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1-04-26 22:2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창조와 관계 깊은 심판


창조는 인류의 시작이다. 동시에 심판은 인류의 종말이다. 이와 같이 창조와 심판은 모두 인류와 밀접하다. 이 어마어마한 창조와 심판을 관계 지어 논하면서, 분석하고 종합할 수 있는 것은 성경 때문이다. 그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체계화를 이루고 있다. 이 체계 속에서 생명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고 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기독교 성경관은 모든 관점의 근본적인 시각이다.
기존의 뿌리 깊은 기독교 성경관에 바탕을 두고서, 구약성경의 창세기와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삼아 시작부터 끝까지를 통과하고 싶다. 창조의 뿌리는 창세기의 시작 부분이다. 심판의 결론은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설립(사도행전)으로부터 교회투쟁(히브리서~유다서)까지를 이어 나오는 교회승리이다. 이렇게 볼 때, 창조와 심판을 연계 짓는다는 것은 성경전체를 그 대상으로 삼는 셈이다.
성경전체의 체계는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이론과 실제의 근본적인 근거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함께 엮어진 전체에 있다. 이제 성경을 전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이해의 폐단을 한두 가지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바로 부분의 극대화를 통하여 성경의 정신에 빗나가서 인본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체를 확인하지 못하면 마음이 좁고 치우쳐 편협 되게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자기가 아는 부분을 극대화하여 남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게 된다. 이러한 폐단을 제기하면서, 성경전체를 부각시키기 위해 창조와 같은 심판과 또 심판과 같은 창조로 나누어 간략히 진단한다. 그중에서도 숫자 7은 크게 주목을 받는다.


1) 창조와 같은 심판

요한계시록에서 첫째부터 일곱째까지 심판의 광경은 세 차례 나온다. 첫째는 인(印)을 떼는 장면(4장~7장)이다. 둘째는 나팔(trumpet)을 부는 장면(8장~11장)이다. 셋째는 대접(bowl)을 땅에 쏟는 장면(16장)이다. 이 세 차례의 장면은 본질과 원리 면에서 창세기의 일곱째 날까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인 뜻에 그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날까지 매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강조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선(善)이고 동시에 의(義)다. 일곱째 날의 안식이 어찌 그분의 뜻이 아니겠는가? 창세기에서는 순서적인 창조가 단 한 차례 나오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비슷하고 닮은 장면이 세 차례 나오고 있다. 이 세 차례의 장면은 목적과 원리 면에서 동일하다. 목적 면에서 모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계시(啓示)하고, 동시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하고자 함이다. 원리 면에서도 창세기의 6일 창조와 분리될 수 없다. 특히 여섯째 날의 창조에서 땅의 짐승이 그 종류대로 나오게 된다. 같은 날에 사람이 창조되었다. 이 짐승과 사람은 다른 피조물보다 훨씬 관계가 깊고 서로 밀접하다. 요한계시록 13장의 666은 이러한 내용과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 등에서도 나라나 사람이 짐승에 비유되어 많이 나오고 있다. 여섯째의 인과 여섯째의 나팔과 그리고 여섯째의 대접은 다른 것보다 그 묘사에 있어서 훨씬 자세하다. 동시에 사람과 짐승의 관계성도 더욱 짙다.


2) 심판과 같은 창조

성경체계에 있어서 그 입체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쩌면 이 입체성 때문에 창조부터 심판까지 비교적 쉽게 연결되며 접목될 수 있다. 그중에서 창세기 3장 1절에 나오는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와 같은 지적은, 이 입체성의 본질을 밝히는 데 큰 몫을 해주고 있다. 귀신의 우두머리인 마귀(사단)의 정체를 이 입체성에서 밝혀내지 못하면, 오리무중(五里霧中)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심판과 같은 창조를 밝히고 증명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제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것은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1:8)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22:13)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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