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22-06-20 22:3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찬송가 「이 세상은 요란하나」

(통일 475장, 새 414장)


소개하려는 찬송은 그 제목이 요즈음 세상 모습과 비슷하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원유가와 곡물가의 폭등에 따른 고물가로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찬송시는 영국 태생인 윌리엄 맛슨(William Tidd Matson, 1833~1906) 목사가 지었다. 그는 가업을 잇기 위해 농과대학을 나왔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신학 공부를 하고 평생을 목사로 봉사하였다. 작곡자인 조셉 스위터(Joseph Emerson Sweeter, 1825~1973)는 영국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뉴욕의 청교도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이 찬송은 미국의 찰스 로빈슨(Charles Seymour Robinson, 1829~1899) 목사가 편찬한 찬송가인 「주 찬양의 새노래」(1892년)에 있는 것을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감리교 합동 찬송가인 「찬숑가」(1908년) 143장에 처음 실렸다. 원곡은 사장조(G Major)인데 일반 성도들이 부르기에 음이 높다고 생각하였는지 피득(Alexander Albert Pieters·한국명 피득, 1871∼1958) 목사의 부인 에바 필드(Mrs. Eva Field Pieters, 1868~1932) 선교사가 한 음 낮추어 바장조(F Major)로 수정하여 출판하였다. 에바 필드 선교사는 미국에서 출생하여 의과대학을 졸업 후 1897년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여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1908년 상처한 피득 목사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1909년 찬송가 곡조판, 1916년 수정판 편집에 참여하였다. 그 후 황해도에서 기독교교육과 의료선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녀의 남편인 피득 목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글을 배운지 3년 만에 번역한 「시편촬요」는 구약성경 한글번역의 효시로 꼽힌다.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마음은 늘 편하다.
구주의 뜻 준행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이 세상은 늘 변하고 험악한 일 참 많으나
주 은혜만 생각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육신의 눈 못 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문 보게 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내 마음과 내 영혼이 모든 욕심 다 버리고
주 은혜로 성결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이 육신의 복락보다 신령한 복 더 좋으니
네 맘과 뜻 다 합하여 저 천성만 향해 가네.

이 찬송시는 요한복음 16장 말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우리는 죄악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당면하는 환난들이 있다. 그러나 택함받은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들도 승리하게 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처럼 우리에게도 (주신 은혜가 크므로) 자고하지 않도록 특별히 고통 같은 것을 주시기도 한다.(고후 12:7 참조)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주시기도 한다.(히 12:6 참조)

‘세상은 요란하나’, ‘이 세상은 늘 변하고’, ‘험악한 일 참 많으나’라는 가사들이 험하고 힘든 이 세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이 찬송시는 이 세상의 고난 속에서 역설적인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원어인 영어 찬송은 매절마다 “O blessed life!(오 축복받은 삶)”로 시작하고 있다.

‘이 세상은 요란하나 → 내 마음은 늘 편하다’
‘육신의 눈 못 볼 때에 →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 문 보게 하니’
‘이 육신의 복락보다 → 신령한 복 더 좋으니’ 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우리들이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찬송가는 한글 가사로 1908년에 출판되어 우리나라 성도들이 부르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외교권을 강탈당하였고, 1906년에는 조선 황실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통감부’가 설치되었다. 일제는 그 후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을 통과시켰고, 우리 국민의 반발을 무서워한 일제는 정치단체의 집회를 금지시키고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후 동년 8월 29일에 조약을 공포하였다. 일제는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한일합방’, ‘한일합병’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우리는 이를 ‘경술국치일’로 부르고 있다. 위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 찬송은 초기에 많이 애창되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상황을 느껴가며 이 찬송시를 음미하여 보면 좋겠다.
그러나 이 찬송은 음높이의 변화가 심하여 4도, 5도, 6도 심지어 8도까지로 도약하는 멜로디가 어려워서인지 좋은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은 성도들이 자주 부르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잊혀 가는 찬송, 하지만 치욕스러웠던 과거의 역사는 잊지 말아야겠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나라가 있는가? 핵을 보유한 북한이 제2의 6·25 같은 침략을 하였을 때 어느 나라가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미국, 일본 그 어느 나라도 아니다. 애국가에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서 보우하여(보호하고 도와) 주실 때 우리나라는 굳건한 나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 15:2)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용환 장로 (교회동역자협회)

시대별 찬양대의 형태
찬송가 「비둘기같이 온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