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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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01 08:3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8 (11〜13장)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8 (11〜13장)
1. 장로교 헌법의 ‘교회 예배의식’ 조항은 얼마나 비성경적인가?

객원기자  오늘도 좌담회에 참석해 주신 원로를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지금 장로교 헌법을 조항별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비판의 기준도 성경이며 대안도 성경이며 목적도 성경 권위 회복을 위한 방향으로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헌법 기록 순서대로 ‘제11장 예배의식’, ‘제12장 교회정치와 치리회’ 그리고 ‘제13장 당회’ 순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비판뿐 아니라 성경적 대안까지 제시하는 유익한 좌담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P연구생  제가 먼저 예배의 의식화 문제와 관련해서 시사 문제 하나를 거론하겠습니다. 지금 방송과 언론을 보면 지구적 재앙으로 거론되는 ‘코로나19’의 대구와 경북 지역 확산의 주요한 원인이 신천지 사람들의 모임에 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mbc 저녁 뉴스에서 신천지 사람들에 의해 감염이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뉴스 진행자가 신천지 사람들의 예배 방식을 문제 삼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번 경우 신천지 사람들은 모임 장소를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간주하므로 의자에 앉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하여 참석자들을 밀착시켜 바닥에 앉게 하고 이른바 예배 의식에 참여하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밀착해 있었던 상황이 발병(發兵)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 앵커의 지적이었습니다. 사실 신천지뿐 아니라 한국 교회 교인들 중에도 건물을 성전으로, 모임을 제사 의식으로, 목사를 제사장으로 여기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배의 의식화는 정말로 성경대로 알고 믿는데 매우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박홍기 연구원  특정 인물을 메시아로 간주하여 속고 속이는 적그리스도적인 종파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로 분노가 일어납니다. 성경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해 속고 속이는 무지몽매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비판보다는 측은함이 앞설 때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 위협의 감염병이 되고 있는 ‘코로나 19’ 사태를 보면서도 육신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 감염도 무섭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룩’ 비유의 질책 곧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거짓 교훈과 기만적 외식(마 16:11〜12; 눅 12:1)의 감염이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장로교 헌법 조항들을 세세하게 읽어보면서 이 헌법이 왜 개악(改惡)인지 더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성경 권위, 하나님의 절대주권, 창세전 영원한 작정 안에 예정이라는 기독교의 바른 진리로 세워진 장로교가 왜 헌법 책이 필요했는지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 권위보다 인간들이 만든 총회의 법이 상위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헌법 개정의 과정을 보면 명목이야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를 운운하지만, 실상은 목사들의 성도 장악력과 철저한 신분 보장, 생활의 안정과 예배행위의 독점과 재정 승인권과 같은 독소 조항들의 첨부 과정이었습니다. 많은 한국 교회 교인들에게 이제는 비정상이 정상인 줄 굳어버린 관습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신천지 같은 비성경적인 집단들이 침투하여 지칠 대로 지친 교인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구 늑탈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봅니다. ‘코로나19’는 신체의 무서운 감염병이자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시대 한국 교회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Y연구생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11장 교회 예배의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항 ‘기도’부터 11항 ‘축복’까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문제는 인용 대부분이 성경 본문의 맥락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의미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기도, 찬송, 성경 낭독, 세례, 등등 이러한 낱말이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마치 근거인 것처럼 인용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헌법에 나타난 성경 인용이 이러한 수준이라니 개탄스럽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사실 이 문제는 11장부터 13장까지, 나아가 교회 헌법 전체와 관련되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성령론의 부재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주관자가 보혜사 성령이 아니라 예배의식이나 치리나 당회의 조항들이 모두 인간을 통치자로 세우기 위해 인간이 주어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았는데 마치 예수님께서 당회나 노회나 총회에 맡긴 것처럼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다’(제12장 제1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모든 것은 목사가 결정하고 판단하고 집행하고 심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심각한 불법 상황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통치해 가십니다.


‘교회 예배의식’ 조항은
보혜사 성령의 주권과 은혜를 부정하는
인본주의 제도이다 !



2. 장로교 헌법의 ‘교회정치와 치리회’ 조항은 얼마나 비성경적인가?

