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라이프

 
작성일 : 12-09-04 09: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도의 영적 예배


요즘 ‘교회체제개혁’의 선봉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의 미련함을 토로하는 성도가 있다. 하나의 진리체계를 가진 성경을 누구보다 많이 연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아무도 안해도 혼자서라도 한다는 사명으로 살아온 성경신학연구소 박용기 소장이다.

‘성령께서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 예배의 삶을 이렇게 살게 하시는구나!’란 생각이 든다. 매주 경건회 모임 때 ‘오늘의 기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성도로서의 영적 예배를 간구하는 내용이다. 그 동안 ‘예배란 무엇인가?’(무엇인가Ⅱ, 박용기 저)를 여러 번 읽었지만 막연했던 성도의 영적 예배를 박소장을 통해서 조금 알게 되는 것 같다.

성도가 드리는 성경적 예배(산 제사)가 무엇인지를 글로 써주었다. 또 성도가 드려야할 예배가 무엇인지를 매주 ‘오늘의 기도’를 통해 들려주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죄 된 육신의 소욕을 냉혹히 고백하면서 진리를 위한 성령의 소욕을 구하는 체제개혁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로서의 삶이 자기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되어 지체를 사랑하는 제물로서의 삶이란 걸 진정 모르고 있었다. 

신약시대에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가르치신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가 있다. 성도들의 예배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예배를 기초로 삼아 드릴 영적 예배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동참하여 살아가는 삶이다. 즉 그와 함께 옛사람(육체의 소욕)은 죽이고 새사람(성령의 소욕)은 살리는 삶이다. 이 삶은 영적 예배의 구체적 원리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며, 받은 은사 따라 사랑의 봉사를 통하여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지체)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삶이다.

이러한 성도의 영적 예배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섭리이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을 소원하던 박소장을 통하여 지금 우리 눈앞에서 보여주고 계신다. 돼지우리에 처한 탕자같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육신의 소욕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한다.

그래서 날마다 육신의 소욕은 죽이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게 하라는 소원을 갖게 한다. 그 소원대로 ‘교회체제개혁’이라는 성령의 결실을 맺게 한 것이다. 바로 교회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이심을,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의 삶이 성도의 자리임을 고백하게 하심으로 성도인 우리로 무장시켜 간다.

비진리와의 싸움(투쟁)에서 싸워 이기는 교회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신령한 교회를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함으로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한다. 이를 위하여 성령께서 오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강권하신다.

마비되었던 나를 일깨우는 아픔이 있다. 여호와 경외하는 자녀로 가르치기에 소홀했던 학부모로서의 고통이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학교를 통하여 잘 가르치면 대학생이 되어서는 더 열심히 성경 공부하는 신앙인이 될 줄로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자녀가 성경을 통하여 분명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이 있어야 했다.
내게 주신 성도로서의 삶을 고민하게 된다. 교회를 통하여 자기 귀를 즐겁게 해주실 하나님을 바라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맡겨주신 어린 성도에 대한 사랑의 수고가 없었음에 가슴이 저민다. 정작 아프다고 울어야할 자녀는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있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박소장도 이런 심정으로 토로하는 것일까.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배윤리 권사 (교회동역자협회 / 객원기자)

성도로서의 삶
유연성 있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