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3-02-28 21:1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순종의 사람 칼빈_47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 삶을 살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앞길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즉각 순종했다. 그 가장 두드러진 예가 1536년 제네바에 하룻밤만 묵고 가려고 제네바에 머물렀던 그날 저녁, 이미 4년 전에 제네바에 와서 개혁의 선봉에 섰던 화란 출신 파렐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았을 때 일이다. 그는 성격이 불같은 데다 진취적인 데가 있었지만 논리가 부족하고, 조직적이지는 못했다. 그즈음 파렐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읽고 크게 감동받아 이만한 조직적 인물이 제네바의 개혁을 주도해 나간다면 제네바는 분명히 종교 개혁의 성지가 될 줄 믿고 칼빈을 찾아갔다. 그러나 칼빈은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된다고 사양했다. 파렐은 이때 칼빈을 향해서 큰 소리로 그대가 제네바에서 개혁을 주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20세 연하의 칼빈에게 호소하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때 칼빈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 순종했다. 이 사건은 교회사의 위대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칼빈의 단 한 번의 순종이 역사를 바꾸고 교회를 바꾸어 놓았다. 이때 전혀 예상 못 했던 칼빈의 인생 방향도 바뀌었다. 그것은 모험인 동시에 위험 부담이 컸다. 그러나 칼빈은 순종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역사가 바뀌었다.

불가능한 것도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

또 다른 예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2년 동안 목회할 때 일어난 일이다. 낯선 외국인 불란서 사람이 와서 제네바의 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그는 추방되었고 3년 동안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목회와 저술 활동을 했다. 그런데 칼빈 없는 제네바는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반대파의 정치 세력이 꺾였는데도 개혁의 지도자가 없는 제네바는 표류했다. 그러다가 사돌레토 추기경이 제네바 도시를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돌리려는 글을 보내왔지만 그 누구 하나 거기에 대한 답변을 쓸 자가 없었다. 그래서 칼빈에게 의뢰했더니 그 유명한 불후의 논문인 「사돌레토에게 보내는 답신」을 썼다. 이는 로마 가톨릭 세력을 잠재우고 개혁 교회의 참됨을 변증한 걸작이었다. 그때 제네바는 칼빈을 다시 청빙하기로 했다. 그러나 칼빈은 한번 실패한 곳에 가기도 어렵거니와 인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칼빈은 끝까지 사양을 했으나 또다시 파렐의 권고로 제네바로 가기로 결심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한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또한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고 오늘의 개혁 교회가 탄생하게 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순종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전제된다

이렇게 순종을 몸으로 체득한 칼빈은 그의 저술 가운데 많은 분량을 순종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는 늘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기대하고 계신다고 썼다. 칼빈은 신명기 주석에서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한다.”(p.346) “하나님의 권위만을 의지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순종한다.”(p.345)고 했다. 칼빈은 순종에 있어서도 늘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최우선으로 다루고 있다. 만유와 만사를 하나님 중심 시각에서 볼 때만이 순종의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시편 주석에서 “노예적이며 강제적인 순종은 반역과 거의 다르지 않다.”(4권 p.485)고 하였다. 순종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아멘으로 받고 기쁨으로 가야할 걸음이다. 그리고 다니엘서 주석에서 “두려움은 순종을 위한 참된 준비”라고 했다.(2권 p.116) 이 말은 아마도 두 차례의 제네바 입성을 앞두고 그의 두려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신앙 없이 순종 없고 순종 없이 신앙 없다

특히 칼빈은 순종과 신앙과의 관계를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는 늘 생각하기를 순종 없이 신앙없고 신앙 없이 순종 없다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었다. 아마 이것은 칼빈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그의 삶의 여정에서 언제나 체험적으로 느끼고 확신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칼빈은 이사야 주석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신앙은 순종과 더불어 시작된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이해보다 앞선다.”(3권 p.270) “신앙이 없으면 순종이 없고 말씀이 없으면 신앙이 없다.”(4권 p.390)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4권 p.393) 칼빈의 영적 눈은 아주 섬세하고 그의 성경 지식은 정확했다. 순종과 믿음 그리고 믿음과 순종을 하나로 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참 종교의 기초는 순종이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순종을 감독하시며, 말씀 순종 여하에 따라서 구원의 소망과 행복이 좌우된다. 칼빈은 이사야 주석에서 “우리의 모든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있다. 만약 하나님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소망은 없다.”고 했다(4권 p.159). 그리고 칼빈은 순종을 사랑과 연관 짓는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순종할 수 없고, 순종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칼빈은 공관복음 주석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실제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3권 p.58)고 했다. 칼빈은 순종하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또 칼빈은 우리의 순종은 우리의 양자 됨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에게 아들로서 순종하고 종으로 복종하기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기독교 강요Ⅳ.2.26). 그리고 순종을 통해서 성숙된 단계에 이르게 되므로 “순종은 경건의 어머니”로 순종은 겸손의 주인이란 표현을 썼다. 칼빈은 겸손의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신학은 순종의 신학이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지혜의 신학자 칼빈_48
기독교 윤리를 세운 칼빈_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