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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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01 08: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가정에 대한 성경적 원칙을 어김


현대교회를 향한 폴 워셔의 아홉 번째 기소장은 가정에 관한 문제다. 현대교회들이 가정에 대한 성경적 원칙들을 어기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셔는 신앙교육은 부모가 해야 한다는 성경적 원칙에서 현대교회를 하나님의 법정에 기소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자녀의 신앙교육의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녀의 신앙교육을 거의 전적으로 교회에 의존한다. 그런데 교회학교에서는 성경적인 교육보다 오히려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잘못된 교육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모들에게 자녀에게 가르칠 성경교육과 교육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부모들에게 자녀교육의 필요성과 그 성경적 내용에 대해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도 교회에 주일학교라는 체계가 있기는 한데, 그에 대한 교재를 보면 성경적이기보다는 세상 학문적 방식이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골로새서 2:8의 말씀을 예시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바울은 이 말씀 전에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며, 견고한 신앙을 가지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가르친 바 있다. 그는 다양한 순서와 설교와 찬양에서보다 오히려 성령님은 가정과 결혼과 가족 가운데서 더 충만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가정이나 교회에서의 신앙교육이 성경에 충실하지 않으면 가르치는 자의 주관에 따라 교훈을 전하게 된다. 그것은 바른 성경교육이라 할 수 없다.

성경은 사사시대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교회가 성경적 교육에 굳게 서지 아니하면 세상의 방식과 틀에 성경 내용을 각색하기 쉽다. 워셔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기초로 자녀를 기르며 배우자를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의 기초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만일에 그것을 성경에서 찾지 못한다면 심리학과 사회학, 그리고 이 시대의 변덕과 거짓말의 포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것도 추구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런 권위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한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여호와께서는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가르치도록 여호와의 도, 곧 말씀을 주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부모가 자녀에게 성경을, 여호와의 도를 가르친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누구든지 성경을 따르지 아니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 세대를 따르게 된다. 그러면 이 세대는 어떤가? 딤후 3:1〜5를 보면 이 세대를 이렇게 표현한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로 지금이 딱 그런 시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철저하지 않으면 이런 세상 풍속에 자기도 모르게 감염되기 쉽다. 주의 일 곧 사역을 위해 가정을 희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정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역은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합니다.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어길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다. “여러분의 교단은 아버지가 자녀를 가르치도록 육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집회를 하며, 얼마나 많은 재정과 노동력을 투자합니까?” 또한, 그는 교회에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교리문답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육으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사역을 대체하려 한다면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주일학교 교사들은 여러분의 자녀를 바르게 징계할 권한이 없음을 말한다. 자녀를 징계할 권한은 오직 부모에게만 있다. 주일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한다.
또한 교회에서 세대 간에 차등을 두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을 장년과 함께 교육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잠언서의 말씀을 인용한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13:20) 세대 차이라는 말은 1960년대에 심리학자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그러나 청소년은 어른과 함께 모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어리숙한 행동을 멈추고 성숙하게 행동하며 그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어리석음을 버린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을 함께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곳에 부모들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폴 워셔는 이런 경구를 전한다. “우리는 성경의 원칙들을 알면서도 어기고 또 어깁니다. 그러면서 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는지 의아해합니다.”

우리는 어떤가? 일찍이 주일학교 교육에 사망선고를 한 미국의 교육학자가 있었다. 한국 교회교육의 선두주자로 30년간 교회교육에 앞장섰던 분은 이 의견에 대해 온몸으로 대항했다. 세월이 흐른 후 그는 한국교회 주일학교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공과를 가르치는 방법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 사실은 주일 학교가 사라져 가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교회에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70%가 넘은 지 오래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곧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폴 워셔의 기소장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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