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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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2-01 19:4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I


복음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예수와 바리새인들 사이에 논쟁이 자주 있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다른 종파보다는 바리새파의 가르침과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종교권력가들이었던 사두개파는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았고, 율법을 준행하고자 하는 열심이 없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믿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와 선지자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자 하는 자들이었다. 예수도 모세와 선지자의 전통을 수용하면서 그것들의 정신을 바르게 구현하고자 하신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의 전통을 경시하는 자유주의 유대교보다는 그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보수주의 유대교가 나사렛 예수와 공통점이 많았던 것이다. 예수나 바리새인들은 모두 안식일 규례와 정결법을 존중하였으나 그것들을 이행하는 방식이 달랐다. 예수는 내면성을, 바리새인들은 외면성에 치중하였다. 예수는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가르치시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의 조문에 얽매어 율법의 정신을 놓쳤다. 그래서 둘 사이에 논쟁이 자주 일어난 것이다. 논쟁은 주로 안식일 준수와 정결법에 관련된 것이었다. 나사렛 예수와 바리새인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열거될 수 있다.

I. 공통점

1. 구약의 율법을 믿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믿었고 율법 준행을 종교의 핵심으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율법이 명하는 윤리적 조항을 지키려고 애썼다. 바리새인들은 613조문(條文)으로 된 계명과 규례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다. 그중에서도 365조문은 소극적인 것이고 245조문은 적극적인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이 조문이 율법 종교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바리새 정통주의자들은 이 조문(條文)만이 진리라고 보았다. 그래서 613조문에 몇 조문을 첨부한다거나 빼는 것은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예수는 이단자로 취급된 것이다.
예수도 마찬가지로 유대의 경전을 읽었고, 구약을 소중하게 여겼다. 예수 자신이 유대인이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예수도 구약성경을 믿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회당에서 유대교가 기반하고 있는 구약의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예수는 성경을 폐할 수 없으며, 율법은 일점일획도 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복음서 저자 마가는 바리새인이 예수의 제자들이 금식(禁食)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시비를 거는 것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막 2:18). 예수 자신은 금식을 부정하지 아니하신다고 이르신다: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 2:19-20). 유대인들은 회개와 속죄를 수행하기 위하여 금식하였고,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도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였다(눅 18:12).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가 계신 중에는 제자들은 잔치의 주인공 신랑과 같이 있기 때문에 속죄일에 행하던 금식 자체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기념일인 성금요일에는 금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2. 하나님의 사역과 기적을 믿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기적을 행하시고 병자를 고치신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은 고칠 수 없는 병자들을 고치는 예수의 기적을 보고 예수가 자기들 종교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였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예수께서 나면서 소경 된 자를 고치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요 9:6)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 하시고 소경을 치유하신다. 이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치유받았다는 소경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에게 이 사람이 정말 소경으로 태어났는지를 묻고 소경에게 이른다: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요 9:24).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을 보고 당황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시는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기적을 일으킨 예수가 자기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로 간주하였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젊은 청년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 나타난 것을 보고 오히려 이 젊은 나사렛 출신 청년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리고 이 나사렛 청년 예수의 가르침을 자세히 연구하면서 자신들의 율법과 유전(遺傳)에 얽매임과 낡은 관습에 대한 갱신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직업 종교인들이 되어 이 젊은 청년 예수가 자신들의 종교와 직업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여기에는 인간의 제도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유전(遺傳)을 절대화하고 종교적 권력을 내놓지 않고 자기 소유화하며 이에 대한 도전을 배척하고 제거하려는 인간 원죄성이 내재되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영한 교수 (기독교학술원장 /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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