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9-03-30 08:2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인간 창조 후 고대 시대의 찬송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의 맨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 만드셨다(창세기 1:26 ~27). 인간이 창조되어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 각종 초목과 채소와 과일나무, 새와 물고기와 육축과 짐승들, 그 외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창조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 인간을 만드셨을 때는 인간으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다(창세기 1:28~31).

지금도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를 논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진화론으로는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창조론을 믿는 우리는 그 답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달걀은 암탉이 낳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닭(암탉과 수탉)을 먼저 만드셨음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갓난아기가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의 시조인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최초의 인간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원시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의사소통(=말)을 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지적인 존재로 창조되어졌다. 그러나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아담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구절은 없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창세기와 시편 그리고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에서 가사를 따왔으며, 그 중 제13번 곡에서 가져온 통일찬송가 75장의 가사는 아래와 같이 노래하고 있다.

저 높고 푸른 하늘과 수없이 빛난 별들을
지으신 이는 창조주 그 솜씨 크고 크셔라.
날마다 뜨는 저 태양 하나님 크신 권능을
만백성 모두 보라고 만방에 두루 비치네.
해지고 황혼 깃들 때 동천에 달이 떠올라
밤마다 귀한 소식을 이 땅에 두루 전하네.
행성과 항성 모든 별 저마다 제 길 돌면서
창조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 널리 전하네.
엄숙한 침묵 속에서 뭇별이 제 길 따르며
지구를 싸고돌 때에 들리는 소리 없어도
내 마음 귀가 열리면 그 말씀 밝히 들리네.
우리를 지어내신 이 대 주재 성부 하나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직후 세상 만물이 완벽히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임을 이 곡은 노래하고 있다.

창세기 4장 16~24절에서 아담의 장자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한 후 여호와를 떠나서 놋 땅으로 가서 살며 번성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가인의 5대손인 라멕과 아내 아다의 아들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둘째 아들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음을, 라멕과 다른 아내인 씰라의 아들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의 조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두 노아홍수 이전의 사건이다. 이런 기능을 가진 자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가인의 자손에서 나왔다. 가인의 6대손인 유발이 악기를 만들었지만, 그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했을 리 없다. 그들이 연주한 음악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우상숭배 시 퇴폐적인 행위를 북돋우는 도구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켜 노아홍수로 번성했던 인류를 거의 전멸케 하는 데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본다.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는 시 형식으로 가사를 만들었을 텐데, 한글로 된 시가서를 읽어 보면 시라고 느껴지는 것은 시편에서나 조금 느껴질까, 번역을 제대로 못 해서인지 전혀 시로서의 운율을 느낄 수가 없다.

노아시대 대홍수 심판 이후 약 1,300년 뒤에 태어난 다윗은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났다”(사무엘상 16:23)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 다윗은 많은 시편을 지어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다윗이 부른 시편을 그 당시의 히브리어로 낭독하면 아마 그 시의 운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교시절 고문시간에 배웠던 고려시대의 청산별곡이나 고려말기 이후부터 조선시대의 시조 등을 보면 정형시로 운율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가까운 중국만 하여도 한시를 읽으면 한자 자체의 성조가 있어서 노래하는 듯이 들린다. 젊은 시절 친구 결혼식에 갔을 때 결혼식 축가 대신 친구 중에서 축시를 낭독한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멋있게 부르지도 못하면서 부르는 축가보다 오히려 훨씬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시편에 보면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시편 4편),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시편 5편) 등의 설명이 나온다. 아마 영장(=음악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현악기 또는 관악기에 맞추어 시편을 낭송하였거나 아니면 노래로 부른 것 같다.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에는 그 당시의 악기들이 적합하지 않았다고 여긴 것 같다.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아담의 6대손이며 가인의 후손인 유발이 만든 악기 이후, 다윗시대까지의 대부분의 악기들은 이방민족들이 우상에게 제사를 드릴 때 퇴폐적인 음악과 행위에 흥을 북돋우는 악기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이러한 악기들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는 없었다. 다윗이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악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성경 역대하에 나온다. 솔로몬과 백성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렸을 때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왕이 레위 사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케 하던 것이라”(역대하 7:6)고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찬송은 인간의 기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5대 속성인 하나님의 전능하심, 신실하심, 주권자이심, 영원하심, 자비하심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진심으로 울려 나온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므로, 찬송은 파이프오르간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멋진 악기를 꼭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편 150편의 기자가 노래하였듯이, 우리가 온갖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여도 부족할 따름이며, 훌륭한 악기들의 멋진 화음의 연주를 동반한 찬송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찬송하는 가사에 더욱 감동하게 만드는 도구임은 틀림없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용환 장로 (기독교지도자협의회)

Panis Angelicus (생명의 양식)
교회 음악에 대한 글의 게재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