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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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1-29 20:3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최 교수님께


교수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졸업 이후 한 번도 뵙지 못했으니까, 40여 년 세월이 흘렀나 봐요. 신학연구원 시절 교수님의 신약학 강의를 열심히 수강한 제자예요. 교수님은 야윈 몸매에 경건한 성자의 인품을 지니신 분으로 기억에 남아있어요. 힘없는 가벼운 미소가 저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된 거죠. 교수님은 미국에 체류하고 계시는 순수한 복음적인 신학에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하신 선배님의 후계를 한국에서 이어가시는 분으로 전해 들었어요. 첫 학기 개강에 앞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좀 실망했기 때문에 교수님의 신약학 강의에 기대가 더 되더라고요.

입학 후, 첫 학기 신약학 시간에 교수님을 처음 뵙게 되었거든요. 학생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교수님을 기다렸어요. 저 역시 ‘율법과 복음’에 대해 아리송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의 강의에 관심을 가지고 기대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시간이 되어 교수님이 등단하자 학생들이 박수로 환영했지요. 저도 역시 박수를 했고요. 교수님은 기도를 간단히 마치고 신약학 교재를 소개하셨어요. 제 관심은 점점 더 깊어가게 되었거든요. 예수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으로 인해 7∼8년 동안 극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었으니까요. 그 외에도 오른눈이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내 버리고, 오른손이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내 버리라는 말씀도 있잖아요. 모세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은 정말 인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어렵고 무서웠어요. 인간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정말 절망까지 했으니까요. 만일 인간이 실족하는 경우 지옥 불에 들어가거나 눈을 빼고 손도 찍어내 버려야만 하는 길밖에 없으니까요.

교수님은 드디어 율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셨어요. 칠판에 ‘율법의 3 용도’라고 쓰시고 하나하나 차례로 기록해주셨어요. ‘첫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함, 둘째 죄에 대한 심판의 기준임, 셋째 성도 생활의 규범임’이라고 쓰셨어요.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교수님은 하나하나 주제별로 설명을 하셨어요. 어찌 보면 너무 온당한 것으로 받아넘길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진리가 되려면 논리의 일관성은 필수적이잖아요. 세 개의 주제를 일관되게 연결해서 설명을 안 하셨거든요. 말하자면 ‘율법은 죄를 깨닫고 심판을 받은 성도의 생활 규범이다.’라는 말이 되거든요.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전연 말이 되지 않잖아요. 죄를 깨달아 심판을 받고 어떻게 율법대로 살아요. 죄를 깨달은 성도가 심판을 받아 지옥에서 율법대로 산다는 뜻인가요. 그러면 율법은 멸망 받기로 버림을 받은 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인가요?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모세의 율법을 왜 명하셨나요?

교수님! 너무 괴로웠어요. 잘나고 똑똑한 척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절대로 아니에요. 이 문제 때문에 몇 년을 울기도 하고 통곡하며 손이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거든요. 당장 질문을 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가 되었어요. 당시의 수업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무조건 수납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잖아요. 만일 교수님들 강의에 곤란한 질문을 했다가는 학점을 받기 힘들었거든요. 신학연구원이 아니라, 어느 유명한 학자의 연구 결과를 일방적으로 청취하는 강연장인 셈이죠. 교회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목사의 일방적인 이른바 설교를 무조건 받아들여 믿어야 하니까요. 교회마다 신앙 형태나 내용이 각각일 수밖에 없는 이유거든요.

신학연구원을 졸업할 당시까지도 율법에 대한 문제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어요. 졸업 당시 ‘율법 문제’와 ‘문서설’에 대한 파문이 겹치면서 고민과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거든요. 목회냐? 계몽운동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방황하기도 했으니까요. 다행히 강도사 시험에 무난히 합격하여 목회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되었어요. 그러나 ‘율법’과 ‘문서설’에 대한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었지요. 해결 방법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연구하는 길밖에 없잖아요. 놀랍게 하나하나 정리되어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지요.

제가 율법 문제로 고민도 하고 갈등도 겪었다는 것을 아는 한 젊은 성도가 책을 한 권 가져왔어요. 어느 명망 높으신 유능한 목사님이 저술하셨더라고요. 그 목사님은 매우 복음적이라는 평판과 함께 부유한 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이른바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시는 분이었어요. 그 목사님 역시 율법 문제로 많은 혼란을 겪으신 흔적이 엿보이더라고요. 너무 당연하잖아요. 누구나 지성인으로서 학자적 자질을 가지신 분이라면 당연할 수밖에 없거든요. 책 주제가 ‘구원 그 이후’라는 것이었어요. 제목만 보아도 성도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는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잖아요. 결론적으로는 교수님의 이론과 대동소이하여 크게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1990년, 율법 문제로 인해 이른바 장자 노회의 끈질긴 시비가 다시 일어났어요. 강단에 신을 신고 올라갔다는 것과 축도할 때 양팔을 들지 않는다는 것과 십일조를 적극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어요. 역시 율법에 대한 견해차에서 오는 시비였죠. 이로 인해 사이비 신앙 운동이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바로 현실이거든요.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며 죄인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율법 폐기론자들의 집단이 현존하고 있잖아요. 교회의 불미스러운 분파행위가 율법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현재 목사님들이 어느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다가, 어느 때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설교하잖아요. 교회 헌법 가운데 예배 모범에도 없는 안식일이나 십일조는 반드시 율법대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요. 그뿐만 아니라 십계명은 성도가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법이라고 하며 찬송가 겉표지 안쪽에 인쇄되어 있고요. 너무 혼란스럽잖아요. 성도들이 방황하는 이유 중에 하나거든요. 오죽하면 제가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라는 주제로 책을 저술했겠어요. 꼭 교수님의 검증을 받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날이 오기까지 주안에서 안녕히 계세요.

2021년, 체념했던 제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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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님께
김 교수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