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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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6 13:3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곡성’(哭聲, 2016): 부재(不在)하는 신에 대한 곡소리!


현재 7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이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에서 외지인(外地人) 역할을 연기했던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의 말대로 10명이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10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처럼 다양한 평가가 700여만 명 관객의 숫자만큼 나오는 듯하다.
여름날 납량특집(納凉特輯) 공포 영화처럼 시작해서 그렇게 끝을 맺는 영화다. 잠시 닭살 돋는 오싹함도 있지만, 머리 식힐 요량이었다면 감독의 ‘희생제물’이 되는 영화다. 종교적인 배경과 기독교에 던지는 감독의 강한 물음 제기는 기독교라는 가정환경 이전에 니체가 청년 시절을 겪으면서 결론을 내려갔던 명제, ‘신은 죽었다’는 말의 프롤로그처럼 보인다.

분명 기독교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감독이 영화 개봉 후 스포츠한국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지인이나 친지들의 장례식에 갈 일이 많아졌어요. 슬프더라고요. 어떻게 돌아가신지는 알겠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존재 소멸에 대한 질문을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범주 안에서 대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어요. 그때 신이 떠올랐습니다. 신이라면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자신을 증명해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한, 신이 과연 선한 분인지 악한 분인지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이런 생각이 이 영화의 출발이었어요. 결말에 대해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자신의 신조, 믿음대로 영화가 달리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봉했으니 관객분들이 자유롭게 보시면서 서로 토론하셨으면 좋겠어요.”

예상대로 많은 인터뷰가 동일한 물음으로 감독에게 쏟아졌고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라는 평가와 동시에 성령을 훼방하는 영화, 얼마 남지 않은 교회 청소년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 영화로 낙인찍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더 부인하는 일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경적인 바른 신관을 가르치지는 못하고 내용 없는 맹목적인 종교교육만 강요해 오다가 영화 한 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자녀로 길러 놓은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영화관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영화 해석만큼 더 큰 짜증을 불러온다.
영화는 신약성경 누가복음 24장 37~39절로 시작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령이 아닌가 싶어 놀라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마음에 의심을 품지 말고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면서 만져 보라며 자신은 살과 뼈가 있으므로 유령이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한 영생의 구주 그리스도임을 밝히는 내용이다.

영화 결론에는 다시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를 다 본 이후에도 복잡한 머리는 다시 이 명제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나 감독이 영화라는 텍스트를 통해 던진 ‘신의 부재’의 물음을 성경에서 답을 찾고 기독교 세계관을 다시 한 번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성경적인 기독교 신관이 한국교회에 점점 소멸해 가는 것이 이 영화를 보면서 점점 커지는 ‘곡성(哭聲)’이다. 니체의 ‘신 죽음의 선언’ 이후 교회도, 성당도, 경찰도, 가족도 모두 한 개인을 보호하는 울타리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 영화는 선과 악, 맹신과 확신, 욕심과 희생,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여지없이 흩어 놓고 있으며 우리가 사는 시대가 신이 부재(不在)하는 대혼돈의 시대임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를 한눈에 이해하려고 머리를 쓰기 이전에 자신의 머릿속에 성경 진리를 얼마큼 저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관성 있게 바르게 정돈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영화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토론하기 전에 자신의 신관이 과연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나홍진 감독에게도 던지고 싶은 말이다. 영화를 통한 강한 이미지를 조작하여 누구의 상황은 편을 들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특히 기독교적인 해결과 평안을 줄 수는 없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 대한 이해가 영화 장면을 배치하듯 성경의 진리가 얼마나 뇌리 속에 질서 있게 정돈되어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성경에 단단한 기초를 두지 않는 신관은 신의 죽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는 영화 한 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영화 속 주인공 효진이 말로 대신해 보자.
“뭣이 중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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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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