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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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8 10: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주무시는 할머니께


할머니! 평안히 주무시고 계시죠? 저는 넷째 손자랍니다. 이게 웬일이냐고요? 어제 교회 장로님의 아들 결혼주례를 했거든요. 막내가 휴일이라고 운전을 해 주겠다잖아요. 주차장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거든요. 나보다 키가 큰 막내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거예요.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어젯밤 할머니 생각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거든요. 할머니는 제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항상 안타까워하셨잖아요. “남자가 키가 크고 우람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해방된 지 몇 년이 지났으나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점심까지 먹기가 힘든 시절이었죠. 학교에서 돌아와 “할머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드리자, 할머니는 “아이구 어서오너라. 내 새끼 배고프겠구나.” 하시면서 안방으로 저를 데리고 가셨거든요. 벽장에서 주먹만 한 보리누룽지를 꺼내주시면서 “잘 먹어야 키도 쑥쑥 크는 거란다.”라고 하셨어요. 그 후로 저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리저리 둘러보며 할머니를 찾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어제 키 큰 막내딸의 모습을 보는 순간 할머니 생각이 나게 된 사연이에요.

할머니! 하늘나라 가신 후에 저는 많이 울기도 했지만, 사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뭐냐고요? 할머니는 2대 독자로 한학자인 할아버지하고 사셨다고 들었어요. 할머니도 3대 독자인 아버지를 낳아 기르셨고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충청도에서 저의 출생지인 고향으로 이사 오셨다고 들었어요. 할아버지께서 한학선생으로 초빙을 받아 김 씨 마을인 제 고향으로 이사 오시게 되었다면서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외아들을 낳아 기르시면서 타향살이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집을 본 적이 있거든요.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이더군요. 생계도 참 어려웠을 것이고, 품도 많이 팔면서 고생도 많이 하셨을 거예요. 그저 상황을 보고 짐작할 뿐이랍니다.

할머니! 사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정말 궁금했던 일이 있었거든요. 아주 빈곤하게 사시는 할머니께서 어떻게 제 고향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동참하시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어렸을 때는 전연 궁금하지 않았거든요. 나이 들어서야 할머니께서 고귀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웃 동네에 혼자되신 부자 권사님이 십 리쯤 떨어진 시골교회에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그 권사님이 할머니와 뜻을 같이하여 고향교회를 개척하셨다면서요. 재산이 많은 부자 권사님이 어떻게 가난하기도 하고 본고장도 아닌 나그네와 같은 할머니를 교회개척에 동참하도록 하셨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신기하고 놀랍지 않나요. 근동에는 부자들이나 능력 있는 자들도 적지 않게 있었을 것 아니에요. 하필이면 빈곤하고 힘없는 할머니였는지 참 궁금했답니다. 지금은 물론 알게 되었지만요.

1935년 3월에 부자 권사님은 할머니와 함께 고향교회를 개척하셨다고 들었어요. 권사님이 어느 부잣집 안채와 행랑채는 물론, 천여 평의 문전옥답까지 매입해서 헌납하셨고요. 그리고 할머니와 외아들인 아버지를 안채에서 거주하도록 하시고, 문전옥답도 경작하며 행랑채를 개조한 교회당을 보살피도록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그 시대에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 아니에요? 갑자기 오두막집에서 부잣집 안채로 거주를 옮기게 되고, 천여 평의 문전옥답까지 경작하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겠죠. 물론 할머니도 정말 놀라셨을 거고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에 따라 형통한 길로 인도해주신 것임을 몇십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꿈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답니다. 하나님께서는 권사님과 할머니의 마음에 소원을 주셔서 함께 교회를 개척하도록 섭리하신 거지요. 그렇게 알고 싶었던 성경을 연구하면서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할머니와 부자 권사님이 안 계셨다면…! 고향에 교회를 개척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3대 독자인 아버지를 낳아 기르지 않으셨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1939년 3월에 넷째 아들인 저를 낳지 않으셨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아차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잖아요. 왜냐구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문에 대한 너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죠. 할머니! 놀라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넷째 손자에게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물을 선물로 주셨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에 안 계셨다면, 제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서 이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겠어요. 그 부자 권사님도 한몫을 감당하신 셈이죠. 개척하신 교회를 통해 제가 예수를 믿을 수 있었으니까요. 할머니! 손자가 옳게 깨달았죠? 이제는 할머니께 여쭈어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답니다.

할머니! 이 손자 너무 많은 세월 울며 살았어요. 방황도 많이 했고요. 생각만 해도 울먹여져요. 아버지께서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셨잖아요. 그런데도 한동안 성경에서 보물이 전연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니 너무 답답해서 울 수밖에 없잖아요.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셨거든요. 지혜를 주셔서 정말 놀라운 보물을 볼 수 있는 눈을 밝혀주신 거예요. 이 가슴에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 마음에 벅차오르는 감사와 찬양, 끓어오르는 뜨거운 사명감, 주체하기 힘든 불타오르는 열정, 이 모두가 넷째 손자의 현재 모습이랍니다. 이 보물을 어떻게 땅에 묻어둘 수 있겠어요. 널리 자랑하고 싶어서…. 지금 할머니께도 편지로 자랑하고 있는 거예요.

할머니! 특히 노후에는 자랑할 것이 있어야 행복하더라고요. 할머니는 분명히 예수님만 자랑하셨을 거예요. 노인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자기 과거 자랑, 판검사인 아들 자랑, 대학 교수인 딸이나 며느리 자랑, 많이 들어봤어요. 손자의 자랑은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성경에서 발견한 보물밖에 없답니다. 손자며느리도 보물을 함께 나누어 가졌거든요. 자기 노후가 너무 행복하대요. 보물을 나눠 가진 참으로 사랑하는 지체들도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대요. 앞으로도 할머니 곁에 갈 때까지 많은 지체들과 보물을 나누고 싶어요. 할머니! 넷째 손자 착하잖아요. 오직 여호와만 찬양하며 살도록 기도해주세요. 할머니!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편히 주무세요.

2020년, 넷째 손자 드림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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