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1-04-26 22: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의 주권을 높인 칼빈_17


칼빈 신학의 핵심을 하나님 사상이라고 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과 역사의 배후에 친히 섭리하시며 간섭하신다는 뜻이다. 즉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모든 인생의 주가 되시며, 또한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하늘과 땅과 만물을 만드셨고 만드신 만물과 인생을 하나님 자신의 구속 운동의 목적을 위해서 끊임없이 주도권을 가지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우연에서 시작해서 우연으로 가는 목적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칼빈의 일생 즉 그의 목회생활, 그의 설교자로서의 삶, 교수로서 또는 저술가로서의 삶의 배경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고한 신앙 위에 세워졌다. 우선 칼빈 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시고 일하신다는 뜻이다.


국가의 흥망성쇄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

칼빈이 이해한 하나님의 주권은 대개 다음과 같다.
칼빈은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밀한 고삐로 사건을 억제하시기에 그분의 작정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다니엘 2권 p. 314). 즉 세상의 모든 소동은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주권 밖으로 움직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후일 미국의 대칼빈주의 학자 B.B. 위필드가 ‘칼빈주의자는 역사의 배후에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줄 아는 자’라고 했는데 과연 칼빈의 후예다운 말이다. 그래서 칼빈은 말하기를 “모든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과 뜻에 달려 있다”고 했다(예레미야 주석 3권 p.356).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와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열려져 있어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단순한 논리적 전개나 합리적 사고가 아니라 그것은 늘 하나님 중심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는 신앙의 방법이며 신학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의 방백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국가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권모술수나 얄팍한 지혜를 가지고 역사를 헤쳐가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된다. 칼빈은 말하기를 “사람의 도모를 무(無)로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라고 했다(사도행전 1권 p.223). 이 세상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영광 받는 것을
용납지 않는다

이 세상은 목적 없이 돌아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것을 용납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요 허물과 죄로 죽었으며 하나님은 창조주로 영광 존귀 찬양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할 날을 기다리듯(합 2:14) 하나님의 주권을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자신이 무엇을 다할 수 있는 것처럼 덤비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을 낮추어 놓고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인간은자기가 낮아져 봐야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바라보면서 평화와 기쁨을 누린다. 그래서 칼빈은 단언하기를 “사람의 손에서 아무 희망이나 충고를 찾을 수 없을 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시기에 가장 적절하다” 고 했다(사도행전 1권 p.268).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다. 결국 믿음이란 것도 대상이 문제인데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결국은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이 설교 가운데 잘 쓰는 표현 중에 하나는 ‘‘땅 위에 기는 벌레들과 같은 죽을 인생들”이다. 이는 영존하시는 하나님, 주권적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인간의 죄성과 연약성을 본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주권을 볼 때만이 진정으로 그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를 받는 그것이 축복이다. 칼빈은 또 말하기를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으며 그것은 공평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고 또는 고집스럽게 엄격한 쪽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창세기 2권 p.345)
“사람들의 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 그의 주권적 기쁨에 따라서 그것들을 강퍅하게 하시고 부드럽게 하신다.”
(시편 4권 p.243)
“하나님은 그의 은밀한 영감에 의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정돈하시고 다스리고 이끄신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그는 그가 작정하신 것을 이루신다.”
(모세의 마지막 네 권의 주석 4권 p.172)

칼빈의 모든 신학체계는
하나님의 주권에서 풀어진다

이쯤 되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이 얼마나 철저하게, 얼마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주권사상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의 신학과 그리고 칼빈주의 신학은 항상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 위에 서 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도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에 관련되어 있고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은혜 (Sola Gratia)와 오직 믿음(Sola Fide)도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칼빈은 하박국, 학개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시면 신자들을 위한 구원은 없다”(p.86)고 했다. 이 말 한마디에 우리는 아멘으로 화답할 수밖에 없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성경 박사 칼빈_18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칼빈_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