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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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4-18 19:4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이 전도사님에게


“기독교 신앙은 성경을 바로 깨닫는 지성적 작용으로부터 출발…”


전도사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주 안에서 평안하시지요? 전도사님은 이른바 명문신학대학교 재학시절 진리를 찾아 헤매다가 제가 개척하는 초라한 교회를 찾아오셨잖아요. 듣기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아 어느 지방 도시에서 목회를 잘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있어요. 저에 대한 소식도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이단 시비에 걸려 전도사님과 헤어진 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전도사님이 연락을 두절하신 이유일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한동안 나의 과거가 너무 어리석고 미련했던 일들이 많아 말하기를 주저했어요.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동안 나 자신의 과거가 내 노력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창세전에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따른 섭리임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나의 어리석고 미련한 과거가 부끄러워서 감추려고 한다는 자체가 아직도 자신을 미화하려는 치졸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낱낱이 치부를 밝히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나의 과거를 섭리하신 일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여호와의 이름만을 찬양하는 것일 수 있음을 깊이 깨달았거든요. 하나님께서 나를 나 되게 하시려고 많은 사람과 여러 환경을 통해 인도하신 섭리잖아요.
1979년 6월, 성령강림 주일에 전도사님은 처음으로 학생 신분으로 개척교회를 찾아오셨어요. 사람 보기에는 교회당 분위기나 저 역시 초라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전도사님은 뒷좌석 중앙에 앉아 의자 뒤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어요. 모두가 너무 초라해서 보기가 역겨웠을지도 모르죠. ‘성령의 사역’이라는 제목으로, 첫째 제자들로 깨닫게 해서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시는 것이고, 둘째 기록된 말씀의 터 위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창립하여 세우시는 것이라고 성경 강론을 했죠. 강론 도중 전도사님의 태도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몸이 앞으로 기울고 팔짱도 풀어지고 눈을 번쩍 뜨고서 성경 강론에 집중하는 거예요. 순간 저는 강의 수준을 조금 높였거든요. 경건회가 끝나면 전도사님이 인사를 하게 될 거라는 기대를 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냥 유유히 나가시더라고요.
그 후, 전도사님은 2개월 남짓 인사도 없이 계속 교회를 나오셨어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셔서 미소를 지으시며 인사를 하셨잖아요. 원래 순복음계통에서 신앙지도를 받고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고 하셨어요. 아무리 배워도 너무 의문만 많아져 포기하고 장로교 계통의 이른바 명문신학대학교로 전학하셨다고 하셨거든요. 거기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많아 고민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저의 개척교회를 찾아오셨다고 하셨지요. 외곽지역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봉사하고 있었는데 사표를 내고 왔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저는 매우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전도사로 봉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할까 봐 내심 염려도 되었거든요. 다행히 교인으로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셨어요.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전도사님을 통해 학내에 성경 강론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하셨지요. 1980년 1월이죠. 전도사님의 주선으로 20여 명이 넘는 학우들이 청평호수 가에 있는 수양관에서 로마서 공부를 했잖아요. 20여 년이 넘게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을 하면서 반짝반짝 눈에 보이기 시작한 내용을 가르쳐주었죠. 4박 5일 동안 로마서 공부를 다 끝내고 너무 감격해서 모두 울었거든요. 이대로 끝날 수 없다면서 ‘명동 모임’을 만들어 매주 목요일마다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요. 한 주가 다르게 대학생들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모여들게 되었지요. 결국 ‘말씀운동’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었고요. 모임의 명칭을 부탁하기에 제가 지어준 것으로 기억해요. ‘말씀운동’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중대한 계기가 되었어요. 20대에 ‘계몽운동’에 열을 올렸던 제가 ‘말씀운동’에 쓰임을 받게 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내 이상과 포부를 이루려는 어리석음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되는 슬기로움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당시 몇 년 전까지도 ‘계몽운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것이 얼마나 자기 자신의 긍지와 자존심을 갖게 하는 자만하고 어리석은 일임을 일찍이 깨닫기는 했지요. 오직 말씀만을 전파하며 살고 싶은 소원은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전도사님을 만난 후, 급기야 하나님께서 ’말씀운동‘을 일으키셔서 쓰임을 받게 하신 셈이죠. 저는 20대 초기에 하마터면 이른바 ‘성령운동’가로 활동할 뻔했어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막아주셨으니 다행이죠.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은 성경적 기초가 없이 인간의 감성을 바탕으로 일어난 운동이거든요. 그때만 해도 일반적으로 성경을 통해 성도들의 지성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감성을 자극하는 이른바 ‘성령운동’이 주류를 이루었잖아요. 시류에 젖었으면 당연히 ‘성령운동’가로 활약했겠죠. 어렸을 때는 감성적인 접근도 필요하잖아요. 장성한 후에는 지성적인 접근이 아니면 안 되거든요.
당시 나는 이른바 ‘성령운동’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성경을 깊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성이 아닌 의지에 기반한 사상가로 ‘계몽운동’에 투신하여 열심히 살았지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지성과 감성 및 의지적 결단을 통해 가치판단을 하며 살아야 하잖아요, 지성으로 깨달아 감성으로 느끼고 의지적 결단으로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을 하며 사는 이성적 존재거든요. 기독교 신앙은 성경을 바로 깨닫는 지성적 작용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지요. 이는 물론 전적인 보혜사 성령의 고유한 사역이고요. 보혜사 성령은 반드시 기자들을 감동해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깨닫게 하는 사역을 통해 역사하시거든요. 성경의 깨달음이 전제되지 않은 ‘성령운동’은 감성적인 심리적 현상이나 다름이 없어요. 요즘에는 ‘성령운동’이 ‘영성운동’ 또는 ‘영성훈련’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도 해요. 하나의 심리적 방법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운동이죠. 때때마다 전도사님 생각이 나서 드디어 오늘 지상을 통한 공개서한을 드리게 된 거예요. 혹시라도 만날 수 있으면 따끈한 차라도 한잔 나누고 싶네요. 주안에서 안녕히 계세요.

2022년, 잊지 못하는 선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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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도사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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