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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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30 20:0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김 전도사님께


전도사님! 그동안 주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어요.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제가 어린 시절이었죠. 나지막한 산자락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시골교회에 수년 동안 주일마다 오셔서 이른바 예배를 인도하셨잖아요. 옛날 부잣집 행랑채였던 기와집을 개조해서 교회당으로 사용했지요. 그 안채는 영수님이라는 분이 교회 일을 돌보며 사셨고요. 제가 바로 그분의 넷째 아들이에요. 아버지께서 공과 공부를 마치시고 나면, 전도사님은 이른바 예배를 인도하셨거든요.
전도사님이 설교를 참 잘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설교하실 때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하루는 전도사님이 제가 강단에 올라가는 것을 보시고 야단을 치신 일이 기억이 나요. 이른바 예배당 안이나 강단에 함부로 올라가 뛰고 장난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거였죠. 전도사님은 정말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강단에 올라가시곤 하셨거든요. 그 후로 저는 그 집이 ‘예배당’인 것으로 알고 조심을 했어요.
제가 성장하면서 전도사님의 말씀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주 이해하기가 힘들고 생각이 좀 복잡하더군요. 이른바 거룩한 예배당이 부자의 행랑채였을 때는 불신자들이 술도 마시고, 북장구를 두드리며 춤도 추고 놀았을 거고요. 왜정시대에는 일본사람들이 탈취해서 면사무소로 사용했거든요. 6·25 전쟁 때는 하나님 없다고 하는 공산당들이 집회소로 사용하기도 했고요. 성탄절이 되면 강단 위의 강대상과 의자들을 다 들어내고 교회 학생들이 올라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연극도 했거든요. 이른바 거룩한 예배당에서 그러면 안 되잖아요.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만 드려야지…! 마음에 극심한 갈등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주일에는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선교사님이 오셨어요. 구두를 신은 채, 주머니 같은 ‘커버’를 덧씌우고 강대상에 그냥 올라가시는 거예요. 강단 뒤쪽에 놓인 등받이가 높은 가운데 의자에 털썩 앉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답니다. 하나님이 앉으셔서 예배를 받으시는 의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전도사님은 항상 등받이가 낮은 옆 의자에만 앉으셨잖아요. 모든 교인들은 신을 벗고 들어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른바 예배를 드렸고요. 예배는 곧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알고 있었거든요. 세월이 갈수록 생각이 혼란스럽고 복잡해졌답니다.
전도사님께 하나하나 여쭙고 싶었어요. 강대상에 신을 신고 올라가도 되는지,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선교사님은 앉아도 되는지를 여쭙고 싶었거든요. 정말 너무 갈등과 고민이 많았어요. 그뿐만 아니에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많아졌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서 답답한 나머지 신학을 십여 년 동안 하면서 성경을 직접 연구하게 되었어요. 결국 예배당도, 성전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미사를 드리는 구교의 성당을 답습한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거든요. 저도 교회를 설립하여 강단에 구두를 신고 올라갔지요. 이를 노회에서 알고 이단으로 정죄하여 제명까지 당하는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일도 있어요.
지금은 사람을 많이 모으려고 거액의 돈을 주고 유명한 연예인과 코미디언 또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가수들을 강단에 세우기도 해요. 꿩 잡는 게 매라는 말도 있잖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해서 헌금만 많이 거두면 크고 훌륭한 교회로 인정을 받거든요. 가수나 코미디언이 자기들 수입보다 나은 목사나 부흥사로 활동하기도 해요. 지금은 전도사님 시대와는 강단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뿐 아니에요. 하나님께 찬양한다며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부채를 들고 북을 치며 춤을 추고 타령을 부르기도 하고요. 이런 성전의 모습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했거든요. 그런가 하면 어떤 목사님은 강단이 거룩한 제단이라며 치마를 입은 여자는 불결하므로 절대 강단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어쩌면 전도사님의 생각과 비슷하기도 하잖아요.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왔으니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예배하지 말라고 하셨더군요. 예수님이 친히 대제사장과 제물이 되어 영원한 성전에서 신령한 제사(예배)를 드리실 것을 의중에 두신 말씀이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영원한 지성소로 들어가셨잖아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제사)를 드리신 거죠. 이제는 다시 예배(제사)를 드리면 안 되잖아요. 예수께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렸으니 또 드리면 안 되지요. 레위 자손인 제사장도 없고, 제물의 피도 없고, 예루살렘 성전도 없으므로 드릴 수도 없거든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 장소를 성전이라고 가르치며 예배(제사)를 드리면 속이는 거죠. 맞잖아요?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성경을 배우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선한 일을 도모하는 처소일 뿐이죠. 교회 ‘회당’에 지나지 않거든요. 저는 성도들에게 ‘주말 별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이러면 또 이단인가요?
사실 철없던 시절 야단을 치신 전도사님이 싫었어요. 바르게 가르쳐주셨으면 갈등이나 고민으로 세월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지금은 싫어하지 않는답니다. 왜냐고요? 전도사님 아니었으면, 제가 문제의식을 깊이 가지지 않았을 거니까요. 문제의식이 깊을수록 깨달음의 기쁨도 클 수밖에 없거든요. 깨닫지 못했으면 저도 제사장처럼 ‘가운’을 입고 가짜 성전에서 엉터리 제사도 드리고, 하얀 장갑을 끼고 각종 예식도 집례하며 거룩한 제사장 노릇을 했을지도 모르죠.

전도사님! 하나님께서는 전도사님을 통해 저에게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명쾌한 해답을 얻게 하셨잖아요. 어떻게 전도사님을 싫어할 수가 있겠어요. 정말 진리를 깨닫게 되면, 밉거나 싫은 사람이 없게 되더라고요. 모두가 하나님께서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여 나 되게 하시려고 만나도록 섭리하신 소중한 분들로 여겨지니까요. 전도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은 더할 나위 없는 은혜를 베푸셔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주시는 여호와만을 찬송하며 살고 있답니다. 오늘은 이만 줄일래요. 전도사님도 주님의 은혜 중에 평안히 주무세요.


2020년, 의문이 많던 새내기 영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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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에게
스승의 날에 윤 선생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