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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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18 19:0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원장님께


원장님! 지금쯤은 낙원에서 안식을 누리시겠죠. 저는 미술반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그림을 그리며 신학을 했던 학생이에요. 왜 설교 실습시간에 매우 탁월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잖아요. 여름방학 실습 기간에 전국순회전도 주 강사로 지명해서 파송도 하셨고요. 지금 생각해도 남다른 원장님의 특별한 배려를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벌써 수십 년이 지났는데, 이게 웬일인지 궁금하시겠죠. 원장님은 성경고등학교와 신학교 교장직을 겸하셨잖아요. 그 시절 여쭙고 싶은 의문이 많았으나 감히 여쭙지 못했어요. 왜냐고요? 건방지고 교만하다고 추방당할까 봐 그랬죠. 조금이라도 거역하면 누구라도 당장 추방했잖아요.

1956년, 성경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어요. 모든 학생이 동원되어 드넓은 광장에 대형 천막을 쳤거든요. 바닥에는 멍석이나 가마니를 펴서 성도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고요. 연례행사인 ‘심령대수련회’를 대비한 거였어요. ‘부흥회’나 ‘수련회’라는 말을 그 무렵 처음 듣게 되었죠. 예정일이 다가오자 2, 3일만에 만 수천여 명의 성도들이 운집했거든요.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답니다. 집회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산 계곡에 울려 퍼졌죠. 집회 장소는 이미 만석을 이룬 성도들의 함성이 산 계곡에 울려 퍼졌고요.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우렁찬 관악대의 연주에 맞춰 많은 성도가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다가 크게 통성으로 기도하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지더군요.

원장님이 드높이 마련한 강단에 등단하자 장내는 숨죽인 듯 조용해졌지요. 원장님은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대고 ‘허스키’한 소리로 ‘여러분! 오늘 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세요.’라고 하자, ‘아멘’ 하고 성도들이 크게 화답하는 소리에 정말 놀랐답니다. 이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큰 소리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라고 외치자마자, 장내는 큰 함성과 더불어 요지경을 이루었잖아요. 원장님은 강대용 책받침으로 강대상을 속도 빠르게 두드리면서, ‘주여! 주여! 주여! 불길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소서.’라고 거듭거듭 외치셨지요. 뒤이어 성도들의 감정을 북돋는 관악대의 우렁찬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내는 순식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변하더군요. 원장님은 계속해서 앞서와 같이 4, 5분 간격으로 두세 차례 반복하셨죠. 그 분위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요지경이었지요. 저 역시 고조된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만 이성을 잃은 채 동화되고 말았답니다.

20여 분쯤 장내는 요지경 상태로 지속이 되는데 갑자기 강단의 예리한 타종 소리와 북소리에 성도들의 통성기도가 끝나고 장내는 조용해지는 듯 싶었어요. 순간 또다시 장내는 한층 더 고조된 분위기로 변하며 요지경을 이루었지요. 천막 안을 가득히 메운 이슬 같은 성령의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이었죠. 저도 예외일 수 없잖아요. 성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많아졌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이 진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아마 일찍부터 원장님을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좋은 보약도 많이 사다 드렸을 거예요. 부디부디 오래오래 사시라고요. 제가 끔찍이 존경하며 열렬히 추종했잖아요. 원장님도 저에게 큰 관심을 가져주셨고요. 그렇지 않기에 원장님이 일찍이 안식에 드신 줄 알면서도 이제야 공개서한을 올린답니다. 그 이유를 따져 물어보고 싶으시겠죠.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수 없잖아요. 당시에는 너무 두렵고 떨려 원장님 앞에서 말씀을 드릴 수 없었던 거죠. 아직 앳된 젊은 시절이라 어른 앞에서는 조심스럽기도 했거든요.

1959년 8월,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연례행사인 ‘심령대수련회’가 여전히 열리게 되었죠. 여러 해 공부하고 수련을 해봐도 저 자신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어요. 성자의 꿈과 희망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했고요. 죄 역시 여전히 마음의 평안을 앗아가는 독버섯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던 와중에도 저는 관악대원으로 몸에 하얀 가운을 걸치고 높은 소리는 맑고, 낮은 소리는 깊이가 있는 ‘클라리넷’ 악기를 연주했거든요. 높은 소리로 ‘주님 고대가’를 독주할 때면 분위기가 더 고조되고요. 낮은 소리로 연주하게 되면 눈물바다를 이루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지요. 물론 이슬 같은 성령의 은혜 역시 집회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었으니까요. 졸업을 앞두고 있었으나 저 자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어 좀처럼 분위기에 동화되지 않더군요. 전과는 다른 태도로 청중을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답니다.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의심의 싹이 돋는 거예요. 의심의 마귀가 틈탄 것일까? 이상하다! 왜 성령의 은혜가 다른 장소에서는 임하지 않는 것일까! 성령이 임하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일까? 왜 안개 같은 성령의 은혜가 대형 천막 안에서 통성기도만 하고 나면 임하는 것일까? 왜 ‘클라리넷’을 높은 소리로 연주하면 분위가 고조되고, 낮은 소리로 연주하면 눈물바다를 이루는 것일까?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나 의혹은 멈추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집회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어요. 그제야 감정이 잠재워지고 급기야 이성이 깨어나기 시작하며 제정신을 차리게 된 거예요.

마지막 저녁 집회 때는 분위기에 동화되지 않고 자세히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기로 했죠. 결과는 너무 놀라웠답니다. 이슬 같은 성령의 은혜가 아니라, 바닥에 펼쳐 놓은 가마니와 멍석에서 피어오른 뿌연 먼지임을 알게 되었어요. 성도들이 몸을 흔들고 들썩이며 기도하는 장내는 뿌연 먼지로 가득하게 되기 마련이잖아요. 기도를 멈추고 눈을 뜬 성도들은 착시현상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원장님도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럴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 순간 소름이 끼치며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답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차라리 모르고 속는 것이 좋을 뻔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원장님! 이제 짐작이 가시죠. 어찌 이뿐이겠어요. 냉철한 이성적 분별력에 의해 자세히 살펴보는 대로 계속 실망이 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밤이 너무 늦었네요. 차후에 자세한 글을 다시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주님 재림 때까지 부디 편안히 주무십시오.

2020년, 실망한 제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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