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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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5 20:4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권위’를 모르면 강단을 떠나게 하소서


16세기 종교개혁의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성경권위’, ‘만인제사장’ 그리고 ‘이신득의’다. 성경권위는 중세 로마 가톨릭의 교황권위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를 바로 성경이 갖는다는 말이다. 만인제사장 원리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司祭)처럼 매개자가 있어야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신득의는 은혜로 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리는 면밀하게 살피면 분리할 수 없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권위를 확립하지 않으면 만인제사장 원리가 불가능하며 그 결과는 가톨릭의 공로주의 늪에 빠진다. 성경권위는 ‘성경만 하나님 말씀이다’는 명제를 확증하여 지킨다는 원리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다가오는 현시점에서 성경권위는 명제를 강조하는 것으로는 지켜질 수 없다. 이미 18~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은 ‘단도질’ 당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특히 성경권위를 회복하거나 옹호할 대책 없이 강단(講壇)에 오르는 자는 성경책을 펼치는 것 자체를 삼가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본문을 읽고 입을 여는 순간 스스로 성경권위를 부정하는 범죄가 될 것이다.

성경에 대한 전포괄적 이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된 계시 진리에 대한 고민과 숙고 없이 강단에 오르는 순간, 그 자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 머리에 쌓는 일을 자초하게 된다. 조야한 도덕 강의나 훈계를 듣는 성도들에게 성경권위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두 번째 원리 ‘만인제사장’에 대한 이해는 강론 시간이 더할수록 더 사라질 것이다. 성경권위에 대한 확증과 확신 없는 강단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지불된 만인제사장인 성도의 권리를 전복하는 결과를 낳는다.

만인제사장의 원리가 사라지면 더욱 비참한 결과가 다가온다. 비성경적인 로마 가톨릭 공로주의가 성도의 전체 삶을 지배한다. 모든 종교적 삶에서 은혜의 기쁨은 사라지고 두려움과 불안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영혼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성도의 자유는 결국 송두리째 파괴당한다. 로마 가톨릭의 공로주의는 인간의 자율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종교 생활의 원리로 삼는 인본주의다. 이는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총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적 행위로 끝난다. 만인제사장 원리에 대한 성경적 이해 부족은 성도라는 외형적 신분은 유지할지 모르나 영혼은 이방 종교와 세속 철학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만다.

앞의 이러한 모든 일들이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개신교 강단과 예배당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성경 한 장 쉽게 넘기고 책임질 수 없는 한 마디 설교가 강론자 자신뿐 아니라 그곳에 모인 수백 수천의 성도들을 ‘적그리스도’의 늪으로 몰아넣는 무서운 범죄가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한 마디 더할 때마다 개혁자들과 신앙 선배들의 피값으로 지켜온 ‘성경권위’를 붕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경권위에 대한 막연한 가설과 전제로 강론할 수는 없다. 성경권위를 모르는 자는 떠나게 하소서 ! 성경권위에 대한 확증과 확신을 가진 종을 이 땅에 보내주소서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교단 통합’, ‘성경 권위’ 회복이 아니면 진노일 터
종교개혁 500주년, 교회개혁의 성경적 대안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