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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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3 19:1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신도(信徒)로서 알현과 국가 원수로서 정상 회담


전 세계가 2018년 10월 18일을 주목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 안의 또 다른 나라인 바티칸시(Vatican City) 교황청(Holy See)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 미사’에 이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12억 이상의 가톨릭교도의 최고 지도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단독 면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톨릭 미사의 주제도 한반도 평화, 두 사람의 단독 면담도 한반도 평화였다. 교황의 세계적 영향력이야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바이지만, 점점 주목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행보는 어느 시대보다 더욱 돋보이고 있다. 미사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바 ‘진지하게 방북을 고려할 것’이라는 한마디는 세계 언론의 으뜸 스포트라이트였다. 북한의 초청장을 기다리겠다는 교황청 2인자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은 기자들에게 북한의 공식적인 초청장이 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 정착을 위해 정치 권세와 종교 권세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 사실로 보인다. 모든 의제(議題)가  한반도의 종전(終戰) 선언과 남북 공동 번영의 계기가 되어주길 바라는 세계인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가톨릭 세례명 ‘디모데오’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의 최고 수장을 만났다. 가톨릭 내에서 볼 때 한 신도의 경우로 보면 일생일대의 큰 영광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적어도 그러한 알현(謁見)을 위해 바티칸시(市)를 방문한 것은 결코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한 명의 신도를 만나주는 것으로 결코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한 것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은 최고 지도자로 만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종교적 동질성을 배제하고 평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어느 정도 우리 염원을 이루는데 득과 실이 될지 정말로 하나님만 아실 뿐이다.

이러한 진단은 한국의 개신교 성도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하나의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지난날 중세와 근대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로마 가톨릭의 엄청난 부정과 범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가톨릭의 종교적 이해와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로마 가톨릭의 시대적 활동 대부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모두 지워버릴 수는 없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리의 대통령과 교황의 회담을 누구보다도 복잡한 심경으로 보고 있는 자들이 개신교 한국 성도들일 것이다.

중세 로마 가톨릭의 암흑기를 끝장낸 종교개혁 신앙 선배들처럼 ‘오직 성경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성경의 절대권위를 빼놓는다면 개신교는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교황청이 성경 해석의 한계를 정한 만큼만  성경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규모와 종교의식(儀式)과 언론 보도에 우리의 영혼을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문 대통령과 교황의 상호 공감 내지 상호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오직 성경에서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으로 돌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와 그 능력을 다시 확인하면서, 통일을 이루자는 대한민국의 소원과 점점 부패해가는 대한민국 교회의 참담한 현실을 깊이깊이 고민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성도라면 그 판단에서 자기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지혜와 총명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경 진리에 대한 진지한 연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두 정상도 무엇보다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길 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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