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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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3 20:0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원어 성경을 배우는 자세와 방법


성경 히브리어와 성경 아람어 그리고 성경 헬라어를 배울 때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세상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성경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 언어리론과 방법론을 물리쳐야만 한다. 현대신학을 보면 원어성경을 제아무리 연구하고 내세운다고 해도 성경관 자체가 빗나갔다. 이를테면 원어성경이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전통본문과 비평본문 두 가지이다. 하지만 모든 신학교에서 문서설 같은 자유주의신학을 앞세워 편집한 원어 성경으로 가르친다. 우리가 다수 사본이라는 공인 본문으로 공부해야만 한다. 계시록으로 기록계시를 마감한 뒤 부터 교회에 보존하신 원어 성경을 16세기에 성경 번역을 통하여 재확인한 유산으로 이어받는다. 
처음 기록한 순수 원본이 지금 없다. 모두 사본들뿐이다. 사본의 진위를 성경 자체가 증거한다. 또 성경 번역을 통하여 증거한다. 16세기 이후 엉터리 사본학이 나타나면서 지난 500년 동안 구약과 신약 원어 성경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분야를 원문비평학 또는 사본학이라고 부른다. 백해무익한 헛소리이다. 하지만 원어 성경연구와 출판한 서책들이 거의 모두 이런 신학사상으로 연구한 원어를 나타낸다. 원어 성경을 배울 때 필요한 서책들인 문법, 사전과 방법을 보면 세계 신학교에서 모두 자유주의비평판 원어 성경을 근거로 만들었다. 전통본문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 원어를 제대로 배우는 교재도 찾기 어렵다. 심각한 때이다.
정리하면 흔히 TR이라고 부르는 원어 성경을 붙잡아야만 한다. 원어 성경을 가지고 성경번역이 이루어지는데 세계성경공회 모두가 비평신학으로 편집한 원어 성경으로 번역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드물고 안다해도 대책이 없다. 우리나라도 보면 전통본문을 가지고 개혁자들의 번역원리를 따라서 번역한 성경이 아직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19세기 후반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음을 보면 이미 원어성경이 변질된 때이다. 번역성경도 무너지기 시작한 때이다. 먼저 번역한 중국어 성경도 비평판 원어 성경의 영향을 받았다. 여러 가지 수법으로 전통본문을 교묘하게 뜯어고치고 세상 언어학과 방법론으로 거짓으로 원어 성경을 만들었다.
원어 성경과 번역 성경을 아무거나 받아도 된다고 가르친다면 이미 빗나간 성경관이다. 신학과 신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구라도 언어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틀이 잡혔는지 알기 어렵다. 전통 원어 성경이 공격받고 성경 번역이 빗나갔는데 이것을 알고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거나 문제점을 안다고 해도 그 내용을 올바로 마련해야만 비로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신학으로 대체하여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번역 성경에 들어간 빗나간 여러 요소를 어떻게 가려내겠는가? 우리말 성경들을 보면 가장 낫다는 개역한글판도 전통 원어 성경에서 뜻 없이 까닭 없이 가감한 낱말이 엄청나다.
앞에서 원어 성경이 어떤 상태인가 간단히 말했다. 아울러 번역 성경도 어떻게 변질했나 밝혔다. 이것을 성경 내용 자체에서 앞으로 직간접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다. 《알란트-네슬》과 《유비에스, UBS》판 신약헬라어성경과 《BHK / BHS / BHQ》판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물리쳐야 한다. 타나크라는 유대인 구약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신학계와 세계성경공회들을 이미 장악했다. 여기에는 로마 카톨릭과 유대주의가 주도한다. 바른 교사와 바른 성경을 붙들고 바른 방법으로 배워야만 한다. 이른 바 개혁신학계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주의비평신학 꽁무니를 따르기 바쁘다. 교리가 개혁교리라는데 원어 성경이 비평신학관이라니 빗나갔다.
원어 성경을 편집하고 출판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수법으로 성경을 망가뜨렸다. 15세기 후반에 인쇄술이 나와서 원어 성경분야가 새로와졌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지만 편집하는 사람의 술수가 얼마든지 들어간다. 본문 말고 여백과 난하에 여러 각주를 달았다. 본문 자체에도 모음부호라든가 문장부호 따위로 보이지 않게 손질했다. 이런 모두를 분별해서 골라내야만 제대로 원문을 가르치고 배운다. 우리말 번역성경에 무관심하다면 원어 성경이야 오죽하겠는가? 원어 문법류와 원어사전류를 보면 옛날에 간간이 전통본문을 근거로 출판하던 것을 찾기 어렵다. 도서관에서나 구할 수 있다. 비판학자들이 만든 원어교재들로 배우다간 빗나간다.
