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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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08 10:0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방 목사님께

하나님은 세속국가를 지상교회의 치리 도구로 사용


목사님! 주안에서 안식에 드신 지 벌써 20여 년이 흘렀어요. 저는 이른바 명문대학 신학연구원 졸업 2년을 남겨놓고 목사님 교회 학생부를 맡았던 교육전도사예요. 목사님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서 목사님의 관심과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눈망울을 촉촉이 적시기도 했어요. 늦게야 철이 들어 목사님께 실례가 많았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철이 들어가나 봐요. 업적을 쌓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철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나무에 맺은 열매가 점점 익어가듯이…. 오래전부터 버릇처럼 명상할 때마다 두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감지했거든요. 바쁘다거나 면목이 없다는 핑계 등으로 말씀드릴 기회를 잃었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공개서한을 드리게 되었어요.

목사님! 고향이 이북이었죠. 치열한 민족운동을 겸한 복음운동에 열정을 다하셨잖아요. 부흥사로 뜨겁게 활약하기도 하셨고, 반공사상은 물론 애국선열의 후손으로 애국심은 누구 못지않게 강하셨고요. 오죽하면 강단 오른편에 태극기를 게양할 정도였으니까요. 1975년 초에 교육전도사로 임명을 받고 첫 주일에 교회당에 들어서는 순간, 기도보다 지난날의 제 모습을 회상하는 정도였지요. 어쩌면 20대의 제 자화상을 보는 듯했거든요. 저 역시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나라와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국민성서학원’을 설립하여 야학에 열중했으니까요. 그래서 목사님의 정신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그렇게 불편한 점이 많지 않았어요.
1977년 2월, 목사님의 배려와 교회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신학연구원을 졸업했지요. 그러나 진리에 대한 혼란만 더욱 가중될 뿐이었어요. 거기에 하나님 나라인 지상교회와 세속국가를 동일시하는 목사님의 목회 사역도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전도사로 머물러 있는 것이 못내 불편했거든요. 그해 6월, 강도사고시 합격 여부에 따라 다시 낙향해서 계몽운동을 하거나 교회 개척을 하기로 마음먹고 고시에 응했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합격하도록 지혜를 주셨어요. 그래서 목사님께 교육전도사 직을 사임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목사님은 예감이라도 하신 듯이 쾌히 승낙하셨어요. 제가 부족한데도 꾸중 한마디 없으시고 묵묵히 기다리며 바라봐 주시던 목사님의 인자한 모습이 눈에 어른거릴 때가 많았어요.
1977년 9월 교육전도사를 사임한 후, 당장 살고 있던 셋방 전세금으로 뚝방촌 주민들이 사는 서울 동부지역에 장소를 마련했지요. 어느 목사님이 목회하던 장소를 인수하여 교회 개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20여 명 성도가 모르는 사이에 목사님이 전세금을 받아 야밤에 멀리 떠나신 거예요. 영문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잖아요. 전임 목사에게 속은 성도들이 마음을 좀처럼 열지 않고 한동안 제 동태만 살펴보는 거예요. 그해 11월 초, 주일을 맞아 성도들에게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라고 강조하며 위로해주었죠. 이제는 다시 속지 않으시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면서 성경만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목사님! 교회의 보살핌으로 제 학업만 무사히 마치고 얄밉게 사임한 것이 무례한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나 목사님과 뜻을 함께하지 못하면서 더 머문다는 것이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아마 목사님께서도 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셨을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목사님뿐만 아니라 많은 목사님이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분별하지 못하면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국민이라면 신앙과 무관하게 누구나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잖아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어요. 교회와 국가를 상대적으로 동일시하면 안 되잖아요. 3.1절이나 광복절 주일에는 나라 사랑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가 마치 국경일의 경축사처럼 들리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언급한 것을 근거로 나라 위해 ‘순국’하는 것이 마치 복음을 위한 ‘순교’처럼 미화하기도 했고요. 에스더는 나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사랑해서였잖아요. 유대인 모르드개는 바사 나라 하만이 유대인을 모두 죽이려 하는 음모를 알고 왕후인 에스더에게 사실을 알려주었죠. 그러나 에스더는 죽음이 두려워 일단은 주저했거든요. 에스더가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가면 죽게 되니까요. 이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때 잠잠하면 유대인은 하나님이 구원하지만, 에스더는 물론 그 아비 집이 다 망한다고 경고했지요. 그래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며 왕 앞으로 나갔잖아요. 유대인은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에스더의 용단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구원하시거든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4백 년 동안 애굽의 치하에서 번성하게 하신 것처럼 지상교회를 악한 세상에서 양육하시잖아요. 하나님은 세속국가를 지상교회의 치리 도구로 사용하시거든요. 지상교회를 견고케 하시려고 세속국가를 통해 시련도 주고 보호하기도 하시잖아요. 따라서 교회와 국가는 근본적으로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예요. ‘정교분리’를 수평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지상교회가 세워지기를 구하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므로 ‘민족복음화운동’이나 ‘세계복음화운동’ 등은 사회복음주의자들의 신학적 미숙의 결과임이 분명하잖아요.
목사님 곁에 있는 동안 교회와 국가에 대한 신학적 정립을 더욱 분명히 할 수 있었어요. 목사님 앞에서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요. 그동안 혹시라도 염려나 오해를 하셨다면,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지상교회나 세속국가에 대한 만사를 창세 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 섭리해 가시거든요. 신·불신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맡겨주신 각종 은사에 따라 살게 하시잖아요. 이러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한 하나님의 나라인 지상교회가 세워져 가도록 섭리하시죠. 늦게나마 공개서한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부디 주 안에서 편히 쉬시다가 주님 재림의 때에 인자한 얼굴로 맞이해 주세요.

2022년, 미숙했던 전도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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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집사님께
정 목사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