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7-02-07 21: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창세기 3장 22~24절

사람이 선악을 알게 된다는 의미 (1)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금과를 따먹고 저주를 받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어 보내셔서 보호하시는 섭리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어 보내시는 것은 아담과 하와를 보호하시기 위한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어 보내시는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라고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중 하나같이”라는 말은 ‘여러 명의 하나님 가운데 하나와 같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속성 가운데 하나와 같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1인칭 복수 대명사가 영원하신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성경의 특수한 어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와 같이 된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라고 하신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어 보내시는 이유를 밝혀 주시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와 같이 되어 생명과를 따먹고 영생하게 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사람은 선악을 알아도 아니 되고 영생을 하여도 아니 된다는 뜻인데, 이에 대한 이유를 알기 위하여서는 먼저 선악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을 알아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善;good)과 악(惡;evil)은 윤리나 도덕적 기준에서 설명하는 국어사전의 정의와는 다르다. 철학에서는 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을 선이라 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악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학에서도 철학에서나 큰 차이가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은 근본적으로 그 뜻이 다르다. 그것은 철학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선악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이성(絶對理性)을 선악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성경적인 입장에서의 선악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심(선:善)과 싫어하심(악:惡)을 뜻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절대이성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판단원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절대이성의 소유자이시다. 즉 좋으신 것과 싫으신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등을 분별하는 이성적 기능을 가지신 절대자라는 뜻이다. 절대 자존자이신 하나님은 좋으신 것과 싫으신 것을 분별하여 아시는 절대이성을 가지고 존재하시는 자이다. 그러므로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아니하시고 모든 일을 스스로의 결정에 의하여 좋으신 뜻대로 섭리하신다. 그래서 모든 만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신 대로 즉 선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좋아하심을 가리켜 선(善:좋을 선)이라 하고 싫어하심을 가리켜 악(惡:나쁠 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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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참고문헌: 성경강론 1권, p60~61, 박용기 저, 진리의 말씀사.)

창세기 3장 22~24절
창세기 3장 14~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