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18-11-14 20:0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가정교회’ 파괴자들 배격(排擊)하기


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이 1:5~11).


보혜사 성령께서는 사도 요한으로 신앙 선배로서 부모의 마음으로 당시 후배 동역자인 여자 성도 곧 ‘가정교회 여성 동역자’에게 편지를 쓰도록 한다. ‘사랑하자’는 권면이며, 사랑은 반드시 ‘계명’을 좇아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계명이란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말한다. 사도들에게 약속했으며 사도들이 전했고 일부 사도는 그것을 기록하도록 했다.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을 바르게 설명한 사도들의 가르침과 그 기록들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올바른 사랑 안에 ‘가정교회’ 지도자가 자기 직무를 잘 해 줄 것을 선배로서 권면하는 내용이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배격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가 바로 사도들로부터 전하여 듣고 사도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진리 안에서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능력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들이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가정교회를 농락하는 뻔뻔한 너무도 뻔뻔한 가정교회 파괴자 거짓지도자들이다. 교회 밖에서 교회와 성도를 비난하는 세속의 권력들은 그 실체가 금방 드러난다. 하지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적그리스도는 교묘하고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제자처럼 성도들을 수년 혹은 수십 년을 속인다. 진리에 무지하고 목사의 거짓 권위에 짓눌려 사는 성도들은 자신뿐 아니라 교회 생활이 원천인 ‘가정교회’가 파괴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러한 적그리스도들의 희생양이 된다. 사도 요한을 통해 전해지는 권면의 말씀은 매우 강하다.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적그리스도와 마주 보고 인사하는 자는 악한 일에 동조자가 된다고 매우 강하게 경고한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신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진리의 수신자를 ‘가정교회 지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가정교회 사역의 중요성으로 부모에 의한 ‘가정교회의 진리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한이서는 여자 성도에게, 요한삼서는 남자 성도에게 가정교회에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방문자를 분명하게 분별하고 문을 함부로 열어주지 못하게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일세기하고도 반세기 전 교회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가정교회를 소홀히 했던 참으로 통탄한 교회사를 가지고 있다. 부모도 적그리스도인 악한 목사에게 재물은 사기를 당하고 몸까지 망가진 자들이 허다하다. 그리고 그 자녀들도 똑같이 당한 자들이 정말로 너무 많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협박에, 물질 축복과 건강의 지름길의 속임수에 가족교회 성도들이 연이어 당하고 또 당하고 있다. 가정교회의 엄격한 책임자이어야 할 부모가 성경진리에 무지한 채로 자식들마저 우는 사자처럼 가정교회를 파괴하려고 달려드는 적그리스도에게 가정 교회를 통째로 내맡긴 꼴이 되었다. 무지하여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그렇게도 무책임하게 어떤 배경에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도 잘 모르는 자에게 ‘목사’라는 권위에 그렇게 부모 자신과 자녀를 내맡길 수가 있는지 질책과 비판을 나 자신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지나간 시대를 자기 기분에 따라 너무 탓하는 것도 하나님의 엄중한 주권적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라 본다. 연일 방송과 신문에 터지고 또 터지고 있는 목사들의 범죄와 비행과 뻔뻔함은 무슨 기획되기라도 한 듯 뉴스 헤드라인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 매체를 따라서 욕할 일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에 부모인 내가 성경진리를 소개하지 않아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무지한 내 자식들이 적그리스도의 먹잇감이 되고 있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가정교회’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이다. 무식하기도 하고 사악한 의도를 가진 거짓지도자들의 ‘복 주겠다’는 말을 맹목적으로 순종하여 ‘복 받겠다’는 일념으로 새벽부터 ‘가정교회’를 무책임하게 박차고 나가거나 소위 ‘주의 일 한다’고 함부로 방치하는 범죄는 이제는 그만둬야 할 것이다. 조용한 시간 성경진리로 고민하며 진지하게 새벽과 아침 시간을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를 위해 준비하는 가정교회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 좋은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평안 가운데 잠시라도 소개하면서 ‘가정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나게 하는 부모의 소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가정교회를 지켜야 한다. 이는 주장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다. ‘두세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언약의 말씀이다. ‘두세 사람’이 함께 하는 곳, 바로 가정교회다. 하지만 성경진리로가 아니면 결코 불가능하다. 이른바 명문 대학으로 보내기 위해 새벽부터 명문 학원으로 자녀들을 새벽부터 몰아가는 사이에 가정교회가 점점 해체되고 무너진다. 그렇게 아름답고 이쁘게 키워 놓았다고 하자. 사악하고 교묘한 거짓 지도자를 만나 영혼과 몸 망가지면 한순간 일평생을 날려버리게 된다. 그러면 그 어린 성도인 자녀들은 교회 자체를 증오하며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교회가 되어버린다.
다시 한번 사도 요한을 통해 들려주는 보혜사 성령의 책망을 염두에 두자. 부모가 성경진리 안에서 행하지 않으므로 가정교회는 무너지고 그 틈에 자녀들은 대를 이어 적그리스도에게 영혼과 몸과 물질 모두를 탈취당한다. 몸까지 아픈 상태로 진리의 안에 함께 하는 자녀를 돌보는 후배 가이오에게-‘삼박자 물질 축복의 허구’가 아니라-하나님께 속한 영혼의 돌봄을 위해 진리의 말씀을 지켜가는 일에 더 수고하길 원하는 신앙 선배의 경계를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요삼 1:1~4, 11~12)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비성경적 ‘예배시간’, 성경적 ‘강론시간’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IX: 적그리스도적 ‘번영신학’ 청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