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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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0-17 22:2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백 장로님께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하셨으나 다시 모으실 거고요.”


장로님! 주무시는 잠자리는 편안하세요? 철도 없었을 뿐 아니라 사모님 되시는 권사님 말씀대로 경험도 없었던 성경 교사예요. 동역하시는 어른들과 성도님들에게 실망만 드리는 것 같아 늘 송구한 마음이었어요. 장로님 안식에 드신 지 벌써 20년이 되어 가요. 결혼해서 동반자로 사신 권사님도 몇 년 후에 장로님 곁으로 편안히 떠나셨어요. 대선배이신 장로님께 감히 말씀드릴 면목조차 없지만, 지상을 통해 공개서한으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섭리를 자랑하며 전해드리려고 생각했어요.

장로님은 권사님과 일찍이 이북에서 피난 오셔서 서울 도심에 있는 큰 교회를 다니셨지요. 방언을 받으시려고 이리저리 헤매시다가 장로 장립의 기회를 놓치시고 집사로서 저를 만나 성경을 깨닫고 교적을 옮기셨잖아요. 총회로 비화 된 이단에 대한 상소 건이 1988년 9월에 승소 판결로 마무리된 후, 교회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요. 외부에서 장로님들 7~8분이 오기도 하셨고요. 2백여 평의 공간이 협소해 교회당을 건축할 대지를 물색하던 중, 개발 예정지 250여 평을 매입했잖아요. 그러자 노회는 다시 이단 시비를 걸어왔고요. 이유는 강단에 신을 신고 올라갔다는 것, 축도할 때 손을 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너무 한심하고 황당한 일이 다시 벌어지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교회가 잘되고 평안한 것을 그냥 놓아두지 않으시고 시련을 주시는 거였어요.

기존의 장로님들은 거의 노회에 포섭당한 상태였고요. 장년만 수백 명에 이르는 성도 일부는 장로님들과 합세하고, 일부는 뿔뿔이 흩어지고,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신 연세 높으신 집사님들을 중심으로 5~60여 분이 남으셨잖아요. 모두 포기하고 가정교회나 추슬러야 하겠다고 각오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장로님(당시는 집사)과 권사님 몇 분이 찾아오셨잖아요. 장로님께서 “목사님! 이제는 직장에 나가지 마시고 성경을 연구해서 우리 교인들을 잘 가르쳐주세요.”라고 하시면서, “장소도 다 마련됐고요. 생활비나 자녀들 교육비도 또는 사택 경비까지 우리가 책임지기로 했어요. 승용차도 마련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는 주일부터 수고해주세요.”라고 하셨죠. 그러자 어머니 같은 장로님 사모님이신 권사님이 “경험도 없으면서 목회한다고…쯧쯧” 혀를 차시면서, 푸념처럼 꾸짖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눈물이 핑 돌지 않을 수 없었죠. 드디어 이른바 전임 목회자로 등극한 셈이었어요.

교회는 매주 다르게 성도의 수가 늘어나고, 급기야 다시 교회당 건축을 위한 연보를 실시하게 되었죠. 1993년 6월에 은퇴 연세가 지났는데도 장로 장립을 받으시고 교회 성숙을 위해 기도하시며 온갖 노력을 하셨잖아요. 모든 일에 장로가 앞장을 서야 한다며, 임시 교회당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셨지요, 권사님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시고, 장로님은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온종일 수고하셨잖아요. 저는 장로님의 생활 모습을 보며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경 가르치는 교사 명분 하나로 장로님과 같은 어른들의 헌신으로 생활비를 보장받고 산다는 것이 못내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저도 은퇴 후 장로님처럼 무엇이든 경제활동을 해서 성경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후배들의 뒷바라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결국 장로님의 기도대로 건축위원회가 결성되고, 급기야 ‘IMF’ 때 서울 근교에 천여 평 대지를 싼값에 마련하게 되었잖아요. “교회당 짓는다고 진짜 성전을 헐지 맙시다.”라고 당부하면서, 건축허가를 받아 4개월여 만에 교회당을 준공하고 2000년 1월 1일에 입당을 했지요. 경건회 시간에 “기적처럼 마련된 교회당을 볼 때마다 길갈의 돌무더기로 봅시다.”라고 거듭 당부하기도 했거든요. 가난한 동네에서 작은 공간을 세 얻어 시작한 성경 공부를 궁궐 같은 장소로 옮겨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자고 당부했잖아요. 만일 교회당이 돈으로 보이는 순간 분명히 화근덩어리가 된다는 경고도 했고요.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주의를 했거든요.

그 후, 갑자기 성도들은 거의 배로 증가했죠. 장로님은 은퇴하셔야 하는 상황이 되어 다른 나이 많은 장로님과 함께 은퇴하셨고요. 바로 이때 고민이 하나 있었어요. 은퇴하신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을 부모님처럼 잘 모시고 싶었죠. 노인복지에 대한 계획도 있었고요. 연건평 8백여 평에 달하는 본당 공간에서 어른들을 모실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을 찾을 수 없었어요. 몇 번이나 제 연구실로 모시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1층 공간을 사용하도록 했던 것이 지금도 정말 후회스러워요. 장로님! 불편하셨으면 용서하세요. 그때를 뉘우치면서 지금은 제 연구실을 주일에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개방하고 있거든요.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후회하며 철이 드는 것 같아요. 과거 노후에 잘 모시고 싶었던 어른들이 대부분 안식에 드셨어요. 지금은 앞에 땅 1천여 평을 더 매입한 대지에 연건평 5백여 평의 노인복지관 ‘호크마 하우스’를 건축해 원로분들이 편안히 거주하고 계세요. 설령 후배들이 복지관에 거주하며 기뻐하더라도 질투하지 마시고 함께 기뻐해 주세요. 복지관을 드나들 때마다 이미 안식에 드신 어른들을 생각하며 많은 아쉬움을 느낀답니다.

그 후,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교회가 갑자기 폭풍이 몰아닥쳤어요. 좀 불미스러운 일이라서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워요. 하나님께서 더 견고케 하시려는 뜻으로 확신하고 있어서 굳이 잠드신 장로님께까지 말씀드리고 싶진 않아요. 머지않은 날,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하셨으나 다시 모으실 거고요. 때리셨으나 다시 싸매실 거예요. 꺾어진 갈대 마저 꺾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온 성도에게 값진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시련을 통한 실습을 시키시는 것으로 분명히 확신하고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다시 모으시고 싸매셔서 더 견고하게 세우시는 날이 머지않아 분명히 올 거예요.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이 분명하니까요. 장로님도 분명히 믿어지실 거예요. 장로님! 부활 승천하신 주님 곁에서 간곡히 기도해주세요. 그날이 오면 다시 한번 공개서한을 드릴 것을 약속드리지요. 부디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주님의 품에서 편히 주무세요. 바로 곁에서 잠드신 권사님도요.


2022년, 철들어가는 교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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