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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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08 09: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신약교회의 성경학교 원형회복하기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 8-10)


‘교회학교’는 교회를 학교로 이해한다는 뜻이며 학교는 곧 ‘성경학교’의 줄임말이다. 교회는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다. 성경을 가르치되 성경을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는 학교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이 스승 되셔서 성경을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여 가르치는 학교다. 교육제도에서 학교는 반드시 교육 목표와 교과 내용과 교육 과정을 완비해야 한다. 성경교육의 목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데 있다면, 내용은 오직 성경만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자신의 수준과 단계에 맞는 성경 교육 과정의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성경학교로서 교회의 사명과 연관 짓는다면, 바로 ‘교회학교’의 위기다. 성경을 단지 몇 가지 삶의 교훈을 얻는 교회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명증한 논리로 확증하지 못한 참담한 결과가 교회 위기의 본질이다. 더 명확히 말한다면, 성경학교의 지속적 성장으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성경교육의 요람 역할을 교회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교회 위기의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된다. 우리가 소속한 교회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행 20:28)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존립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척도는 ‘교회=학교=성경학교’로 연상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성경 본문에서 우리는 신약교회 시대 초대교회에서 보혜사 성령께서 어떻게 ‘교회=학교=성경학교’로 수립했는지 교회학교 위기의 시대에 깊이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성령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 지역과 헬라 지역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여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교회를 설립하게 하신 후 에베소 지역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진리 안에서 하나 되는 그야말로 ‘유대인-이방인 통합 성경학교’를 건립하신다. 성경학교이므로 로마제국도 헬라철학도 아닌 구약성경을 강론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설명한다. 사도 바울은 먼저 석 달 동안 (구약의 이스라엘 나라 해석을 통해)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講論)한다. 당시 강론은 일방적 선포보다는 대화와 토론 방식으로 진리를 증명해 가는 방식이 통용되고 있었다. 성경강론 결과 어떤 이는 비방하고 다른 어떤 이는 동의하고 순종했다. 그 결과 ‘교회=학교=성경학교’ 체제가 수립되었다. 이에 바울은 성경강론을 듣고자 하는 자들을 따라 제자로 삼아 두란노(튀란노스, Tyrannus)라는 헬라인의 서원(書院) 곧 성경학교인 교회, 교회인 성경학교에서 두 해 동안 날마다 성경강론을 실시했다. 당시 서원(스콜레, schole)은 참가자들이 시간의 여유가 넉넉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면서 반박하거나 인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동일한 교재인 구약성경을 함께 보며 사도 바울의 해설과 논증을 들으면서 지상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절대진리를 두 해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곳이 성경학교 두란노 서원이다.

짐작하건대 복음 전파 사역의 전 생애가 거의 피신과 핍박과 환란으로 점철했던 사도 바울의 일정에서 삼 년 동안(행 20:31) 성경강론을 했던 시간 곧 ‘에베소 두란노 성경(강론)학교’ 시절은 성경학교로서 교회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 교회 현실을 생각하면 매우 매우 귀중한 시간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사실 사도행전에는 ‘교회=학교=성경학교’의 체제를 통해 보혜사 성령께서 교회를 설립하시는 여러 사례가 있다. 고린도 성경학교에서는 일 년 육 개월(행 18:11), 두란노 성경학교에서는 삼 년(행 20:31), 가이사랴 옥중 성경학교에서 이 년(행 24:27), 로마 셋집 성경학교에서 이 년(행 28:30)의 ‘교회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장소와 상황과 여건을 초월해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교회=학교=성경학교’가 건립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교회 역사의 본질이라고 본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수립의 고유한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절대진리 선포다. 교회가 성경학교로 존립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교회가 성경학교의 고유한 기능을 잃어버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여 가르치는 일을 버렸다는 뜻이다. 성경학교로서 교회의 사명을 등한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학교의 출발과 토대를 망각한 부분이 있다. 학교로서 교회의 출발은 ‘가정교회’다. 가정교회라는 말은 ‘가정은 교회학교’라는 말이다. 가정은 성경학교의 출발이다. 두란노 서원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경학교 운영 방식을 볼 때 교회학교를 ‘주일학교(Sunday School)’로 말하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부족하고 온당하지 않다. 주일날 잠시 학생들만 다녀가는 곳으로 주일학교로 보는 시각으로는 성경학교로서 교회학교의 고유한 사명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아래의 본문에서 보듯이 신약교회 시대의 학교의 원형, 성경학교로서 교회는 가정교회에서부터 부모의 변함 없는 성경교육과 함께 희생적 돌봄의 눈물이 충만한 곳이다. 물론 성령의 열매(갈 5:22-23)이며 인간 공로의 산물은 결코 아니다. 한국 교회의 근본 위기는 성경학교로서 가정교회의 중대한 사명을 망각한 데서 시작했으며, 가정교회의 몰락은 학교원형이 성경학교이며 그 성경학교의 출발이 바로 가정교회였다는 사실에 무지했던 필연적 결과다. 만약 기독교인으로 일상에서 ‘학교’라는 말을 사용할 때, ‘교회=학교=성경학교=가정교회’를 연상할 수 없다면,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지체로 여기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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