전통 원어 성경으로 만든 교재를 가지고 정통발음을 앞세워서 배워야 한다. 원어를 배울 때 암기식으로 가르친다든가 부분에 치우쳐서 낱말이나 분석한다면 하나마나이다. 적어도 우리말 성경처럼 읽고 이해하며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목표 삼고 공부해야 맞다. 서구신학이 가르치는 방식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자유주의신학에 물들어서 망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원어로 구약과 신약을 철저히 읽고 연구하는 개혁신학자들이 하나도 없다. 부분을 다루었을지 몰라도 깔뱅 이후 원어 성경 내용 전체를 깊이 섭렵한 사람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비평신학이 주름잡는다. 말로만 성경절대권위를 외칠 뿐이다. 전통원문으로 맞서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언어식민지인데 의식하지 못한다. 신학조차 그러하다. 원어 성경 공부도 서구 방식과 현대 이스라엘 방식으로 한다.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알 수 없다. 언어의 속성을 보아도 그렇고 언어발달사의 견지에서도 그렇다. 알파벳만 보아도 현대어로 갈수록 엉망이기에 원조 언어를 제압할 알파벳이라야 한다. 소리와 문자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서구언어학이 헤맨다. 이것이 원문비평을 통하여 들어와서 원어 성경을 철저히 망가뜨렸다. 우리말을 옳바로 알고 망가진 것을 개혁해야만 한다. 적폐청산 1회가 다름 아닌 우리 말글을 뜯어고침이다. 무엇이 개혁이고 그 밑거름인 성경관인가? 우리나라 신학분야가 아직도 갓난쟁이다.
원어 성경을 고를 때 창세기 1장 1절 첫 글자인 베이트가 큰 것을 확인하자. 또 창세기 2장 4절을 한 문장으로 번역한 역본성경이라야 바르다. 전통 본문이 담긴 구약성경을 구하기 어렵다. 신약은 스테화노스 판으로 구하면 좋다. 같은 전통 본문이라도 개혁자들 체취가 풍긴다. 전통 원어 성경을 펴놓고 초대교부들 글과 16세기 개혁자들 글을 읽어야 속뜻을 깨닫는다. 전통 원어 성경을 펴놓고 자음과 모음을 붙여서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말뜻과 문법을 몰라도 알파벳을 보고 읽는 것만 알아도 된다. 큰소리로 읽되 정확하게 소리내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한 음절씩 되풀이하여 소리낸다. 창세기와 마태복음 부터 동시에 읽으면 된다.
문법을 앞세워 원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알파벳을 간단히 익히고나서 낭독을 연습한 다음에 곧바로 원어 성경 자체를 공부하는 게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발음을 할 수 있는 대로 정확하게 내야한다. 그리고 성경어휘 전체의 성깔을 알고 원어 본문을 통독으로 해석해나가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할 기본 어휘를 중심으로 다루다보면 낱말도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읽기가 되면 동사어근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동사를 잘 알아야 그 언어를 안다고 할 수 있다. 동사 어근에서 부정사와 분사와 각종 말투가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말 정음음소와 문자원리로 원어 성경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또 깊이있게 깨달을 수 있다.
그 성경신학 원리처럼 원어 성경도 마찬가지로 전체 흐름을 알아야 한다. 전체를 모르면 부분에서 허덕이고 헤맨다. 성경을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면 얼마나 쉽고 깊이 깨닫게 되는가? 우리가 원어를 잘못된 선입견과 방법으로 오해했다. 누가 어떻게 왜 가르치는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어 방면에도 거짓 교사들이 넘친다. 성경 안에서 나타난 원리와 방법으로 원어 성경도 배우는 게 맞다. 또 우리말로써 원어도 새롭게 개혁하여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말을 아는 만큼 원어를 안다. 우리말을 잘 발전시켜야 원어도 잘 가다듬는다. 서구신학이 언어의 한계로 헤맨다. 알파벳 글자가 소리에 일치하지 않기에 문법이라는 틀에 얽매인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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