믿음의 행위가 가능하며 이럴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서문 중 ‘교회 개혁을 소원하면서’에서 성경이 밝히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해 성경 말씀으로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몸 된 신령한 유기체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저는 『교회개혁론』 서두에서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참조하길 바랍니다.
앞의 질문과 관련해서 질문을 이어가겠다. 앞의 교회에 대한 정의로 볼 때, ‘성령의 교통하심’이란 무슨 뜻인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당신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창세전에 이미 확정하신 교회를 실제로 설립하기 위해 자신의 영으로 감동하신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이 모두 기록되지 않았을 때는 사도들로 직접 진리를 가르치게 함으로 교회를 창립하셨습니다.
그 후 사도들로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여 사도 다음 세대부터는 기록한 성경을 깨닫게 하심으로 즉 성령께서 말씀으로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교통하게 하셔서 교회를 설립하십니다. 성령께서 성경 교육을 통해 성도들이 사귀도록 하시는 사건이 바로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은 참석하는 모든 성도가 진리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자기 수준에 맞는 단계별, 수준별 교육을 마련하는 것이 그 결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첨가한다면, 먼저 깨달은 자가 다른 형제에게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께서 교통하시는 사역이며 이것이 교회 설립과 나아가 교회 개혁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한때는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설교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교회를 말씀으로 개혁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혼자 고민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교통하심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이 한국교회를 개혁해 주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교회개혁론』을 썼습니다. 정말 성령의 교통하심만이 교회 개혁을 가능케 하며,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으로 성경 권위를 확증하도록 해 주신 만큼 성경신학을 통해 진리에 갈급한 한국교회, 나아가 세계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로 세워지리라 확신합니다.
서문 중 ‘출판에 앞서’에서 ‘성경이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옳은 것은 옳다 하라 명하신 말씀에 강권을 당하는 것뿐이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 말씀에 강권을 당했는지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목회 이념은 성도들에게 ‘절대로 명령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어느 해 교회학교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여름 수양회를 개최하면서 대회 주제를 이렇게 걸었습니다. ‘알아서 하자!’. 교사들이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식사도 순서도 스스로 알아서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개혁론』의 핵심은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자!’입니다. 평생토록 목사의 명령을 따라서 움직이는 수동적 교인으로 활력을 잃어가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교회’ 즉 ‘신앙의 자유가 이끌어가는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절대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든 성도에게 알려주고, 성경 진리를 기준으로 성경적으로 ‘옳다’ 혹은 ‘아니다’만을 알려주자. 이것이 저 자신의 목회 이념이었습니다.
바른 진리를 가르치다가 한때 교단들에 의해 이단 시비에 휘말리며 서서히 진행하는 온건한 교회 개혁을 추진했지만 한국교회가 부패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경적 교회가 어떤 것인가를 앞에서 말한 대로 분명하게 밝히고 싶었습니다. 깨닫게 하신 교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것이 나의 책무이자 사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를 향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강론 15권, 사도행전 강론을 집필할 때 개혁을 강조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구약 강론을 쓸 때는 교회 개혁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약 강론을 쓸 무렵은 총회장 경험을 하면서 더 이상 현행 교회 체제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절감하고 교회 개혁을 구상하고 있을 때였으며, 그리고 실제로 복음서 강론을 집필하고 사도행전으로 넘어가면서 매일 매일 나오는 말씀이 모두 ‘교회’였습니다. 성령에 의한 성취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사도행전을 통해 강하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말씀에 사로잡힌 채, 기존 체제에서 누리는 목회자들처럼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목숨을 걸고 교회 설립에 쓰임 받았던 사도 바울 앞에 가면 정말로 혼이라도 날 것이라는 자책에 교회 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을 대체한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신 것인지

사도신경의 구성은 삼위일체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신앙고백을 한 것이 요지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은 성경 자체에 충실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론을 집약해서 고백한 것입니다. 주로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타난 ‘성경신학적 교회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기록은 하지 않았지만 개념 하나하나 모두 성경 구절을 근거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징은 문장을 자르지 않고 긴 호흡의 문장 하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의도적입니다. 교회에 대해 처음 예정하신 때부터 최후 승리까지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끝까지 자신이 하신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려고 긴 문장으로 적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상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빌라도에게 고난받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유대인 동족에게도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거룩한 공회’라고 하였는데 이는 로마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공교회’ 개념에 근거하는 성경적이지 않은 개념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만 더 지적하자면, 요즘 일반적으로 교회를 ‘공동체’라고 달리 부르는데, 신중해야 합니다. 교황청이나 국가가 공인해 주는 단체로서 ‘공동체’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신령한 유기체인 교회라는 의미를 왜곡시킬 우려가 큰 말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신령한 유기체입니다.
성경에 대한 ‘종합적인 의미 분석’의 중요성은

