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1-02-02 20: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서른둘.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 1


16세기 종교개혁은 당시 유럽 전체를 종교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로마가톨릭은 물론 유럽의 국가들과 그들의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성경권위’에 압축되어 있다. 로마가톨릭이 ‘교황권위’에 의해 그 정체성이 결정된다면 종교개혁 운동은 그러한 교황의 권위가 허구임을 폭로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종교개혁 운동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비롯한 모든 종교적 허구를 폭로하는 원동력도 하나님께서 성경을 깨닫게 하심으로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성경권위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주창했던 개혁 운동의 이념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운동력(히 4:12)을 약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과 그에 따른 실천의 오류 없는 유일한 권위는 성경의 문자가 아닌 성경의 원저자인 하나님의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면서 이하에서는 종교개혁 당시와 그 이후 서구 역사에서 성경권위가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보호받을 수 있었으며 나아가 한국 교회에도 전파되는 무한한 신적 은총의 역사가 이어졌는지 일부 살펴보고자 한다.

독일 중북부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확산하고 있던 16세기 초엽 성경의 권위를 대적한 자들은 바로 로마가톨릭이었다. 이들은 성경본문 비평에 능통한 인문주의 학자들을 발탁하여 세속적 문헌학과 역사비평을 활용하여 종교개혁의 성경권위 주장을 비판하도록 하였다. 그 목적은 인간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성경 이해는 인간 해석의 결과이므로 해석의 기준으로 교황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성경의 오류를 찾아서 개혁파 진영의 개혁 운동의 근간인 성경의 무오류성을 공격하였다. 당시 이러한 인문주의의 역사비평적 전략들은 종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지식과 학문을 추구하고자 하는 젊은 지식인들에게 큰 관심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철학 분야에서 성경권위 그 자체를 문제 삼은 유대인 출신의 유명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다. 그는 23세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유대인 회당에서 공적으로 저주받아 추방당했다. 추방의 원인이 된 논문은 “신학적 정치학에 대하여(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1670)”였다. 이 논문에서 스피노자는 성경을 다른 책과 차이가 없는 문서라고 하며 특히 성경에 기록한 기적은 반드시 비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인간의 산물이며 종교 세력들은 성경을 이용하여 인간을 통제하는 족쇄로 사용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스피노자의 논문을 너무도 불경스럽다고 여긴 네덜란드 당국은 불태워 버렸으며 로마의 종교재판소는 스피노자를 고소했다.(78)

이러한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는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도 가세한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조롱하면서 기독교에서 신뢰할만한 교리는 하나도 없다고 혹평했다. 그는 성경 사본의 차이점을 지적했으며 이러한 작업은 당대에 지식인 사회에 만연하여 권위 있는 성경신학자라는 존 밀(John Mill, 1645-1707)은 사본들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무려 3만 개 정도나 된다고 비난했다.(81)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적어도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지식 추구의 토대로 여기는 지식 사회에서 성경권위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종교개혁 200여 년이 지난 유럽에서 성경을 유일무이한 오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진리의 말씀으로 확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성경권위의 추락이 진행되는 과정에 1680년경 네덜란드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저서 한 권이 익명으로 출판된다. 『세 명의 사기꾼에 대한 보고서』라는 제목이며, 세 명의 사기꾼은 모세, 예수, 모하메드를 지칭한다. 이른바 셈족 계열의 종교는 모두 허구라는 비난과 조롱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도 악마도 없고, 천국이나 지옥도 없다. (……) (신)학자라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천하의 악당들이며 자신들이 가진 권세로 무지한 사람들을 부당하게 현혹하는 자들이다.”(84) 그런데 성경권위에 대한 도전은 외부보다 기독교 내부에서 더욱 극성을 부렸다. 대표적인 성경권위의 적대행위는 바로 유대교와 (프랑스 개혁주의 분파인) 위그노(Huguenot) 교도 내에서 발생했다.(84) 유대교의 대표적인 적대자가 바로 스피노자였음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위그노는 종말론인 열망을 지향하는 경향이 컸으며 성경 본문에 대한 역사비평의 전통을 따랐다.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사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한 성경권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문자 중심으로 기독교 신앙을 규정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성경 진리에 대한 지적 탐구를 통한 기독교 이해는 점점 밀려나고 성도들 전부 나아가 대중들도 공감할 수 있는 전략을 발전시킨다. 대표적 예가 종교음악의 발전이다. 성경에 기초한 교리 중심의 기독교 이해가 점점 신학의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고, 선민의식이나 원죄 문제 혹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등의 주제들은 점점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반면 세속적 부귀영화, 인간의 자유, 개인의 행복 등이 신학의 주제로 부상했다. 또한 교회의 인적 구성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교회 출석 인원의 대다수를 여성이 채워가고 있었다. ‘여성적 종교성’이 영성 훈련에서는 여성의 성실하고도 온화한 성품이 도덕적 민감성 면에서 남성보다 더 뛰어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17세기말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 페미니즘’(99-100)의 토대가 놓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유럽에서 발흥하기 시작한 기독교와 관련된 이러한 운동은 성경권위의 추락이라는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기독교의 대중적 확산은 폭넓게 진행하는데 정작 기독교의 본질을 규정하는 기준인 성경의 신적 권위는 퇴락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앞의 성경권위 대적자들을 지금 한국 교회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직접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단자뿐 아니라 성경은 인간의 의도적 조작에 의한 문서 조합이라고 말하는 자칭 신학자인 자도 만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성경은 각자 나름대로 읽고 실천하면 된다고 하거나 일부 목회자들은 성경에 대해 질문하는 성도들에게 너무 알려고 하지 말고 목사의 설교만 들으면 된다고 한다. 해석이 모호했던 본문을 의도적으로 골라 이미 정해 놓은 목적에 억지로 끼워 넣는 이단들도 적지 않다. 심각한 종말론 조작을 일삼는 자는 수시로 등장했다. 참으로 성경을 펼쳐서 읽고 그것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확증적 증거로 보며 살아가기에는 성경권위를 부정하는 많은 부류의 대적들이 영혼의 약탈자처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마음 아픈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성경의 원저자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돌보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전 1:20-21)
<204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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