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0-09-27 12:3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스물 아홉. 종교개혁의 혜택에서 멀어진 남아메리카의 슬픈 역사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5-15)


성도들에게는 익숙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의 본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천국 복음의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주권적으로 관리하시는지 확정 짓는 내용이다. 이 말은 네 가지 상황 가운데 성도들이 잘 선택하라는 교훈이 아니다. 천국 복음을 듣게 하거나 듣지 못하게 하는 주권과 은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계시하는 말씀이다. 말씀을 들었지만 마귀가 이내 마음에서 빼앗아 가는 엄격한 섭리, 진리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으나 진리를 배반하는 상황, 진리의 말씀을 삶의 염려와 물질과 쾌락의 노예로 삼는 경우,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하에 있다. 물론 좋은 마음으로 진리의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은 전적인 은혜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하에서 앞의 비유보다 더 못한 아예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환경에 처했던 16세기 남아메리카의 슬픈 역사를 잠시 살피고자 한다.

16세기 초 유럽에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해 종교개혁이 한창 일어나고 있을 때 서유럽 서쪽 끝 스페인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고 있었다. 로마 교황에 대한 충성맹세의 국가 스페인의 많은 수사들 특히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은 선교라는 미명하에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하는 스페인 피의 정복자들과 함께한다. 예수회의 창시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1491-1556)의 조카 마르틴 가르시아 데 로욜라는 잉카 제국 최후의 지배자 투파크 아마루를 죽이고 그의 조카딸과 정략결혼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란체스코회 수사들은 1500년경을 세계 종말의 시기로 보고 천년왕국 준비를 한답시고 식민지에 완벽한 예루살렘을 건설하고자 했다. 사탄을 추방한다는 이유를 들어 원주민을 학살하고 약탈하면서 식민지 확장에 함께하던 사제들과 수사들은 원주민들의 태양 숭배를 모방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원주민들이 숭배하던 종교적 의식이 유럽 가톨릭 의식으로 역수입하는 일도 일어났다. 스페인 침략군들은 16세기 중반 마야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심문하고 고문하고 처형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요하면서도 원주민들은 결코 사제가 될 수 없도록 한다. 종교를 통한 철저한 계급화 전략을 통해 원주민들에 대한 지배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원주민들이 사제가 되는 일은 그 후 200여 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게 된다. 원주민에 대한 약탈이 더욱 극심하자 예수회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착지를 따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땅 전체가 유럽에 있는 권력자들 소유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예수회는 식민지 약탈자에게 번거로운 존재가 되어 미움을 받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강제 추방까지 당한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회 신부들의 선행이 돋보인다는 뜻이 아니라 스페인 침략자들의 약탈이 얼마나 잔인무도했는가를 확증해 주는 증거가 된다.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자 했다. 왜냐하면 언어를 소통할 수 있어야 식민지 정복과 정착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부 수사들은 원주민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기보다 자신들이 원주민 언어를 배우고자 했다. 그래서 원주민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 원주민들에게 무서운 참사가 뒤따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침략자 유럽인들이 감염시킨 유행병으로 인한 인명 손실이다. 바로 천연두(天然痘)였다. 유럽에서 시작한 이 풍토병은 남아메리카를 초토화시켰다. 1518년 2,500만 명으로 추정되었던 멕시코 지역 인구가 70년 정도 지났을 무렵 1585년에는 190만 명으로 줄었다. 십 분지 일만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감염병으로 노예가 줄자 침략자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들여왔다. 하지만 아프리카 노예와 함께 말라리아나 황열병도 함께 들어왔다. 남아메리카는 그야말로 약탈자들에게는 부를 몰아준 신대륙이었으나 원주민들에게는 종말을 연상시키는 지옥을 경험하게 했다.

이러한 약탈과 유행병의 와중에 남미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로마 가톨릭의 혼합을 통해 토착화된 가톨릭으로 종교문화가 바뀌어 갔다.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토착 음악에 사제들은 가톨릭 교리문답을 가사로 담아주었다. 인디오들의 춤도 성당 안에서 허락해 주었다. 미술과 건축을 가톨릭 문화 예술과 혼합시키는가 하면 가톨릭 축일을 원주민 축제일과 겹치도록 하여 세월이 지나가면서 가톨릭 축일인지 민속 축제일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원주민 귀족의 자녀들은 수녀원 학교로 보내 양질의 스페인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렇게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의 전도 활동이 오랫동안 성공을 거둠으로써 가톨릭교회는 원주민 문화의 핵심이자 원주민들을 남유럽 문화와 엮어주는 끈”(539)으로 만들었다. 현재 남미 국가 대부분이 왜 가톨릭 국가로 남아있는지 바로 이러한 수 세기 전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성경권위 중심의 복음진리가 아닌 원주민의 미신숭배와 무속 행위에 로마 가톨릭의 전통과 의식이 혼합하여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행태의 혼합 종교로 탄생한 것이 16세기 이후 남미의 종교문화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유럽 열강에 의한 약탈이 반복되는 동안 빈곤 국가로 전락하고, 유럽에서 꽃핀 성경진리의 은총이 함께한 종교개혁의 혜택에서는 점점 멀어진 남아메리카의 운명은 그 역사를 보면 한마디로, 슬프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남아메리카와는 달리 북아메리카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으로 제2의 종교개혁을 준비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었다.


<198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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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성경신학학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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