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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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5-18 09: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 중심의 정의론 회복하기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미 3:9-12)

본문은 주전 8세기 중엽부터 7세기 말까지 남유다의 세 왕조가 연이어 통치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선지자 미가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이다. 세 명의 왕은 요담(주전 750-732년)과 아하스(주전 735-727년) 그리고 히스기야(주전 727-686년)였다. 미가서는 총 7장으로 된 예언서로 1-3장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당한다는 예언이며, 4-5장은 망하지만 다시 회복하신다는 예언이다. 그리고 6-7장은 패망을 다시 강조하면서 회복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주전 721년)은 히스기야왕이 남유다를 통치할 때 성취된다. 히스기야왕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성취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앗수르 왕 살만에셀 이후의 왕인 산헤립왕(주전 705-681)은 남유다도 침공하여 히스기야는 조공 바칠 것을 약속했으나 이에 만족하지 못한 산헤립왕은 신하 랍사게를 보내어 여호와 하나님과 히스기야왕을 희롱하며 남유다의 항복을 압박하였고 히스기야왕은 항복해야 하는 직전까지 다다른다.(왕하 18장 참조) 이에 히스기야왕은 여호와 하나님께 약속에 근거한 유다 구원을 간구하였으며 산헤립은 급히 본국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살해당하면서 남유다는 구원을 받는다.(왕하 19장) 하지만 히스기야 사후 70여 년 후 남유다는 바벨론제국에게 20여 년 동안 3차에 걸쳐(주전 605-586년) 처참한 멸망을 당한다.
내용상 주목할 점 하나가 있다면, 히스기야왕은 여호와께 범죄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최후까지 지켜봤으며 자신을 비롯한 남유다도 앗수르제국에게 패망당하기 직전까지 가서 극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낸 미가 선지자는 앗수르제국에게 벗어난 남유다도 히스기야왕 이후 70여 년이 지나면 바벨론제국에 의해 반드시 망하며 그 후 (70년이 지나) 회복된다는 예언을 한다. 그런데 미가서에 나타난 히스기야왕은 열왕기나 역대기에 등장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모습과는 다르게 평가한다. 단지 부패한 한 왕일 뿐이며 그래서 남유다가 결국 망하게 하는 한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앞의 본문을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히스기야왕 시대의 통치도 악하여 백성을 탄압하며 ‘피와 죄악’(10절)으로 얼룩져 있다.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기 위해 재판하고 제사장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단지 자신들의 월급으로 여긴다. 선지자들은 돈을 받고 점이나 쳐주는 자들로 전락했다. 그러면서 북이스라엘은 망했지만 자신들은 여호와가 있으니 멸망의 “재앙이 (……)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1절)라고 착각한다. 이에 대해 미가 선지자는 예루살렘은 마치 밭을 갈아엎는 것처럼 전복당하며 성전은 황폐하여 수풀이 대신한다고 예언한다.
미가 선지자가 전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즉 야곱 족속의 (현상적인) 패망 원인은 ‘정의’(미쉬파트, mishpat, justice, 正義)와 ‘정직’(야샤르, yashar, equity, 正直)의 몰락 때문이었다. 정의의 의미는 재판, 공의, 법령의 뜻을 포함한다. 이 개념들을 다시 정리해 보면 정의란 하나님이 주신 법령 조항을 그대로 재판에 반영하여 집행할 때 수립되는 공의(公義)라고 할 수 있다. 남유다에게 법령(法令, 신의 명령으로 수립된 법)은 모세를 통해 받은 십계명과 율례, 규례와 법도이다. 십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우신 헌법의 열 가지 대강령이며, 율례는 하나님 앞에서 통치자가 백성을 통치할 때 적용하는 종교적이면서 형사법적인 조항들이다. 주로 통치자들이 백성을 공정하게 재판하는 것과 직결되는 규범과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율례와 법도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지켜야 할 예물 규정과 그리고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 따라야 하는 각종 제사법과 그 절차를 정하고 있는 법이다. 이렇게 보면 정의(正義, justice)는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영역을 모두 지배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통상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체제와 문화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론’은 정치와 종교의 상호관계를 고려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기독교 정의론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그 기반이어야 하며 하늘나라 곧 교회의 유일한 통치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정의와 공정의 절대 기준으로 정립될 때 이해 가능하다. 정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통치 중에서도 특히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구약에는 거의 400여 회에 걸쳐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심판’(judgment)의 의미로 사용된다. 심판의 범위는 현대적 의미에서 입법과 사법 나아가 행정적 집행까지 모두를 아우른다. 재판장의 판결은 물론이고 소송 과정의 정당한 절차도 포함한다. 대표적으로 솔로몬의 재판 과정이 그 예다. 사실 솔로몬의 재판에서 강조할 점은 솔로몬의 지혜가 아니라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주권이 그 본질이다. 국가적 정의 혹은 종교적 정의를 말할 때 우리는 정의의 ‘실현’에 몰려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는 정의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 정의의 원천과 기준이 무엇이냐가 더욱 중요하다. 솔로몬왕의 지혜로운 재판은 적어도 그 기원을 다윗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삼하 7:16 참조) 여호와의 언약하신바 지혜의 충만함이 성취되는 현장이 바로 솔로몬 재판이다.
이러한 재판은 장차 최후 심판이 분명히 도래할 것이라는 강력한 예고를 담고 있다. 즉 최후 종말을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완성한다는 의미가 정의에 포함된다. 이 말은 현재에 진행 중인 사건의 판단은 최후 심판으로 보류된다는 것이며, 현재는 단지 그 재판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만 부각된다. 최후 심판을 계속해서 예고하고 확인해 주는 과정이 현실의 시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의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에 나타난 ‘신적 속성’을 이해할 때 가능하다.
시간 역사적 섭리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은 전능성(욥기)과 신실성(시편), 주권성(잠언)과 영원성(전도서) 그리고 자비성(아가)이다. 이 모든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 중심의 ‘정의론’을 수립하기 어렵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본문에 나오는 ‘정직’도 하나님의 정의론을 수립할 때 따라오는 결과이다. 정직(야샤르, yashar)은 통상 ‘곧다’, ‘올바르다’는 뜻이다. 어렵지 않은 개념이지만 역사와 인생에서 무엇이 곧으며 올바른 것이냐고 질문을 던지면 쉽게 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 중심의 정의론을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답답함에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과 역사적 과정의 성취 나아가 창세전부터 계신 그리스도의 존재(요 1:1)와 그분의 사역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의 중심의 정의론은 정립할 수 없다. 이는 성경 전체에 대한 논리적 이해와 구조를 우선 해명할 때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www.ibt.or.kr의 성경강론 참조) 성경권위 회복 없는 기독교 정의론은 불가능하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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