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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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28 19:4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왕가로 삼으실 다윗왕국 준비


하나님은 백성들의 신앙을 성숙시키려고 곤고한 날과 형통한 날을 겸해서 준다. 마치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뜨겁고, 차갑게 하는 방법으로 아주 강력한 강철로 변화를 시키듯이, 사사기가 주로 그런 장면이다.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나라를 통치할 왕을 세워 주지 않으니까 백성들 멋대로 생활한다. 이 내용만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범죄를 하게 된 결론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하여 유다 지파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릴 왕을 세운다고 언약한 말씀대로 유다 지파 자손에게서 다윗이 출생하도록 준비한다.
극심한 범죄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각기 자기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데서 발생한 소행이다. 여기서 자기들을 다스릴 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깨달아 알고 그를 경외케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여호와께서 세 번째 언약인 통치언약(룻기~에스더)을 성취해 주시는 섭리를 하신다. 이 섭리는 하나님께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삼대언약(자손, 땅, 통치) 가운데 통치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창 1:28), 둘째 아담 예수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보호하시는 섭리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로서(계 11:15), 먼저 룻기에서 다윗왕국을 창건한다. 다윗왕국은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가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서 세우게 될 교회에 대한 모형이다. 그런데 인간이 세운다고 한없이 착각한다. 보혜사 성령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간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 통치자는 목사, 땅은 건물 땅, 자손은 등록카드 낸 사람들이라 생각하는데, 얼른 보면 맞는 것 같고, 그런 이야기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구약의 그림자, 모형을 가지고 똑똑한 척 억지를 부린다. 분명한 것은 자손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중생한 자가 하나님 백성이고,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터, 백성들의 마음 밭이 땅이다. 그리고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서 통치해 가신다. 이런 기본 바탕만 정확히 이해를 하고 정말로 그런가, 안 그런가는 성경을 확인해 가면 된다. 참으로 성경적인가를 알기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확인하는 일은 각자 몫이다.

여호와께서 삼대언약(자손, 땅, 통치)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시는데, 통치자 다윗의 출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수난(곤고한 날)을 겪게 한다. 그리고 그 수난 속에서 보호(형통한 날)해 주신다. 성경은 정말 논리적이다. 삼대언약을 처음 아담에게 했고, 노아에게 하고, 이스라엘 열조(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한 언약대로 성취되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가게 해서 종살이를 시키고, 모진 학대 속에서도 자손언약이 성취되게 하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오게 해서 불신한 정탐꾼들을 죽이고 불 뱀이 나와서 물어 죽이는 일이 있었어도 장정만 육십만으로 애굽에서 나올 때 숫자와 똑같게 한다.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자손은 죽이고 광야에서 세대교체 된 자손들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한다.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건져내 준 여호와 하나님만 기억하고 경외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해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성경구조의 논리적 흐름이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할 때가 예수님 오시기 전, 이천 년 전이다. 지금 공부하려고 하는 룻기 장면이 예수님 오시기 전, 주전 천 년경, 이것은 역사적 실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중요한 이유가 어떻게 이천여 년 전에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대로 천 년의 역사 과정에서 그 언약을 그대로 이루시는가. ‘와! 정말 여호와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미련한 나로 하여금 믿어지게 만든다. 창세기로부터 시작되는 섭리를 통한 언약에서, 여호와의 언약섭리, 자손언약 성취섭리, 땅언약 성취섭리, 통치언약 성취섭리, 이렇게 4장까지를 이해하고 바탕에 깔면서 이제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삼대언약(자손, 땅, 통치) 가운데 마지막 통치언약 성취섭리가 룻기에서 다윗의 출생 준비로부터 시작된다. 다윗의 출생이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룻기’를 대하게 되면,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했다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성경신학에서는 다윗왕의 출생이 바로 핵심이다. 그것은 성경 66권의 흐름 속에서, 특히 창세기~사사기까지의 지나온 하나님의 섭리 과정에서 볼 때, 룻기는 하나님께서 통치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유다 지파에서 다윗왕이 출생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생생한 섭리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룻이 시어머니에게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그 가문에서 왕이 태어나게 했다는 말이 얼마나 거짓된 말인가. 그러나 성경신학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아브라함, 이삭, 야곱) 언약하시고, 통치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준비된 유다 지파에게서 다윗왕이 출생하도록 하시는 섭리 과정이 룻기에 수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생각은 바로 성경신학에 나오는 성경 구조대로다. 인간의 생각에다 룻의 효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윗왕이 출생하게 된다는 것을 백성들로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함이 핵심이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가 참고 견디어야 하는 교훈이라고 한다면 성경은 인본주의적이다. 성경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 사람으로 가족과 함께 흉년을 피해 이방 땅으로 가게 해서 남자들이 다 죽는 수난을 겪게 하신다. 그리고 그 아내와 자부인 이방 여자 룻을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보호하시는 섭리를 하신다. 그러니까 고향을 떠나 패망해서 온갖 수난을 당하는 자들을 다시 기업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보호해 줌으로 다윗의 출생을 준비하시는 섭리를 하신다. ‘이와 같은 섭리는 본향을 떠나 탕자처럼 온갖 고난을 당하는 아담의 후손들을 보호해 주시므로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출생을 준비하시는 섭리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이다.’(박용기 저, 『성경강론 4』, 1658)
하나님의 살아 존재하심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소망이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이 버려질 수 없다. 가정이 부도가 나서 이제 ‘죽어버리자’ 하였다. 그러나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나로 경험하게 해서 형통한 날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내 생애를 보면 가장 절망적일 때가 소망의 시기가 다가오는 때였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이 목숨 줄 끊어지는 날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어지게 만든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하게 하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신앙고백이다.

아! 곤고한 날(수난)과 형통한 날(보호)을 겸하여 주시는 여호와를 모르게 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짓을 하며 살고 있을까?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강미정 권사 (광주산수서광교회)

유다자손의 수난
택한 백성은 사랑의 봉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