객원기자  한국 장로교 총회 창립 역사가 100년을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지금 연구원님과 연구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많은 목사들이 성경도 보고 총회 헌법도 보았을 텐데, 성경의 맥락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멋대로 사용하며 헌법을 제정하고 개정했는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얼굴로 성도들 앞에서는 복음 진리의 절대적 권위를 말하고, 노회와 총회에 참석해서는 어떻게 하면 교회와 교인들을 목사들 중심으로 잘 운용하고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공모하고, 성경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 궁리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말문까지 막힙니다. 성경 해석을 교황이 결정하는 가톨릭의 불법처럼, 장로교 헌법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교회정치와 치리회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이어가겠습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를 위해 양질(良質)의 말씀을 전하기는커녕 목사들의 교권 장악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을 곡해하여 악용하는 이 참담한 한국 교회 상황을 저는 반세기 이상 현장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노회나 총회 자리에서 불법이 자행될 때, 선배들이 최종적 법은 성경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이요!’라고 주장하면 그래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권위 자체가 그 권위를 지켜야 하는 목사들에 의해서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총회의 ‘치리회’ 규정은 한마디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다스림을 부정하고 목회의 필요에 의해 만든 조항입니다. 누군가 지적했지만 성경 근거도 맞지 않으며 아예 성경적 근거가 없는 부분이 태반입니다. 이 말은 현재 장로교 정치와 치리가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이른바 마치 민주적인 것처럼 ‘삼심제(三審制)’를 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은 총회가 아니라 ‘성경’이어야 합니다. 삼심제(당회-노회-총회)는 상급 법원으로 갈수록 결국 목사들의 결정권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받은 ‘신령한 자유’를 목사들 중심의 총회가 체계적으로 억압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현행 치리회 법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헌법에 나온다고 하면 위축당하거나 주눅부터 듭니다. 성경 권위에 무지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는 하지만, 힘없고 나약한 성도들의 약점을 잡아서 속이고 또 속이는 사악한 자들을 보면 정말로 화가 납니다. 말이야 치리회 목적 중 하나가 ‘성경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하여’(제12장 5조)라고 하지만, 목적은 다른 곳에 있지요. 목사의 치리에 반대하는 교인을 교리상 문제로 삼아 ‘출교(黜敎)’시키기 위해 성경 권위를 운운합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태입니다. 내가 성경을 잘 알아도 성경으로 치리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각자 스스로 치리를 받도록 역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예배 의식부터 당회, 노회, 총회, 재판 등등 일체의 모든 교회 활동을 성경이 아닌 목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 장로교 헌법 정치입니다.


‘교회정치와 치리회’ 조항은
목사의 결정과 판단이 최고 권위이므로
비성경적이다 !
3. 장로교 헌법의 ‘당회(堂會)’는 얼마나 비성경적인가?

J연구생  당회(堂會) 규정을 보면 정말로 목사를 위한 교회가 아니면 교회일 수 없도록 해 놓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좌담회에 참석하고 계신 성경신학학술원 원로께서 제안했고 많은 성도가 교회 개혁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그때 이탈한 후배 목사들은 원로께서 ‘교회를 없앴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장로교 헌법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니 개혁 운동의 흐름에서 이탈하여 원로의 제안을 반대하고 결국 떠난 이유를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개혁운동의 핵심이 성경 권위를 내세우는 것으로, 바로 목사가 교회와 성도를 장악하는 모든 규정과 제도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원로께서 교회를 없앤 것이 아니라 ‘목사가 교회를 사유화하는 제도’를 없앴다는 말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목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모든 인간적인 장치를 없애버렸으니 교회 개혁 운동에 동참하기 어렵겠지요. 헌법에 명시한 당회 관련 조항을 보면 제1조부터 11조까지 비교적 다른 부분에 비해 분량이 많습니다. 분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세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바로 목사가 당회를 장악하는 방법과 그리고 교회와 교인을 더 철저하게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세세하게 법과 제도로 만들어 놓았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제1조부터 제11조까지 성경적 근거가 한 구절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오직 목사가 교회 전체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성경의 권위, 보혜사 성령의 교회 통치는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당회(堂會)와 치리회(治理會)에 관련해서 하나만 강조를 더 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인간의 ‘치리회’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있다면 당회나 치리회가 아닌 단지 받은바 은혜를 깨닫고 섬기고 보살피는 자발적 ‘봉사회’가 전부입니다. 당회는 성숙한 자들의 모임으로서 교회를 섬기는 ‘봉사회’이지 교인을 자기들이 만든 법대로 치리하는 통치기구가 아닙니다. 양질의 올바른 복음 진리를 어떻게 성도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봉사자로서의 목사와 장로들의 모임인 ‘당회’이어야 합니다. 여자 장로나 다름없는 권사들을 당회에 참여하지 못 하게 하는 것도 물론 비성경적입니다.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것에 대해 ‘목사 임직식’, ‘장로 장립식’, 권사에게는 ‘권사 취임식’이라고 차등을 두는 것부터 벌써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목사를 비롯한 모든 성도는 교회에서 다만 은사에 따른 ‘봉사자’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모든 성도가 신령한 몸이 되어 서로 주 안에서 ‘교통’(고후 13:13, 코이노니아)하게 하십니다. ‘치리(治理)’라는 말은 오직 교회의 유일한 감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P연구생  정말로 ‘당회’에 대해 원로께서 지적하신 것에 공감합니다. 인위적이고 인본주의적이며 성경적 근거도 없이 목사들의 편의를 위해 제정한 제도라고 봅니다. 당회의 조직은 세례교인 25인 이상이 있어야 하며, 목사와 장로 2인 이상이 있을 때 완전 당회라고 합니다. 당회가 조직되지 않은 교회는 미조직 교회라고 합니다. 성경과는 무관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회의 가능한 구성 인원수나 치리 사건 의결이나 목사만 성도를 재판할 수 있는 권한 등 모두가 비성경적입니다. 교인의 신앙과 생활까지 총찰(總察)한다거나 입회와 탈퇴를 결정한다거나 예배와 성례는 목사가 한다거나 모두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헌금(獻金) 수집과 집행에도 당회가 결정하고 당회는 목사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알겠지만 모두 목사가 관여합니다. 성경적 근거도 없이 인간이 모여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목사 없이는 교회가 불가능하도록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당회’ 조항은 ‘
목사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를 법제화한 비성경적 불법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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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대한 성경적 원칙을 어김
구별됨에 대한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