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9-10-29 19:4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찬양하는 삶의 가치


몇 년 전 교회학교 학생들 앞에서 짧은 시간 동안 얘기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어릴 때부터 듣던 마태복음의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이야기이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질문하였다. 그러나 이 청년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기의 선한 행동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의 답변은 부자 청년이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 율법을 모두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열심히 모아온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 가기가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곁에서 듣고 있던 제자들도 놀라서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냐고 묻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영생을 얻고 천국 가는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며 불가항력적 은총임이 분명함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우리는 왜 많은 정력과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라고 편지했다. 만일 영생이 없다면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위의 부자 청년처럼 영생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유한세계인 이 짧은 세상을 살다가 영원세계인 천국으로 가기 전까지,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참 통계적인 수법에 대하여 심취해 있던 시절이었다.
성경을 읽거나 또는 성경 말씀을 듣다가, 찬송을 부르거나 듣다가 또는 기도를 하다가 본향인 천국에 가게 된다면 아름다운 소천(召天)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내 기도 제목 중 하나다. 그런데 막상 계산해 보니 내가 ‘말씀, 찬송, 기도’ 이 3가지에 소비하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10%도 안 된다. 품질관리에서는 3시그마 관리라고 하여 정품이 보통 99.7% 이상(즉 불량률 0.3% 이하)이 되도록 관리한다. 그런데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확률이 10%도 안 된다니? 그렇다면 내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국에 갈 수 없는 확률이 90%가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절망적인 확률값에서 나에게 힘이 된 성경 구절이 바로 위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와 찬송을 드릴 뿐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했던 3가지의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말씀, 찬송, 기도)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일까?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른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치를 논하려면 우선 가치의 정의(定義)부터 정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치와 가격(비용)을 혼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금보다 더 비싸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아래의 수식을 보면 잘못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가치공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V=

(여기서, V:가치(Value), F:기능(Function), C:비용(Cost))

가치를 표시하는 위의 수식에서 가치(V)의 값은 비용(C)이 적거나 기능(F)이 클수록 커진다. 가치란 필요로 하는 기능과 비용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수도꼭지를 만들 때, 철로 만들지 않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녹이 슬지 않는 우수한 기능을 가진 스테인리스로 만든다. 또 책상다리는 튼튼한 철재로 만들지 않고 가볍고 비용이 적게 드는 나무로 만든다.

위의 수식을 ‘말씀, 찬송, 기도’에 적용해 보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솔로몬이나 사도 바울이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잠 9:10; 빌 3:8). 하지만 우리의 삶은 짧은 ‘유한세계’와 영원한 ‘영원세계’의 합이다. 영원세계에서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찬송’뿐이다. 따라서 위의 수식에서 기능(F)에 해당하는 찬송은 F가 무한대이므로 그 가치(V) 또한 무한대임을 알 수 있다. 곧 찬송의 가치는 영원세계까지 계속되므로 무한대의 가치이다.

시편 기자는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 148:5)라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노래하고 있다. 이어서 시편은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치리자)과 땅의 모든 사사(재판장)며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시 148:11∼13)라고 노래한다.

짧은 유한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여생은 물론, 영원히 천국에 가서까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누가 주(여호와)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36)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용환 장로 (기독교지도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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