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1-12-22 10:3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사막교부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아케디아 극복하기


사막 교부들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철저한 고독의 삶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고독을 추구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함께 하는 삶을 도외시한 영적인 삶은 위험한 생각이자 유혹”이라고 하면서 공동체라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열망에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지만,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중요시하여 이웃 사랑 실천을 철저히 실행하였다. 특히 그들의 기도와 신앙생활을 위한 지침서가 여러 문헌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사막 전통의 꽃을 피우고 사막의 지혜를 새롭게 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사막 교부들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불경한 사념들, 즉 근원적인 욕망과 감정 그리고 영적 악덕들을 7가지로 정리하여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의 목록을 만들어 이를 인간사에 불행을 초래하는 극단적인 요인들로 여겼고 영혼의 상태를 비춰주는 거울로 삼았다. 폰투스의에바그리우스(346-399)는 악한 생각을 산상수훈의 팔복 즉, 8가지의 선한 생각에 대립되는 개념의 8가지 악한 생각으로 재분류하고 ‘슬픔’을 추가하였다. 한편 에바그리우스의 제자인 요한 카시아누스(360년경-435)는 ‘허영’을 8번째 죄라고 하였다.
7가지 죄 중에서 우리를 고통 속에 묶어 두는 나태에 대하여 그 본래의 뜻과 치유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자. 나태는 영적 수행자들이 가장 큰 적으로 보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죄로서 성 베네딕트(480-550)는 ‘영혼의 원수’라고 불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진정한 신학적인 죄’라고 정의하였다.

나태를 영어로 sloth 또는 acedia라고 한다. 영국의 기독교 사상가 도로시세이어즈(1893-1957)는 「신조인가, 무질서인가」(“도그마는 드라마다” 중, IVP, 2017)라는 글에서 acedia(영적 게으름)는 흔히 sloth(나태)로 번역되는데 이는 올바른 풀이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acedia가 게으름이나 나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헬라어 ακηδια(아케디아)는 육체적인 게으름뿐만 아니라 영적 태만을 말한다. 일종의 영적 나태함, 타락에 의한 막연한 불안이나 절망 등을 뜻하는 단어로 하나님에 대한 의무의 무관심한 태도와 무활동, 무기력을 가리킨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나태라는 단어 대신에 아케디아란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면 한다. 시편 91편 6절에 나오는 “정오에 임하는 파멸”(개역개정은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으로 번역)이라는 말씀에서 아케디아를 “낮에 날아드는 화살” 또는 “정오의 마귀”(noonday demon)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성경 말씀이 번역 과정을 거치다가 보니까 ‘정오(noonday)’가 ‘한낮’ 또는 ‘백주’로 번역되다가 ‘밝을 때’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아케디아 상태에 있는가를 측정해보는 도구로, 목사이며 미국 세인트 폴에서 기독상담센터를 운영했던 윌리엄 배커스(1924-2007)의 죄성 검사지가 있다.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를 극복하는 비결”(원제: What Your Counselor Never Told You, CLC, 2017)에서 280개의 문항에 ‘그렇다’와 ‘아니다’로 답을 해서 채점한 후에 7가지 죄의 심각성을 다른 죄들과 비교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게 하였다. 문항 159번에서 201번까지가 아케디아에 관한 질문인데 이 중에는 “나는 죄성을 약화시키도록 노력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것이다”라든가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바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와 같은 질문들이 있다. 7가지 죄성 또는 악습 중에서 본인이 가장 먼저 개선할 죄를 선택한 후 6개월이나 1년 정도의 시간을 정해서 개선해 보려고 집중해서 노력한다면 몇 년 안에 7가지 악습을 점진적으로 많이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아케디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에바그리우스는 ‘위대한 반박’이라고 하는 『안티레티코스』(분도출판사, 2015)를 저술하였다. 인간의 감정, 생각, 갈망 등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들 하나하나에 맞서 492개의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반박한 책이다. “성경 말씀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는 대신 주님께서 당신 성령을 통해 성경을 가르쳐 주시도록 주님을 설득해 보라고 유혹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서는 여호수아서 1장 8절 말씀을, “환란 중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서는 로마서 12장 12절의 말씀 등 57가지 말씀으로 아케디아를 쳐부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이 악한 생각과의 싸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악덕들을 대적할 수 없고, 그것들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 교만하지 말라고 말한 요한 카시아누스는 24개의 담화집(은성출판사, 2013) 중 담화 5에서 여덟 가지 악덕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아케디아를 정복하려면 슬픔을 극복해야 하며, 슬픔을 몰아내려면 분노를 몰아내야 하며, 분노를 없애려면 탐욕을 밟아 뭉개야 하며, 탐욕을 근절하려면 음란을 억눌러야 하며, 음란을 제거하려면 탐식을 징계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모든 덕들이 연결되어 있듯이, 모든 악들도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이집트인 마카리우스(345-410)의 영적 사슬 설교를 연상케 한다.
카시안(360-435)은 수도사들이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노동해야 하고 성경 읽기와 기도 모임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사막에서 싸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는 안토니우스(251-356)의 생애는 수도사들의 모델이기 전에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이자 신앙과 사랑이 육화된 모범이라고 하는데, 그 명성에 어울리게 안토니우스는 “정오의 악마” 유혹에 빠지지 않았고 아케디아를 극복했다. 그래서인지 『알파벳순 모음집 사막 교부들의 금언』(분도출판사, 2017)의 대 안토니우스 편에는 아케디아에 관한 금언이 없다.
사막 교부들의 영성훈련 과정은 악한 생각들과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악에서 벗어나 구원을 완성할 수 없으므로, 악한 생각을 제거하기보다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현하는 길을 찾았던 것이다. 죄가 하나님과의 단절이므로 하나님과의 재결합이 필요한데, 변하지 않는 진리 위에 기반한 영적 건강이 중요함을 강조한 윌리엄 배커스는 믿음으로 영혼과 육체 사이의 조화를 이루자고 권면한다. 한국CCC 대표 박성민 목사는 닮고 싶은 대상의 어깨에 올라타서 그의 눈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관계를 느끼며, 그와 함께 삶의 순간순간을 내 것인 양 경험하는 상상을 해보자고 말한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영적인 측면에서 누구의 어깨에 올라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여인갑 장로 (지구촌교회 / (주) 시스코프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사랑과 화해의 목사, 칼빈_29
목사로서 칼빈_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