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1-07-21 21:0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그리스도의 논리체계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헬라어이다. 그리스도는 인명이 아니고, 직명(職名)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 바로 “예수”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지니고 있는 세 가지 직분을 중심으로 간단히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이다. 기름 부음을 받는 자는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이다. 이 세 가지를 그리스도는 한 몸에 지니고 계신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논리체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 반드시 소개되고 전개된다.

이 세 가지의 논리체계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다. 이 신비로움을 조금이나마 강조하고자 짧은 지면을 통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내놓는다. 그리스도의 논리체계에 있어서 그 중심은 그 순서와 의미에 있다. 순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선지자 다음에 왕이 나오고 마지막에 제사장(직임-신분-사역-본성 등)이 나온다. 구약성경은 메시아를 언약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의 논리체계는 소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하여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가서와 선지서에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가서의 시작인 욥기에는 세 차례의 논쟁이 나온다. 그 논쟁의 논지는 이 세 가지와 무관하지 않다. 여호와의 전능성을 찬양하여 메시아를 언약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마지막인 말라기서는 분명히 제사(장이나 직분 등)와 밀접하다. 바로 앞의 스가랴서는 왕과 밀접하다.

여기서는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간략히 짚어볼 수밖에 없다. 마태복음 1장에 참으로 신비롭게 열네 대(代)씩 세 차례 나오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세 가지와 무관할까? 여기서는 질문으로만 던져놓을 수밖에 없다. 밟아가야 할 도착지와 논리 과정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신약성경에서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의 삼직(三職)이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그 대략을 본다.


1) 마태복음 5장부터

마태복음 5장부터 28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삼직이 선지자의 직임부터 제사장의 직임까지 아주 논리적으로 증명되어 있다(박용기, 『성경개론』). 이 성경개론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상술(詳述)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기서는 그 논리적인 순서와 신약성경의 시작에 주목하고자 한다. 마태복음 5장부터 끝까지 모두 삼직으로 되어 있다. 그다음에 마가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에서 이 세 가지가 어느 부분에서 나오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나오고 있지 않은지를 질문으로 던지게 된다. 4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은 모두 제사(직임-신분-사역-본성 등)와 관련되고 있다. 문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이름이라는 점이다. 대개 예수를 “그 백성을 죄에서의 구속(원)자”로서 부분적이며 지엽적으로 한정하여 버리고, 더 이상의 것을 성경에서 찾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잘못된 교리의 폐단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을까? 한번 고착되어 버리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는 결코 쉽지 않다. 문제 제기로 남겨 두고 싶다.


2) 요한계시록까지

4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통성이나 주제와의 연계성을 앞에서 언급하였다. 사도행전의 중간 부분은 이방지역에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 중간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삼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로마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의(義)이기 때문에 당연히 삼직과 연결된다. 고린도전서보다 고린도후서는 더 밀접하다. 갈라디아서는 4장부터 더 밀접하다. 에베소서보다 빌립보서와 골로새서가 더 밀접하다. 신약성경에서 전서와 후서로 된 것은 모두 8권이다. 고린도와 데살로니가는 지명이고, 디모데와 베드로는 인명이다. 이 8권에서 모두 후서는 전서보다 그리스도의 세 가지와 더 밀접하다. 디도서보다 빌레몬서가 더 밀접하다. 히브리서보다 야고보서가 더 밀접하다. 요한 1서보다 2서와 3서 그리고 유다서가 더 밀접하다. 요한계시록에서 앞의 편지는 선지자와 관련이 없겠는가? 5장부터 7장까지 일곱 인(印)을 떼는 내용은 분명히 왕과 관련되어 있다. 11장에서 죽음과 부활이 있고, 십자가의 의미는 영적(靈的)으로 제사와 연결되고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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