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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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03 20: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예배에 대한 단상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1980년대였던 것 같다. 신정과 구정의 이중과세로 인한 낭비가 많다는 이유로 정부에서는 신정만을(1월 1일)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구정(설날)을 없애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해인가 음식 장만을 위해 미리 와 있던 손아래 동서가 예배 참석을 제안했다. 교회에 다니던 동서는 아직 교회를 모르던 나를 인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름하여 송구영신예배라고 1월 1일 0시(12월 31일 자정)에 시작되는 예배였다. 음식 냄새로 머리도 아팠고 예배의 형태도 궁금했던 나는 얼른 승낙을 했다. 예배의 이름도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지나간 해를 어떻게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맞는다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부지런히 음식 장만을 마치고, 난 정성껏 외출 준비를 했다. 이 예배를 참석하고 나면 나는 상당히 경건(?)의 모습을 입을 것 같았고, 찌든 마음의 때도 벗겨질 것 같은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갔다.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예배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아파트 상가 2층에 자리한 교회가 집 근처에 있었기에 동서와 나는 시간에 맞추어 가장 경건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낮선 풍경이 궁금했지만 둘러보는 일은 예배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앞만 응시하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드디어 예배가 시작되었다. 형식은 참으로 근엄하고(?) 조용히 진행되었다. 세상 일로 어수선하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며 이상향에 와 있는 듯 했다. 내 안의 상처와 슬픔, 괴로움이 씻어질 것 같았다. 이내 조용하고 엄숙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소위 말하는 통성기도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천사의 표정으로 느껴지던 성도들의 표정은 갑자기 돌변하여 돌격적인 모습으로 되어갔다. 수런수런 웅얼대며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몸을 흔들며 갈구하는 몸짓이 되더니 차츰 무아지경이 되어갔다. 교회 안은 온통 이상한 열기에 휩싸여갔다. 이 열기 속에 목사님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에 손을 얹더니 축복기도를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 분위기에 어리둥절하던 내게도 드디어 목사님의 손이 얹어지고 기도가 시작되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훗날 방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소리였으며, 얹은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아! 이건 뭐란 말인가?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거부의 몸짓을 요구했지만 그 분위기에 순응하는 수밖에 나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어린 날 동네에서 있었던 한판 굿을 보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허탄했다. 인생의 목적에 어떤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었던 곳이 교회라 실망감 또한 엄청났다.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면서 굿판과 같은 예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회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마지막 보루도 무너져갔다.
그러다 늦은 나이에 나는 성경을 배우게 되었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배의 참 모습도 알게 되었다.  예배란 어떤 형식을 통해 정성을 들이며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를 빌어대는 이방 종교의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온전한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드려졌으며 이제 인간이 드리는 불완전한 예배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영적 예배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뜻을 분별하며 받은 은사 따라 봉사하며 일하는 삶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예배와 생활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24시간 모두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생활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분을 경외하며 그 분을 기뻐하고 그 분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이 모두 예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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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하늘 바람
나만의 ‘부자 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