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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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2-01 19: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의 정신 ‘아드폰테스’ (Ad Fontes): 커피 맛은 아메리카노의 맛으로 결정된다


‘아드폰테스(Ad Fontes)’는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는 의미의 라틴어다. ‘아드폰테스’는 라틴어 성경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에 등장한다. 라틴어 ‘아드(ad)’는 영어로 전치사 ‘to’이며, 폰테스(fontes)는 원천(fountains) 또는 근원(sources), 기본(basics)을 뜻한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기독교 문화 사역으로 커피 일을 해왔다. 실제로 커피를 로스팅하고 커피 메뉴를 만들고 커피를 여러 매장에서 팔고 있다. 커피에서 가장 기본은 머신에서 샷을 어떻게 내리냐는 것이 중요하다. 커피의 맛도 커피 음료 중 일반적인 메뉴인 카페 라떼, 카페 모카, 카라멜 마키야또의 맛도 샷이 기본이다. 카페 매장에서 커피 기본 메뉴인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샷을 맛보면 그 카페의 커피 맛과 수준을 알게 된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종교개혁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라’ 혹은 ‘근원으로 돌려놓자’는 주장인데, 이는 16세기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의 구호였다. ‘아드폰테스’ 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이다. 1475년부터 1484년까지 에라스무스는 ‘공동생활의 형제단(Brethren of the Common Life)’이 운영하는 디벤터(Deventer)에 있는 성 리브윈 수도원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그의 부친이 사망한 후 그는 헤르토헌보쉬(Hertogenbosch)의 학교로 갔다. 공동생활의 형제단은 네델란드 출신의 제라드 후루테(Gerard Groote)의 제자들이 조직한 원시 기독교로의 복귀를 주장한 단체인데 이 운동의 창시자 후루테는 ‘경건’을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며 크리스천들의 공동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삶을 주장한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로서 에라스무스가 훈련받은 공동생활의 형제단은 신앙 훈련과 학문에서 자유함과 즐거움이 묻어 나온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필요한 시점이다. ‘아드폰테스’ 운동은 기독교 신앙과 학문의 자유함을 추구한 인문주의운동이다. 기독교 인문주의는 영적 갈급함과 학문의 깊이 그리고 학문의 자유함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저술 가운데 가장 대표적 저술은 『우신예찬』 (Encomium Moriae, 1511)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교회 갱신과 수도 성직자를 비판하고 나선다. 재미있는 사실은 라틴어로 모어(Morus)의 성이 그리스어로 ‘어리석은’(우신)을 뜻한다. 즉 이 저서는 영국의 인문주의자인 모어에게 헌사하며 그를 예찬한 작품이라 볼 수 있는데, 1509년에 저술된 이 『우신예찬』은 1511년에 출판되어 유럽 전역에 알려지면서 에라스무스를 일약 유명하게 했다. 이 저서는 시대의 변화를 요구한다. 즉 중세는 무지와 몽매의 시대였으므로 에라스무스는 휴머니스트들의 사명이 시대를 계몽하고 교회와 사회를 갱신하는 데 있다고 보면서 이 『우신예찬』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저서에서 에라스무스는 중세 후반의 크리스천들의 잘못된 신앙과 타락한 교회 성직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중세 크리스천들의 광신적인 신앙을 하나의 미신이라고 보면서 이 변질된 신앙은 성모, 성자에게 기적을 바라는 기도로 일관되어 있다고 우려했다. 에라스무스는 크리스천들이 단순히 세례를 받고 교회에 출석하는 형식적인 신앙을 비판하면서 진정으로 내면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경건을 자신의 저서에서 요구하고 있다. 16세기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풍자와 개혁은 오늘날 이 시대의 언어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판한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외침이 이제 우리 자신의 교회를 향하고 있다. 오늘날 개신교 목사들은 바보이기를 거부하고 로마 교회의 교권주의자들처럼 권위적인 신분이 된 지 오래가 되었다. 이러한 비판에 교단의 총회와 노회 정치와 개교회가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세상과는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아주 분명하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고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이 모든 것에 근거는 성경의 기준대로 하면 된다.
1535년 바젤로 돌아온 후 에라스무스는 요결석이라는 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1536년 7월 12일 자신의 남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비로우신 예수님,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자비가 저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여”라고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그의 일생을 마감한다. 이제 에라스무스가 살던 시대가 부러운 것은 인문주의자로서 경건과 학문의 자유함으로 개혁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신앙과 학문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나는 나의 신앙을 고백한다 - 송미령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