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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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13 19:4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원 교수님께

“‘글로 써! 쓰란 말이야!’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아요.”


교수님! 고이 잠드셨다는 소식을 늦게 들어서 빈소에 가지 못했어요. 많이 화나셨을 것만 같아요. 총회신학대학원 졸업논문지도를 맡아주셨잖아요. 논문 제목이 ‘기독교 예정론’이었고요. 이제 아시겠죠. 그리고 교수님과는 너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잖아요. 교수님도 눈을 감으실 때까지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셨을 거예요. 제가 너무 무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교수님을 찾아뵙는다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여유를 부리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서라도 송구스러운 태도를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어요. 공개서한을 통해서라도 말씀을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아 글을 올린답니다.

1980년 3월, 제가 총회신학대학원에 입학했거든요. 이른바 명문신학대학 학장님의 ‘문서설’ 파문에 대한 사건으로 교단이 주류와 비주류로 분리되었잖아요. 매우 중대한 진리 싸움이 한창일 때에 저도 ‘문서설’을 반대하는 비주류에 가담하게 되었거든요.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연구를 계속하기도 했고요. 훌륭한 교수님들의 지도를 받아 학기를 거듭하며 열심히 연구에 몰두했잖아요. 제반 연구 과정을 마치고 성경을 통해 정리된 바 있어 ‘기독교 예정론’이란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게 되었지요. 사실 ‘예정론’은 개혁파 신학자들도 언급하기를 주저하는 주제임을 잘 알면서도 도전한 거였어요.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되었을 때 내심 걱정이 되었지요. 교수님이 워낙 학문도 깊으시고 성격이 고정하시며 예민하셔서 글자 하나 문맥 하나라도 잘못되면 통과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졸업논문은 다행히 교수님의 좋은 평가와 함께 무사히 통과됐거든요. 논문 마지막 페이지에 ‘탁월하다’라는 평가와 함께 학자들의 견해가 미흡함을 지적하셨으나 통과시켜 주셨지요. 너무 감사하고 기뻤어요. 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하고 싶어도 성경이 최고의 권위라는 생각에서 주로 성경을 근거 삼아 논증을 했기에 학자적 입장에서 지적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 졸업논문 통과는 진리 투쟁의 촉진제 역할을 했어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창세전의 작정에 따른 예정 섭리가 아니면 성경은 한 구절도 해석할 수 없더라고요. 졸업 후에도 성경을 연구하면서 자주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싶었어요. ‘기독교 예정론’에 대한 확실한 정립을 위해 10여 년 동안 신학을 했어도 결과는 얻을 수 없었거든요. 교수님의 지도로 성경에서 정립한 확실한 결과를 얻은 거였어요. 교수님! 정말 수고하셨고 감사할 뿐이에요.
졸업 후에 교무주임의 배려로 대학부 강사가 되어 선지서 과목을 가르칠 때였지요. 갑자기 노회로부터 이단 시비에 말려 고충을 겪던 중, 교수님께 원정하고 싶어 찾아뵈었잖아요. 교수님이 “무엇 때문에 그래요?”라고 물으시기에 “노회 재판국에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잖아요.”라고 말씀드리자, 교수님은 “율법도 지켜야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교수님의 응원을 받고 싶어 찾아갔는데 이게 웬일이에요. 너무 답답해서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라고 여쭙자, “그럼 해요.”라고 하셔서 여쭈었죠. “우리가 율법을 행하면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나요?”라고 여쭈었거든요. 그러자 교수님은 잠시 생각하시다가 “의가 되는 것은 아니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다시 교수님의 허락을 받고서 “그럼 율법을 범한다 해도 죄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여쭈었죠. 결국 교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거예요.

교수님은 직설적으로 “당신 나를 시험하러 왔소? 그렇게 똑똑하고 잘났으면 글로 써, 쓰란 말이야!” 교수님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요. 주변 강의실에서 강의 중이던 교수님들이 뛰쳐나와 교수님을 진정시킬 정도였잖아요. 저도 교수님의 책망을 듣기가 매우 거북했고 속이 상했어요. 교수님께 면박을 당한 것 같아서 참기가 매우 힘들었지요. 세월이 흘러도 교수님의 쟁쟁한 목소리는 귓가에서 맴돌았거든요. “글로 써, 쓰란 말이야!”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아요. 알고 보면 비록 교수님이 분노해서 하신 말씀이지만, 저에게는 일생의 중대한 교훈이 되었어요. 진리 싸움은 반드시 써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받은 셈이죠. 그 당시 저도 신경이 예민한 상태라서 교수님께 너무 무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후로 교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독교 예정론’ 논문을 보완해서 책으로 출판했지요. 그리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라는 신학 소고 10편씩 묶은 4집과,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비밀인 지혜에 대해 집필해서 출판했거든요. 그리고 ‘성경적 기독교’를 비롯하여 ‘의미분석 성경개론’ 및 ‘성경신학개론’과 ‘성경강론’ 18권을 집필해서 출판했고, 기타 10여 권이 넘는 교재와 그 초안을 집필해 출판하기도 했어요. 교수님의 노여움에 의한 충고의 결실인 셈이죠. 교수님을 뵙기 전만 해도 제가 책을 집필해서 출판한다는 것은 크게 경험도 없거니와 실력이 출중한 학자도 아니라서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거든요. 제가 교수님의 불호령 같은 책망을 듣는 순간 인간적으로는 오기가 발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여하튼 제가 교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잖아요.

교수님과의 불미스러웠던 일을 차분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교수님을 통해 저에게 명하신 말씀으로 믿어져요. 그 결과 열심히 순종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게 될 거예요. 어느 권사님도 7년 동안 성경 공부를 끝내시고 교수님처럼 써야 한다고 독촉하시더라고요. “쓰세요! 왜 안 쓰세요?” 한 달이 멀게 독촉하셨거든요. 말씀하시는 억양과 태도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교수님의 말씀과 전연 다르지 않았거든요. 출판비는 걱정하지 말고 쓰라는 거였어요. 역시 하나님의 명령이라 믿고 1994년에 쓰기 시작해서 2014년 6월까지 20여 년 동안 1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18권의 ‘성경강론’집을 완간했어요. 교수님! 살아계시면 한 아름 안고 찾아가 검열도 받고 ‘탁월하다’라는 평가도 받고 싶지요. 내일은 교계 어른들을 찾아뵙고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보고하려고 약속이 되어 있어요. 교수님이 잠드셨으니까 그렇게라도 해야 하잖아요. 전하고 쓴 것들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잖아요? 교수님! 이제 모두 잊으시고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편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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