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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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0-20 11:0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강 박사님께


박사님! 달려갈 길 다 달리시고 편히 안식에 드셨죠. 박사님은 학교를 정규대학으로 승격시켜 총장으로 부임하시고요. 저는 1970년 3월, 학교 역사 이래 유례없는 전액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특혜를 누리며 공부한 문하생이에요. 빈소를 찾아 가벼운 미소를 지으시는 영정 앞에서 잠시 눈시울을 붉혔답니다. 세월이 갈수록 철이 들어가며 박사님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더군요. 풍운의 웅지를 품고 농촌 계몽운동에 여념이 없을 때였죠. 1969년 1월 말, ‘농촌계몽강연’의 연사로 박사님을 초청하려고 학교를 방문했잖아요. 얼굴이 태양에 그을려 검게 탄 촌뜨기의 초청에 선뜻 응해주셨던 깊은 뜻에 항상 고마움을 잃지 않고 살았거든요. 제 딴에는 박사님의 티 없는 배려에 예의도 지키고 보답도 하며 살고 싶었죠. 교회 개척 시절 모교 후배들을 위해 후원도 하고 싶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기도 했고요. 제가 받은 혜택에 비하면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마음이라도 표현하고 싶어서였죠.

박사님! 학생들의 데모로 학교가 혼란스러울 때, 저를 불러 ‘채플’ 시간에 강단을 맡겨주셨잖아요. 제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박사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곤 했어요. 철부지 후배들이 박사님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유리창은 물론, 책상과 의자 또는 기물들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박사님이 팔짱을 끼신 채로 몸을 건물 벽에 기대시고 긴장된 얼굴로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모습은 못내 잊을 수가 없어요. 저도 철이 많이 들었나 봐요. 지금은 박사님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어요. 제가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죠. 학용품과 교재는 물론, 교실까지 마련하고 교사들의 생활비까지도 제공하려고 했으니까요. 차후의 보상을 기대하며 헌신적인 봉사를 한다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임을 일찍이 터득했어요. 지금도 사랑하는 지체들과 값진 보화를 거저 나누며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거든요.

박사님의 유지가 지금도 여전히 계승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어떤 경우라도 지난 역사를 모르면 자신의 코밑만 살펴보기도 하고, 야망에 사로잡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채 눈앞만 쳐다보며 행동하더라고요. 그로 인해 소중한 지혜를 얻었어요. ‘우매자는 코밑만을 살펴보고, 야망인은 눈앞만을 쳐다보고, 교양인은 앞뒤만을 내다보고, 군자라면 사방만을 둘러보고, 지혜자는 여호와만 바라본다.’라는 것이었어요. 성경을 연구하면서 온갖 시련을 거치며 깨달은 지혜거든요. 박사님께는 좀 대수롭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저로서는 매우 소중한 지혜예요. 뜻하지 않게 피해당할 때마다 가해자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잖아요. 어떠한 경우라도 여호와만 바라보면 전후좌우 상하를 두루 살피게 되더라고요.

저는 박사님의 영향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판단의 기준을 오직 성경에 두셨기 때문에 강의 시간에 학자들의 이름이나 학설을 소개하시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으니까요. 오죽하면 ‘채플’ 시간에 출석을 확인하실 때, 성경을 한두 구절씩 암송하도록 하셨잖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박사님의 성경 제일주의 사상만큼은 정말 본받고 싶었어요. 저도 강의 시간에 학자들의 이름이나 학설은 거의 언급하지 않아요. 성경으로 시작해서 성경으로 마치죠.
박사님의 배려로 무사히 졸업하고, 선배들의 뒤를 따라 이른바 명문대학 신학연구원에 진학했어요.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이 있어서였죠.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을 비롯한 하나님의 존재 증명,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조화, 선악과의 의미, 사단의 기원, 죄의 기원, 선과 악의 개념, 전택설과 후택설, 예정론과 우연론, 율법과 복음, 믿음과 행위, 영아의 구원, 국가와 종교, 지구의 연대, 과학과 신학의 조화 등 중요한 문제들이 많았어요. 정말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해답을 얻어 보려고 3년 동안 열심히 연구했지요. 결과는 도리어 문제의식만 증폭이 되었어요. 졸업한 후에도 관련된 신학 서적을 살펴보아도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거든요. 세월만 낭비했나 싶어 정말 허탈하고 화도 치밀더라고요.

박사님! 화나실까 봐 조심스러워요. ‘너 많이 컸구나! 건방진 녀석, 뭐 그렇게 의문이 많아, 그냥 성경대로 믿고 목표를 정하여 열심히 살면 되지!’라고 야단을 치실 것만 같아요.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짐승과는 달리 소중한 이성을 가진 존재잖아요. 그냥 무조건 믿을 수는 없잖아요. 맹신할 수는 없잖아요. 지성으로 깨달아 알고 감성으로 느끼며 의지력에 의해 믿어지는 이성적 결단이 있어야 하잖아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다면 자기 스스로 속이는 행위일 수밖에 없거든요. 성경을 알지 못하면 남을 속이기도 하고 자기도 속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박사님! 화나셨으면 이해하시고, 제 고민을 한번 자세히 살펴주세요.

이른바 명문대학 신학연구원을 거쳤어도 고민과 갈등은 여전했어요. 목회를 할 것이냐! 그냥 계몽운동을 하면서 사상가로 살 것이냐! 한동안 갈등을 많이 했죠. 강도사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거든요. 나름대로 성경을 부분적으로 깨달은 것을 20여 명의 성도에게 열심히 가르치면서 목사 안수까지 받았어요. 후배들의 부탁으로 ‘로마서 강론’을 하게 됐지요. 그 후로 고민했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너무 소중하기에 글로 남기려고 집필을 시작해서 ‘성경신학총서’를 비롯한 관련 도서 수십 권을 집필하게 되었어요. 모교를 비롯한 신학대학 및 각종 종합대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도록 기증했고요. 지금은 한국 교회 전 현직 총회장님 또는 신학대학교 전 현직 총장님들께 연구보고를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박사님! 건방지게 느끼실지 모르는 문하생이지만, 지금까지 동정을 보고해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서 공개서한을 올리게 되었어요.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한국 교회는 물론, 세계 교회를 사랑하시는 섭리로 믿고 있어요. 그러기에 오직 모든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요. 부디 편히 쉬시다가 주님 재림하시면 뵙고 큰절 올리겠습니다, 편히 주무세요.

2021년, 사랑받은 문하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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