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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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15 21: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김 선배님에게


선배님! 그동안 평안하셨어요? 벌써 수십 년이 흘렀네요. 갑자기 누구인지 궁금하겠죠. 조금만 ‘힌트’를 주어도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기도원 미술부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이른바 성화를 그리던 후배랍니다. 놀랐죠? 서로 사연이 많았으니까요. 선배님이 큰형님 연세였으니까 형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선배님으로 불렀죠. 형제가 많아서인지 혈족이 아니면 형님이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더라고요.

학창 시절, 선배님이 너무너무 부러웠답니다. 제 눈에는 선배님이 성자처럼 보였거든요. 나도 성자의 꿈을 안고 기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니까요. 때로는 낙심하다가도 선배님을 보면 다시 힘을 얻곤 했답니다. 아주 차분한 성격에 저보다 키도 크고 인상도 좋았잖아요. 특히 모서리가 많이 마모되고 손때가 묻은 자그마한 성경책을 항상 손에 들고 다녔거든요.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연필로 표시한 줄이 촘촘하게 그어져 있었고요. 하나하나가 본받고 싶은 마음이 많았답니다. 나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죄 문제로 고민이 많았으니까요.

선배님은 높은 산 중턱에 있는 바위굴에서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나요. 교수님들도 다 알고 있어서 많은 배려를 했던 것으로 짐작했고요. 가끔 만나면 제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자주 만나고 싶었지만, 선배님은 한번 기도 굴에 올라가면 일주일이나 열흘은 보통이었으니까요. 어느 때는 달을 넘기며 머무를 때도 있었잖아요. 선배님을 기다리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다가도 창밖을 내다보곤 했었답니다. 한 번이라도 만나게 되면 성자의 생활 모습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다른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많이 있었으나 선배님이 제일 부러웠으니까요.

같은 반 친구 하나가 있었죠. 미술부 작업실 건너편에서 사시는 장로님과 권사님의 큰아들이 있었잖아요. 그 친구가 초여름 저녁 어두워질 무렵에 ‘팬티’만 입고 비탈길을 걸어 집으로 올라오는 거예요. ‘너 무슨 일이니? 왜 팬티만 입은 거야?’라고 다잡아 물었죠. 빙그레 웃으면서 ‘오다가 거지를 만나 다 벗어주었어.’ ‘그럼 왜 팬티는 벗어주지 않았니?’라고 물으니까 손으로 아래를 가리면서 그건 곤란해서 그랬다는 거예요. 그날 밤 자리에 누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는 말씀을 되새겨 보았거든요. 친구는 거지에게 겉옷은 벗어주었으나 속옷까지는 벗어주지 못했으니 완전한 성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마음속으로 은근히 친구에 대한 시샘이 작용한 거예요.

선배 하나는 성자가 되기 위해 정말 어려운 결정을 단행하기도 했거든요. 한참 젊은 날 얼마나 정력이 타오르겠어요. 너무너무 괴로웠겠죠.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죄가 되는데…! 어느 날 만났는데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하는 거예요. ‘며칠 전에 나 병원에서 거세했어.’ ‘어! 이게 무슨 소리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잖아요. 한편 부럽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했죠.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죠. ‘아! 성자의 길을 가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로구나!’ 생각이 더욱 깊어지면서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거든요.

선배님! 내가 선배님을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모르실지 몰라요. 그때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치고 서로 헤어져 오늘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잊지 못하는 사연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선배님이 들으시면 매우 좋아할지도 몰라요. 선배님은 겉옷과 속옷을 벗어주거나 거세하지 않고도 성자가 되었잖아요. 너무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선배님처럼 그러고 싶은 마음에서였죠.

하루는 선배님이 오랜만에 참한 여고생 정도의 처녀와 함께 굴에서 내려오셨잖아요. 그 순간 나는 너무너무 놀랐어요. 저런 행위는 당연히 죄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죠.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너무 실망이 컸답니다. 그때 선배님은 차분하게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얼마 전부터 이 학생하고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다가 굴속에서 같이 잠이 들어도 아무런 충동이 일어나지 않아.’라고 했잖아요. 나는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나는 여학생을 보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이 두근거렸거든요. 그 죄 때문에 몇 년 동안을 고민하며 몸부림을 치고 울면서 살았잖아요. 선배님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었어요. 그 당시 물어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답니다.

결국은 성자의 길을 완전히 포기하고 귀향을 하게 되었지요. 하루는 외가에 갔는데 그 마을 교회 장로님이 사경회 인도를 부탁하시더라고요. 1961년 1월에 그 교회에 가서 한 주 동안 성경을 강론했거든요. 그 교회 장로님은 잘 알고 있는 터라 교회와 집안 사정을 말씀하시는 중에, 어느 부흥강사가 부흥회 끝나자마자 장로님 딸과 함께 야간도주를 했다는 거예요. 세상 그런 일이 있을까! 정말 황당했죠. 어쩌면 나에 대한 경고로 들리기도 했고요. 알고 보니 학창 시절 거세했다는 선배였어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한편 생각하기를 ‘아 거세를 해도 성욕은 여전한 것이구나!’ 거세를 안 하고 성자를 포기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십 년 후에 팬티만 입고 집으로 돌아온 동창을 만났거든요. 내 소식을 알고 전화로 이른바 헌신예배 인도를 부탁하더라고요. 성자는 아니지만,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었어요. 만나는 순간 역시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성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과거의 아픔을 싸맬 수 있었답니다. 문제는 선배님이 궁금한 거예요. 선배님은 지금쯤 정말 ‘어거스틴’처럼 성자가 되어 어느 깊은 산속에서 맹수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가끔 TV 채널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혹시나 하고 눈여겨보기도 한답니다. 아직은 살아계실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지금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참 궁금하거든요. 만나게 되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참고가 될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아요. 이 글을 보는 즉시 연락을 주시면 찾아 만나서 좋은 시간 갖고 싶어요. 부디 만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주안에서 강건하길 기도해요. 안녕히 계세요.


2021년, 부러워했던 후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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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님에게
관악대 대장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