성경을 내용 중심이 아니라 ‘의미 중심’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의 근본원리인 ‘성경 권위’ 회복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성경 권위는 구호나 단마디 명제로 증명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모든 사실 내용을 통일성 있게 일관된 논리를 찾아 전체적 의미로 구성하여, 성경만 하나님 여호와의 자기 계시의 절대적 증거이며 동시에 신 존재 증명을 확증하는 완전한 계시 기록임을 보여야 합니다. 성경 전체의 완전한 구조와 구조에 나타난 단일한 의미를 밝혀야 성경 권위가 확증됩니다. 그러나 전통 교회는 내용 자체에 빠져서 강론이 아닌 도덕적 교훈의 형태인 설교 모드로 진리를 결국 왜곡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전체 의미를 밝힐 수 없다면, 신학적 해석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 책을 스스로 평가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제가 1987년부터 3차 개정까지 거듭하면서 쓴 『의미분석 성경개론』(진리의 말씀사, 2005)은 성경 진리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숨 막힐 정도’의 물샐 틈 없는 구조임을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으로 미완의 종교 개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무기가 구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세상에 존재하는 거짓된 교회와 참된 교회 모두를 하나님께서 섭리하십니다. 이단도 거짓도 쓸모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단과 거짓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 때까지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참된 교회 안에 거짓 교회가 있을 수 있고, 거짓 교회 안에 참된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가라지를 뽑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참과 거짓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기준의 ‘이분법’으로 성급하게 나누어 버리는 것은 위험한 판단입니다. 표면적으로 현재 거짓된 교회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시험하고 교육하는 과정에 처하게 하셨을 수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하도록 하신 섭리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셔서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증거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보고 어느 교회가 거짓된 교회다, 참된 교회다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단지 우리는 항상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기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개혁이 필요한 교회입니다. 탕자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돼지우리까지 가서 깨닫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의 섭리’라고 봅니다.
교회 개혁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개혁은 무엇인가

개혁은 교육 개혁이 먼저 이루어지고 다음에 체제 개혁이 따라가는 것이 순서상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기존 교회 체제가 법적으로 교육 개혁을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총회 헌법 등 각종 교회법과 의식과 절차 등이 비성경적인 체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한 규제들이 교육 개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육 개혁 없이 체제 개혁을 한다고 해도 개혁이 되진 않습니다. 가령, 하나님께 교회를 헌금한다고 해 놓고 교회나 재정을 혈족에게 물려줍니다. 이 경우 제도 자체를 고친다고 교회 개혁의 본질을 완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습을 순간에 차단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 하나 고친다고 교회가 성경대로 개혁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교육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도 농민 폭동이 일어나 당시 권력과 재산을 가진 자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말은 교회 개혁은 교육 개혁으로 모든 성도가 반드시 우선 성경 진리를 철저하게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알게 하시는 만큼 교회 개혁이 추진되도록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른다고 무시하거나 쫓아내서는 안 됩니다. 지방의 어떤 교회들을 보면 장로님부터 전교회가 비진리로 쏠렸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말로 성경 진리에 기초를 둔 교회를 다시 세우고 진리로 양육을 받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개혁론』을 쓰면서 누구에게나 ‘자기 의지로 개혁하려고 하지 말고 개혁되도록 진리를 알려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아는 만큼 체제가 갖추어져 갑니다.
교회 개혁을 단행할 때에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교회 개혁에서 유의할 점은 우선은 교육 개혁입니다. 성경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적지 않은 내용입니다. 인간적으로 조급한 마음에서 서두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물리적인 힘으로 개혁하면 안 됩니다. 서구교회가 그래서 실패한 면이 있습니다. 분위기는 교회 개혁을 향하고 있다고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서구의 수많은 신학전문대학이 있음에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핵심은 진리의 내용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교훈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올바른 성경진리로 올바른 교육 방법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그래야 소수 특권층이 교육을 독점하는 전횡도 사라지고 성경 권위의 확립과 더불어 종교개혁의 또 다른 원리인 ‘만인제사장’의 원리도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교회개혁론적 차원에서 개신교의 미래에 대한 당부 말씀을 부탁드린다.

교회 개혁과 관련된 미래에 대한 당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500년 전 성령 하나님께서 시작하셨던 제일 중요한 일, ‘성경 권위’ 회복과 그에 따른 교회의 원형을 회복하게 하시는 일(reformation), 이러한 일에 지체들이 함께하여 사랑하는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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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02
원어 성경과 성경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