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5일 (금) 

> 학술 > 철학 >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로고스의 운동력과 소피아의 대이동
기사공유 작성일 : 19-09-18 20:00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스물 하나. 종교개혁 후예들의 세속 정치화 과정<1>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롬 13:1-5)


위의 본문을 보면 세속의 국가 권력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그리고 국가 권력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이다. 권력자들의 손에 쥔 권력은 하나님의 사자(使者)로서 역할을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권력자가 손에 쥔 공권력이 무서워서라도 복종하게 되지만 하나님이 세운 세력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을 가지고 그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마저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 집단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진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한 도구로서 세속 정치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주관하심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1517년 종교개혁 이후의 역사 몇 가지를 살펴보면서 현대 국가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소견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칼빈 이후 개신교를 통칭하여 ‘개혁주의 기독교’라고 한다. 그런데 개혁주의 기독교는 세속 정치와 적지 않은 갈등을 일으켰다. 종교개혁 운동에 참여한 지역들은 중세 로마 가톨릭의 교황 지배 체제와 그리고 교황 세력과 결탁하여 백성들을 억압하던 군주들과 귀족들에 대해 반항적일 수밖에 없었다. 칼빈이 개혁 운동을 전개했던 스위스 제네바의 경우는 비교적 큰 충돌 없이 교회와 제네바 세속 권력은 합의를 이루었다. 하지만 다른 곳,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등에는 그렇지 않았다. 제네바에서 칼빈이 세속 권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모양새가 보임에 따라 다른 나라들은 칼빈의 제네바를 정치적 혁명의 모델로 생각했다. 칼빈이 정치적 혁명의 상징처럼 부각되었다는 사실에 그 사실과 진의(眞意)가 왜곡되는 것을 본 칼빈도 충격을 받을 지경이었다. 칼빈의 목표는 제네바 시를 교회가 정치 위에 군림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하려고 했다면 중세 로마 가톨릭과 다를 바가 없고 성경의 진리에도 충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자들 중에는 임금에게 불만이 있었던 영주(領主)와 귀족들도 많았다. 이들은 로마 교황과 군주에 항거하는 시민들과 쉽게 단결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과 달리 귀족들은 이미 권력을 쥐고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었던 지배 계급이었기 때문에 이들과 일반 군중들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일반 백성들이 보기에 중세 천 년 동안 거의 한 통속이었던 음녀권세(로마 가톨릭 세력)와 짐승권세(교황과 결탁한 세속 권력)는 공동의 적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관련된 갈등과 전쟁이 50년 동안 이어졌고 스코틀랜드에서는 가톨릭교도였던 여왕 메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사회적 범죄에 대해서는 로마 가톨릭이 행하였던 것처럼 엄격하게 법질서 교란자들에 대해서 공개 처단했다. 중세 로마 가톨릭이 저항하던 종교개혁자들을 잔인하게 응징했던 것처럼 교황 체제에서 벗어난 개혁주의 나라에서도 사회 통제 방식은 거의 로마 가톨릭과 방불하기도 했다.(앞의 책, 447) 이러한 개혁주의 지배를 정당화해준 것이 바로 앞에서 인용했던 성경 본문들이다. “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벧후 2:13-15) 이러한 구절들이 악용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쥔 세력들은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여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사용함으로써 중세 교황과 주교들이 행하였던 폭정(暴政)이 다시 재현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황 세력에 맞서서 규합하는 개혁주의 정치적 세력들에 대해 로마 교황청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대표적인 교황 지지 세력의 군대가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다. 1492년 지리상의 대발견으로 아메리카로부터 대량의 부를 탈취한 스페인은 내부에서 이슬람과 맞서서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 Reconquista)까지 승리로 이끌면서 그야말로 스페인 대함대 정복 시대를 열며 교황의 용맹스러운 군대가 되었다. 이들은 개혁주의 옹호자들과 그 국가들을 교황의 이름으로 잔인하게 처단했으며 그러한 만행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교황에 대한 충성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북해와 대서양에서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해군 제독들에게 대패함으로써 그 기세는 꺾였다. 이러한 분열과 전쟁의 역사는 교황 중심의 단일 유럽을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교황 중심의 로마 가톨릭 체제와 개혁주의 정치체제로 양분시켰다. 주로 북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주의 정치체제와 중남부 유럽의 로마 가톨릭 체제로 분할되는 양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의 유럽의 종교 문화적 지형도이기도 하다.
또한 거짓 사상으로 종교지도자들에게 무참하게 농락당했던 유럽 시민들은 종교개혁 이후 종교지도자들의 정치적 독점을 철저히 경계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와 헝가리였다. 시민과 종교인들의 다양한 종파를 종교적으로 자유롭게 허용하되 종교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면 시민들 중심의 세속 권력은 종교 세력을 견제했다. 종교개혁은 개혁주의 기독교라는 형태로 국가와 시민 사회도 바꾸어 놓았다. 개혁주의 기독교 국가들은 시민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열어주는 것이 사회 안정의 큰 유익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 권력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은 한 가능한 다양한 종교 활동을 허용했다. 1568년 헝가리 토르다 교회에서 트란실바니아 의회가 가결한 내용을 보면, 종교개혁 이후 종교 지도자들을 세속 권력이 보호해 주는 경우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목회자는 자신이 복음을 이해하는 대로 어디서나 설교하고 선포해야 한다. 그들의 공동체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누구도 강요를 받아선 안 되며, 목회자의 가르침이 공동체를 기쁘게 한다면 그의 자리는 유지되어야 한다…그 누구도 자신의 가르침 때문에 추방되거나 수감되는 위협을 받아선 안 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앞의 책, 450)

그런데 종교 지도자의 자율권을 세속 권력이 쥐게 되자 이제 세속 권력은 로마 교황이 세속 군주를 관리했던 방식을 다시 반복하게 된다. 세속 권력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운 권력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도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 권력이 임의로 세속 권력을 자기 수하에 두고 자기 멋대로 사용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종교 세력 역시 다만 하나님께서 부리는 시종(侍從)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속 권력도 하나님께서 그 권력을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세웠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종교적 가르침을 좌우지 하거나 자기 욕심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원칙들은 유럽 사회에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성경진리대로 이 땅에서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다. 이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뒤로 하면서 성경진리의 권위는 한국 교회를 지나 중국으로 중앙아시아로 동남아시아로 빠르게 향하고 있다. 교회와 세속 권력의 관계는 항상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한국 교회 현실로 보면 두 집단의 자기 욕심이 극과 극에 달하고 있다. 더 참담한 것은 그러한 섭리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점점 망각하고 있고 성경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이 준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교훈은 분명하다. 교회는 물론 세속 국가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딛 3:1-2)

<182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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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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