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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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0 19: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개혁론』 저자와의 특별대담_05

<한국크리스천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완의 16세기 종교개혁이 성경 진리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완성으로 매듭이 지어져가는 제2의 종교개혁운동을 소원하 며 특별대담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특별대담은 2017년 3월 15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


1. 개혁파 교회의 교육은 총체적으로 부패되었다고 지금까지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교회 몰락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혁파 교회의 알파와 오메가는 ‘성경권위’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성경권위’라는 개혁의 기치만 명제적으로 선언하는 데서 그쳤습니다. ‘성경권위’는 성경 내용이 아닌, 내용에 담긴 단일한 통일된 의미를 확보하지 못하면 지킬 수 없습니다. 말씀의 권위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교회설립의 토대이며, 이로써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할 수 있습니다. 개혁파 교회가 이 중차대한 성경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결과로 몰락의 길을 걸었고, 결국 총체적인 부패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2. 교회의 본래적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의 중요한 요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까 진리에 대한 확신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으로 성경적인 교회 모습과는 너무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감당할 수 없는 은총을 저에게 허락해 주셔서 지난 2014년 3월 무렵에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 진리의 말씀사)’ 20권을 세계 기독교계에 제시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제 자랑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신학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고백하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에만 기반한 신학인 성경신학이 무너지는 세계의 개혁파 교회와 부패한 한국 교회를 회복할 수 있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경신학을 함께 연구하면서 성경권위를 같이 확인하고 하나님 여호와의 존재를 확증할 수 있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3. 성경에는 성경 교육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까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속화된 교회교육을 극복할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령 감동을 받고 깨달은 성도는 누구나 성경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가르칠 수 있습니다. 모세를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 예수님과 사도들은 특정한 공간에서 특별한 의식을 만들어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제사의식도 어디까지나 말씀의 권위를 기억나게 하는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공간과 사람을 구별하여 그 사람만 정해진 곳에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성경적이며 지치고 우매한 성도의 영혼을 두 번 속이는 범죄입니다. 
성경 교육은 자유로운 교육입니다. 사도 바울의 교훈처럼 성경교육은 신실한 형제들에게 어디서나 가르치고, 깨달은 신실한 성도가 또 다른 성도에게 전하는 방식(신령한 산 제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신학총서’는 일만 페이지를 훨씬 넘습니다. 많은 형제들과 동역자들이 우선 성경적인지 확인하고 가능한 간명하게 성경진리를 전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길 바랍니다. 빠른 시일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마땅한 바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신학총서’는 여기에  역점을 두고 기록했습니다.   
4. 성경 교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개혁파 교회의 이상과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개혁파 교회의 이상과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올바른 교회 설립’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반드시 성경진리에 토대를 두고 세워지는 교회일 것입니다. 개혁파 교회는 ‘성경권위’를 주장하면서 시작했는데 점점 세속적인 관습과 제도가 지배하는 부패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이단들의 출몰을 지켜보면 이단들이 제도나 형식을 깨고 더 잘 파고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개혁파 교회는 이단들이 득세할 때 성경권위가 아닌 세속적인 규범과 제도를 만들고 있고, 그러다 보니 전통 교회에 신물이 난 성도들이 성경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는 이단에 매수되는 안타까운 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스승이신 보혜사 성령께서는 하나님 계시 기록인 성경을 완결하신 분입니다. 동시에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깨닫게 하셔서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그 결과 성도들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경외케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올바른 교회를 세워주시길 기도합니다.
5. 성경 교사인 목사는 진리의 사명자가 아닌 직업인이나 기업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저자께서는 에베소서 4장 11절 ‘목사와 교사’를 ‘목자인 교사’로 번역하셨는데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개신교의 부패 원인은 무엇보다 ‘목사’에 대한 성경적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목사와 교사’는 ‘성도의 영혼을 양무리를 돌보는 목자인 교사’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한 개념으로는 신약성경에서 앞의 한 곳에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를 이용하여 목사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여 교회에서 모든 실권(강단권, 인사권, 재정권)을 장악하는 근거로 사용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목사를 최고의 권력자로 만들어 놓는 순간부터 교회는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권사’라는 명칭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단지 여자 성도들을 권면하고 교육하는 일에 봉사하는 은사의 한 부분입니다. 목사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단지 목사는 성도를 돌보는 일에 장로와 권사와 달리 가르치는 은사를 수행하는 자입니다. 결코 교회에서 군림하는 자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목사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에 결국 교회 부정과 부패의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로마 가톨릭을 보면서 ‘저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던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후배들이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타락하는 것은, 제가 볼 때, 칼빈이 분명하게 ‘이것이 성경적이다’고 충분하게 밝혀주지 못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6. 개혁파 교회에서 성경 공부보다 의식적인 예배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성경교육과 관련해서 볼 때, 이로 인한 폐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강단권이 목사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목사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설 수 없고 또한 그 구별된 자리에 서서 말하면 비성경적인 불합리한 말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하여 성도들을 억압하는 멍에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강단권이란,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잘 깨닫게 해서 건전한 말씀이 선포되게 하시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감당하는 사명으로 다가오는 것이지 결코 성도를 다스리는 ‘권한’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목사의 강단 독점은 운영 독단 그리고 재정 독식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듭니다. 이는 종교적 의식이나 형식 혹은 제도를 통해 더욱 부패의 늪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7. 16세기 종교개혁은 인쇄술의 발달을 통해 성경을 전 유럽으로 보급했습니다. 개혁파 교회가 점점 부패하는 가운데서 ‘손 안의 미디어’ 스마트 폰을 비롯한 최첨단 미디어의 발달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은총 영역에서, 종교개혁 시기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과학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 세계에 알게 하시는 중요한 방법으로 최첨단 미디어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출판, 신문, 방송, 인터넷, 스마트 폰 등의 주요 수단으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통해 성경진리의 말씀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대개 스마트 폰을 통해 세속적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이기적 집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올바른 성경진리의 정보를 확보하면 할수록 오히려 성경진리 중심, 하나님 중심의 ‘진리연합체’를 만듭니다.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이러한 모임은 그리스도가 머리 되시는 신령한 교회이므로 모임의 횟수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일자, 요일 등등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 번도 좋고, 극단적으로 평생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해도 하나 된 모임의 결속력은 결코 약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께서는 500년 전 중세 암흑기를 거쳐 ‘성경권위’를 회복하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어떤 희망을 개혁파 교회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종교개혁 후 500년 동안 개신교 신학의 유일한 과제는 ‘성경권위’를 확증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 종교개혁이 노력했으나 결국 18~19세기 자유주의에 의해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신정통주의 운동으로 회복하려고 했으나 성경권위 문제는 미궁에 빠져있습니다. 10여 년 전, 저는 제네바 아카데미와 도쿄 기독교대학의 신학교 교수들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서구 신학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했습니다. 자유주의의 논리에 완벽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성경의 의미적 통일성과 구조적 완벽성을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통해 찾게 해 주셨습니다. 자화자찬이라고 해도 너무 감사하고 기쁜 나머지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성경신학을 통해 확증했다는 것은 엄청난 대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경신학총서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중국어로, 영어로, 그리고 히브리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번역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이 모두 기자가 질문하신 바로 그 희망의 징표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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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로고스의 운동력과 소피아의 이동
원어 성경과 성경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