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22-07-13 19:4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시대별 찬양대의 형태


기독교는 찬양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 따라서 성도인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응답하고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찬양을 기뻐하시며 찬양 중에 거하신다. 찬양 중에 임재하시고 찬양 중에 놀라운 능력을 주신다.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일 때 우리는 찬송이라 한다.
찬송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구속섭리의 직접 목적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의 영광을 드러내심이라면, 드러내신 하나님 영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찬송이므로 찬송은 천지창조와 구속섭리의 간접목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지면을 통하여 시대별 찬양대의 형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구약시대의 찬양대는 요즈음과 같은 남녀 혼성의 찬양대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로 한정하였으며 30세 이상의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성전 밖에서만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18세기에 만인제사장설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로 현재와 같은 남녀 혼성 찬양대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구약 시대의 찬양대

구약 시대에 다윗 성전의 찬양대는 레위 지파 사람으로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가르치는 교사가 288명이었고(대상 25:7), 솔로몬왕 때의 찬양대원의 수는 사천 명이었다(대상 23:5).
역대하 5장에 찬양대원들이 찬송을 부를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12~14)

초대교회 시대의 찬양대

초대교회 시대의 찬양대는 성인 남자와 변성되지 않은 소년으로 구성되었다. 이 찬양대의 형태가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지금도 독일의 일부 가톨릭교회에서는 초대교회 형태의 찬양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년들은 높은 성부를 부르고 성인 남자들은 낮은 성부로 합창한다.

종교개혁 이전의 찬양대

종교개혁 이전까지 가톨릭교회에서는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이라는 찬양학교를 운영하여 찬양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찬양대원이 될 수 있었다. 이 당시에는 훈련된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여야 경건한 예배라고 생각하였다. 당시 찬양대는 라틴어로 된 성가를 불렀다.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성도들이 듣기에는 음정, 박자, 화음 등은 정확하여 아름다운 음악이었을지 모르나 노래 가사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찬양대의 노래는 악기 소리와 다름없이 들렸을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의 찬양대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18세기 이후 독일에서 지금과 같은 혼성 찬양대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찬양대가 조직된 것은 영국계 교회인 삼위일체교회에서 1693년 찬양대원과 오르간 반주자를 영국에서 초청하여 찬양대를 만들었으며, 18세기에 찬양학교를 설립하여 전문 교육을 받은 자들로 구성된 혼성찬양대가 생겨났다.
현대 교회에서의 찬양대원은 신앙이 깊고 음악적인 재질이 있는 교인이라면 남녀 누구나 할 수 있다. 일반 회중이 부르는 찬송가는 4성부로 작곡되어 있지만 보통 단음인 제창(unison : 다 같이 한 선율로 노래하는 방식)으로 부른다. 온 교인이 제창으로 노래하는 방법은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이다. 단순한 단선율에 의해 하나가 되는 일체감과 노래 가사의 전달이 명확해진다. 한편 찬양대는 특별히 훈련되고 숙달된 자들이므로 일반 회중이 부르지 못하는 어려운 찬양곡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찬양대의 목적은 그들의 기교를 자랑하기 위함이어서는 안 된다. 찬양대는 일반 성도들을 대표하여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일반 성도들에게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함에 목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내에서 많이 통용되는 ‘성가대’라는 명칭은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므로 ‘찬양대’라는 명칭이 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대교회의 찬양은 구약시대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유대교에서 찬송가로 사용하였던 시편은 기독교에서도 오랫동안 찬송가의 역할을 하였다. 시편은 찬송가의 뿌리라고 할 수 있으며 찬송가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요소를 시편은 모두 가지고 있다. 오늘날도 시편은 교회에서 사용되는 어느 노래보다도 훌륭하고 모범적인 찬송가이다. 요즈음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 가사 중에는 하나님만이 찬양의 대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찬양의 대상이 국가, 가정, 부모 등인 것들이 있다. 이러한 곡들은 찬송가집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시편과 같은 아름다운 내용들이 찬송가 가사로 만들어지고 그러한 찬송을 부르고 싶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용환 장로 (교회동역자협회)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찬송가 「이 세상은 요란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