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1-07-21 21:0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안회의 학문자세


子曰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자왈 현재외야 일단수  일표음 재루항 인불감기우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외야불개기락 현재회야.

논어 옹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어질도다 안회여. 밥 한 그릇, 국 한 사발뿐이고 누추한 곳에 사는구나. 사람들은 그런 금심을 감당할 수 없지만, 회는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 어질도다 회여!”

이전에도 안회(顔回, B.C. 521~481)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안회는 공자가 제일로 여기는 제자다. 본문은 왜 공자가 그렇게 그를 귀하게 보고 뛰어난 인물로 신뢰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회는 가난했다. 그의 식사는 밥 한 그릇에 국 한 사발이 전부 다였다. 사는 곳은 누추한 곳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도시 변두리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난과 어려움이 그가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회는 스승 공자와 더불어 더 열심히 학문에 열중하였다. 이것이 그의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즐거움을 어떤 다른 것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배움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이 즐거움 속에 살고자 하였다. 그의 현실의 삶은 이 즐거움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현실의 생활 저 너머에 있었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안회의 배움의 즐거움과 뛰어난 자질을 알아챌 수 있었다. 공자는 이곳저곳 도를 펼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유천하를 했다. 본문의 장면이 그가 주유천하를 하기 전인지 그 후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공자가 도를 펼칠 벼슬자리를 찾고자 했다는 것이고 끝내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출신 성분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공자는 안회의 학문적 열정과 자질의 뛰어남을 보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했을 것이다. 안회는 배움의 즐거움을 즐길 뿐, 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는 것이었다.
논어의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시작한다. 논어의 주제가 배움을 통한 즐거움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공자가 자신의 삶과 안회의 삶의 연합에서 배움의 목적이 즐거움에 있음을 발견했다고 본다.

공자와 안회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본받을만한 것은 무엇인가. 공자에게서는 스승으로서 제자를 깊이 이해해주고 그 진심을 알아주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안회에게서는 자신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 즐거움을 누리는 생활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제자에 대해 사탕발림의 말이나 겉과 속이 다른 평가가 아니라 속마음에서 느낀 그대로 제자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먼저 된 그리스도인이 제자나 다른 이들에 대해 왜곡된 평가나 마음에 없는 평가를 하는 것은 수치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고 평가하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안회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즐기며 그 가르침 안에서 살아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며 행복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유산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주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이 믿음이 하늘의 보물을 내 것이 되게 한다. 그리고 기도로 그 보물에 닿아야 한다. 보물을 확인한 후에는 이 보물만을 기대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외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 이 보물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한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도 그리스도를 알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바르게 바라보고 그들의 즐거운 삶을 인정하고 부러워하자. 동시에 우리 자신도 이 즐거운 삶 속으로 뛰어들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이 삶을 즐기자. 그리스도의 즐거움과 우리의 즐거움이 함께 어우러져 이 즐거운 삶 속으로 더 많은 이들을 초대하는 우리가 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신’이 된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서른여섯.19세기 영국 기독교의 변질: 가톨릭으로 회귀하는 ‘옥스퍼드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