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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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17 21:2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이 최고의 권위


참 진리를 찾아 방황하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깨달아 알고 믿는 신앙이어야 했다. 기독교 진리의 기준이 되는, 성경만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참 종교임을,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쳐 주는 지도자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큰 은혜이요, 선물이다.

벌써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지방으로 보급되는 테이프를 통해서 박용기 목사님의 성경 강론을 듣던 중에, 1989년, 성경적 기독교란 무엇인가? 라는 테이프가 입수되었다. 그 당시 강의 내용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가 대단한 인기였다. 그때의 감동이 내 뇌리에 생생하다. 그리고 세월은 지치지도 않고, 주춤거리지도 않고, 하나님 섭리 따라 오늘에 이르렀다.
성령께서는 나로 하여금 성경을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수납하게 하고, 학습하게 하여, 성경이 최고의 권위가 있음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는 목적을 따라, 넘치는 기쁨을 맛보며, 어떠한 뼈대에서 구체적으로 예수를 믿게 되는가를 논리적으로 이해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죄인의 눈으로 볼 때에 그 참뜻이 보여진다고 하신 말씀대로,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고, 성경을 성경대로 배우고 싶어 하던 나에게 큰 소망이 되었다. 갈등도 멈추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며 살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성경을 모르고는 건전한 신앙을 기대할 수 없고, 너무도 깊고 고상한 진리임이 확실하고, 분명했다.

막혔던 가슴을 트이게 하는 성경말씀을 만약에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모르게 했다면 내 삶이 어떠했을까. 어쩌면 삶의 반복에, 세월의 무상함에 고통받으며 머지않아 생명이 멎게 되리라는 생각에 남몰래 슬픔에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 경험해 보지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이 생각나지 않게 되면, 만사가 의미 없고, 심히 떨리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기억력은 날로 쇠퇴해가고, 느낌은 차츰 소멸되어 가며, 감동이 잦아드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육신은 건강할 때는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차 삐치기 시작하고, 가만두고 보니 늘그막의 무서운 상전이 따로 없다. 그를 쳐 복종시킬만한 것이 세상에는 없다.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무신론 사회에서야 신앙이 필요 없지만, 신앙인이라면, 말씀에 뿌리를 박고, 흔들리지 않게, 확실한 진리로 양육 받고 무장되어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으니 다행스럽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내 뜻대로는 이루어지지 않게 하시고, 좌절이 오고 짜증과 불평과 여러 가지 갈등이 오게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함은 물론이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자기에 대한 분명한 결론과 현실을 넉넉히 소화할 수 있게 하는, 정말 고차원적인 삶을 살아갈 힘을 진리 안에서 얻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왜 성경이 그렇게 중요한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이유를 아는 데 있어서 성경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우여곡절의 언약성취 역사는, 영원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영광의 확증으로 그 안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는, 이천 년이 넘는 교회 역사 가운데서 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창조해 놓았을 때, 아담을 넘어뜨리고, 사단은 온 세상을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그것도 부족해서 언약대로 오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삼 일 만에 예수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이 임하셨다. 그래서 이 지상에 교회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가 사도 시대를 거쳐, 속사도, 교부, 신부 시대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 사단의 앞잡이들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문제로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했다. 사단의 세력은 로마교회가 주측이 되어 자기들의 조직 안에 들어온 자만이 교회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무서운 사단의 전략이었다. 급기야는 중세의 교회를 완전히 장악해 버리는, 교황 권위주의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교회가 겪은 무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꺾어진 갈대를 아주 꺾지 아니하시고, 그 등불을 끄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단은 계속해서 구원 문제에 관해서, 선한 행위가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공로주의가 태동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 공로는 희박해지기 시작했고, 인간의 공로는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성도들의 신앙 가운데는 그 공로주의가 자기도 모르게 굉장히 쌓여 있고, 지금도 내가 어떻게든지 선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그 자세가 공로주의에 빠져들어 가는 특징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본능적으로 자기 선을 들어내려고 하는 것을 이용해서, 사단은 교회를 도전해 온 것이다.

그러다가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고 하는 분명한 개혁 논리를 들어내면서 개혁이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개혁교회는 중간에 노출되어서 나온 것 같지만, 사단의 도전을 받아서 교회론도 교황 권위로, 참 진정한 성경적 기독교가 아닌 교회가 되어, 그 권위 앞에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는 그 무서운 사실, 그것은 교회의 타락인 것이다. 하나님 자리에 인간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 사상이 따지고 보면 교황 권위보다 더 높아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그 실제 사상이 개신교 안에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목사 개인의, 인간 권위를 주장한다면, 구교와 무엇이 다른가. 분수없는 인간의 욕심, 과장된 인간의 실체, 그들은 사단의 조종을 받는다. 거짓 진리가 판을 치는 시대에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나는 지금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종교개혁은 교황 권위주의 대신 성경 권위를 내세웠고, 사제주의 대신 만인제사장의 원리를 내세웠고, 공로주의 대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다고 하는 분명한 원리에 의하여 교회가 개혁된 것이다. 그래도 목사라는 이름으로 개혁교회의 성경 논리에 따른 가르침을 무시하고, 하나님 자리에 앉고 싶은가.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는 그게 사단의 속임수라는 사실을 성도들은 모르는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강미정 권사 (광주산수서광교회)

종교에 대해서
지혜가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