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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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02 20: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김 선생님께


선생님! 지금쯤은 북쪽 하늘 아래 있는 어느 언덕에 고이 잠들어 계신지요? 혹시라도 90이 훨씬 넘으신 노령으로 살아 계실지도 모르죠. 1949년도에 시골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이셨잖아요. 선생님이 저를 반장으로 지명하셨고요. 아시겠죠. 혹시 살아계시면 놀라실 거예요. 저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노라면 항상 선생님이 기억이 나곤 해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유일하게 여선생님으로 저희 반 담임이셨거든요. 성격이 매우 발랄하시고, 운동도 좋아하시고, 공부도 잘 가르치시고, 웅변에도 조예가 깊으시고, 학교에서 미녀 선생님으로 알려졌잖아요. 그리고 저를 끔찍이 사랑해주셨고요. 저만 보시면 만면에 미소를 띠시고 반겨주셨거든요.

저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부했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 매우 즐거웠어요. 전교 웅변대회에서 일등도 했고요. 선생님은 저를 3학년 대표로 웅변대회에 출전하도록 주선해 주셨잖아요. 직접 지도도 해주셨고요. 내용과 억양 또는 감정과 태도 등을 직접 본을 보여주시며 지도해주셨거든요.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장차 훌륭한 웅변가도 될 수 있다고 하셨고요.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실 때는 정말 너무너무 좋았어요. 선생님이 6학년 때까지 담임을 맡아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가끔은 선생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웅변 지도를 해주시는 때도 있었거든요. 전교 운동회 때는 운동복을 입으시고 머리에는 하얀 운동모를 쓰시고 전체 진행을 맡아 활동하시던 모습은 정말 제 가슴을 뿌듯하게 했으니까요. 

어느 날 선생님은 복도에서 4학년 담임이신 남자 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하시느라고 늦게 들어오셨잖아요. 학생들은 복도 창문을 기웃거리며 선생님 연애하신다고 온통 교실이 떠들썩했거든요. 그러지 말라고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선생님이 조금 늦게 들어오셔서 어수선한 교실 분위기를 보시고 노여워하셨거든요.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시면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제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스치면서, ‘반장은 무엇 하는 거야!’ 하시면서 꾸짖었잖아요. 갑자기 눈에서 큰 눈물방울이 주르르 쏟아졌거든요. 선생님! 저는 너무 억울했어요. 사실은 선생님이 수업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늦으셨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였잖아요. 저도 선생님의 태도가 너무 싫었으니까요. 어쩌면 선생님이 자신의 태도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는지도 모르죠. 선생님이 늦으시면 당연히 학생들이 소란스러워도 참으시고 이해를 시켜주어야 하잖아요. 복도에서 선생님을 만나 급한 대화를 하느라 늦었다고 하시면 되거든요. 

선생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밝은 얼굴로 수업을 이끌어 가셨어요. 저도 억울한 마음은 다 잊은 채 열심히 공부했지요. 공부가 끝나고 제가 일어서서 선생님께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거수경례를 했을 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고했다고 칭찬을 하고 가셨거든요. 어느덧 매우 즐거운 3학년 시절이 지나고 봄방학을 맞이해 학생들에게 ‘학업 성적표’를 나누어 주셨어요. 제 이름을 부르시고 1등을 했다고 손뼉을 쳐주시며 칭찬해주실 때는 너무 기쁘고 즐거웠어요. 4학년 때도 선생님이 계속해서 담임이 되어 주시기를 학수고대했으니까요.

봄방학이 지나고 4학년 새 학기를 맞이해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바뀐 거예요. 선생님! 제가 얼마나 섭섭하고 슬펐는지 모르시죠. 한동안 힘이 풀리고 학교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슬픈 생각에 자꾸 눈물이 흘렀거든요. 친구들이 볼까 봐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요. 참지 못하면 구석진 곳에 가서 선생님이 계신 교무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에 새로운 남자 담임선생님이 저를 반장으로 임명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기에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추슬러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지요. 새로운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여름방학을 끝내고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매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1950년 9월 15일에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인천에 상륙작전이 있었잖아요. 그 무렵 선생님이 월북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거든요. 한편으로 섭섭하고 슬프기까지 했죠.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무신론자인 공산당원이라는 사실에 너무 놀라기도 했고요. 그때가 저로서는 웅변가가 될까! 화가가 될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으니까요. 4학년 담임선생님은 자질이 많으니까 화가가 되라고 하셨거든요. 선생님의 소식을 듣는 순간 웅변가의 꿈이 말끔히 사라졌어요. 제가 공산당을 얼마나 싫어했는데요. 신앙생활도 못 하게 하고 저의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거든요. 선생님이 월북하지 않으셨으면 제가 어쩌면 웅변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으니까요. 지금만 같으면 선생님에게 예수를 믿으시라고 전도도 했을 것이고요.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신다는 확증도 해드릴 수 있거든요.

선생님! 지금 저는 웅변가도 아니고 화가도 아니에요. 웅변가가 되었으면 계몽가나 정치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죠. 화가가 되었으면 순수화가로서 가난이나 고생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을 것이고요. 제가 섬기는 영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에 대한 계획이 따로 있으셨어요. 나 스스로 꿈꾸고 계획했던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거든요. 그때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고민이나 방황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생활을 선으로 바꾸셔서 의의 길로 인도해주셨어요.

모든 사상이나 이념은 완전치 못한 인간의 관념이나 경험의 산물에 지나지 않잖아요. 똑똑하신 선생님이 온전치 못한 공산주의 사상과 이념의 포로가 되신 거예요.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를 비롯한 모든 사상과 이념은 근거 없는 헛된 망상에 불과하거든요. 선생님은 ‘너 지금 누구를 가르치려 드느냐’ 라고 질책하시겠죠. 분이 나셔도 참으세요. 지금 살아계시면 직접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 절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산주의를 비롯한 어떤 이론이나 사상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으니까요. 근본적으로 근거 없는 과학적인 이론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너 아주 건방지다’라고 하지 마세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상대적인 인간의 가상적 이론은 비교될 수 없잖아요. 맞잖아요? 선생님! 살아 계시면 뵙고 하나하나 따지고 싶어요. 분을 푸시고 부디 편히 쉬세요. 
2020년 사랑받던 제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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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시는 할머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