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1-02-22 22:3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기독론에서 성경관으로


신약시대의 교회사는 신약 성경의 배열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이루어졌다. 위 제목은 2000년 교회사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정해지게 되었다. 세계교회사는 근본적으로 성경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오늘의 교회조직이나 실상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로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다. 본 글의 중요한 목적은, 지금의 교회사가 근본적으로 성경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2000년 교회사에서 500년이나 1000년 동안에 중요한 쟁점들이 있어 왔다. 예수께서 오시고 가신 후에는 기독론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완성되고 2000년대로 가까워지면서 성경관에 그 관심들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빅(Big)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이 현실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오면서, 성경을 더욱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길들이 다양하게 열릴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을 전체적이며, 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결합하여 하나로 볼 수 있는 것도 앞으로 점점 발달되리라 예상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고 안배하여, 여기서는 간단히 신약 성경의 배열 순서를 따라 교회사의 쟁점들이 있었다는 것을 개략적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1) 기독론에서 교회론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약 500년 동안, 기독론이 그 중심에 있었다. 기독론의 긴 논쟁을 통하여, 칼케돈 회의(451)는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라는 애매모호(曖昧模糊)함의 극치를 만들어냈다. 이것에 대한 온전한 해답이, 이목구비 즉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2000년대에 이르러 밝혀졌다. 왜 복음서는 4복음서로 존재하며 그렇게 구분되는 것은 꼭 필요한가? 이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성경 전체 곧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결합으로, 그 안에서 풀려지게 되었다. 이 질문을 ‘이목구비가 모두 필요한가?’로 대비해서 생각해 보면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목구비는 각각 고유한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잘해낸다. 이처럼 4복음서는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 각각의 위치에서 각각의 주제와 특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을 보고 구별할 때도 이목구비가 다 함께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분명해진다. 만약 옆에 달려 있는 귀만 내놓고 앞에 있는 눈과 입과 코를 가린다면, 누구인지를 구별하고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성경신학(박용기)은 이 4복음서의 주제들을 분명히 증명하였다. 그것은 직임(마)과 신분(막) 그리고 사역(눅)과 본성(요)이다. 4복음서에 이어서 사도행전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다. 세계교회사를 돌아볼 때 더욱 그러하다. 기독론에 대한 집중적인 논쟁의 기간을 거쳐서, 1000년도로 다가오면서 교회론의 논쟁이 뜨거웠다. 이것은 4복음서 다음에 바로 사도행전이 붙어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사도행전의 주제는 교회설립이다. 성령께서 오셔서 교회를 세웠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증명하였으며 지상의 교회들에게 참 생명을 주었다.

2) 구원론에서 성경관으로

기독론과 교회론 그리고 구원론보다 성경관은 아주 전체적이며 포괄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논(論)’보다 ‘관(觀)’을 붙여 사용한다. 세계교회사는 밀레니엄을 거쳐 1000년을 경험하였다. 이것은 “主께는 하루가 千 年 같고 千 年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고 하신 진리를 역사적으로 증명해주었다. 중세기에 들어와서 로마 천주교가 점점 왕성하였다. 바로 구원론이 16세기 종교개혁의 발발까지 논쟁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 또한 사도행전 다음에 바로 로마서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로마서의 주제는 구원(의롭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다음의 고린도서는, 그 전서의 13장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성경이 완성되는 시대로 흘러 급기야 지금 21세기에 다다랐다. 성경을 안다는 것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요한복음의 마지막에서 4복음서를 정리하였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으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장악하였다. 21세기를 거치고 있는 지금 세계교회사는 성경관을 그 어느 때보다 중시하고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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