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라이프

 
작성일 : 16-10-05 21:0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당신 곁에서


당신과 마주합니다. 세상 문 닫아걸고 당신과 마주합니다. 외로움으로 물든 밤 이렇게 당신과 마주하면 아픔도 고단함도 눈 녹듯 사라지고 들뜬 마음으로 열아홉 순정한 가슴이 됩니다.

이상합니다. 당신과 마주하기만 하면 아픔도, 서러운 밤 긴 한숨도 펄펄 끓는 심장의 고동 소리로 변하고,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던 육신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의 파닥거림으로 변합니다.

잠 없는 밤, 나는 매번 당신으로 하여 그리움을 익히고 우물 밑의 옥돌인 양 마음을 가라앉혀 봅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당신만 생각하면 가슴이 차오르는 이 생명력, 슬픔 같기도 하고, 그리움 같기도 한 감정의 물살, 가슴은 터질 듯, 이내 주저앉아 기도의 싹을 틔우고 맙니다. 사랑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요? 가슴 터지는 듯, 미어지는 듯, 조급해지는 이 미묘한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신 당신입니다.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는 당신은 제일 큰 사랑입니다.

절망조차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나게 하시고, 고목에도 꽃 피울 수 있는 조화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체취에 나는 넋 잃고, 당신의 밀어에 눈먼 사랑의 피에로입니다. 내 인생 여정에서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으면 안 될 나의 주인입니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소리가 당신의 숨결이요, 내게 있어 당신은 금빛 파도를 타고 돌아온 어부처럼 만선의 기쁨이고, 온밤을 기다리게 하는 나의 님입니다. 당신은 진정 정이월 칼바람 속에서도 봉긋 피어나는 홍매화의 소식입니다. 기인 겨울 장막을 떨치고 뽀조롬히 고개 내민 연둣빛 움의 신선함입니다.

당신은 내게 있어 확실한 반려자입니다.
때로는 무지하고 느낌 없이 은혜를 저버리고 살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삶은 때로는 애달프기도 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한 숟갈의 밥으로 배를 채우게 할 수 없고 한 마리의 오리털로 이불을 만들 수 없듯이 나는 부족한 그 자체입니다. 아는 만큼 힘을 얻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힘을 얻었다 한들 세상의 잣대에 익숙해져 있고 당신의 뜻을 분별하기보다는 아직도 기세가 만만하지 않다면, 자기중심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다는 능력 과시, 글쎄 당신의 뜻인지 모를 일입니다. 당신은 다 알면서도 왜 모르는 척하시는지요. 그럴 때면 나를 쳐 복종하게 하시고, 그 존귀한 이름을 부르게 하소서.

속살을 드러내는 이 밤, 부끄러워 눈을 뜨지 못하겠습니다. 상념의 무리들이 얼씬거립니다. 그림같이 펼쳐질 오색 단풍의 환희도 잠시 머물다 가겠지요.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볼 뿐입니다. 지나긴 날들을 힘겹게 회억해 봅니다. 원체 배우지 못한 것을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었습니다. 남들 다니는 학교에 보내주지 않고 일찌감치 낫과 호미를 내 손에 쥐여준 부모님을 원망한 것이 당신 앞에서 무서운 범죄행위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흉년에 어미는 굶어 죽고, 아이는 배 터져 죽는 짓이었습니다. 유년기 사춘기는 나에게 사치였고,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 한 자락도 사무친 정 한 자락도 심지 못한 채 나는 그 집을 떠나게 되었고, 결혼이 도피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작정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숲으로 난 작은 길을 알게 했습니다. 뿐이겠습니까? 하늘에서 남편에게 보내온 초청장을 거절할 수 없이 기어이 보내드려야 했던 그날도, 살던 집이 경매에 부쳐지고 한꺼번에 들이닥친 두 자녀의 부도로 길거리에 나 앉을 뻔했던 그 생활도, 언젠가부터 몸이 망가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도,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주어서 무서움도 두려움도 잠깐이었습니다. 새겨듣게 했던 당신의 한 말씀, 한 말씀을 눈으로 보게 하지 않았다면 무슨 재주로 당신 곁에 서 있으리오, 이게 영원의 구원을 받은 특권인가요? 당신은 진정 진리이십니다. 당신이 기쁘게 해주어야 내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리고 은혜의 감격을 나에게 담아 주셨습니다. 지켜야 할 것은 제물이 아니라 오직 당시만 기억하고, 당신을 닮아가고 싶은 마음임을 알게 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철없는 시절, 당신을 만나지 않았을 때 살던 집이 불이나 살림살이가 잿더미가 되고, 한때 세상의 즐거움에 젖어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한 것도 당신의 질투심을 무섭게 여기라는 경고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 털어내야 할 것은 털어내야 하나 봅니다. 이 밤 나는 너무 행복합니다. 내게 언제 슬프고 어두운 시간이 있었던가요? 나는 지금 당신으로 하여 탱탱한 가슴입니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날들을 추억하며 당신 곁에서 가벼운 낙엽처럼 상념을 날립니다. 지구본으로 본 세계의 이곳저곳, 늘상 가슴 속에 은밀한 모의를 품고 살았습니다. 원시의 땅 아프리카, 비로소 베일을 벗기 시작하는 중국,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이며, 소련의 대륙도 달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못 쓴 글이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반복적인 일상으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었을까요. 결국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도 당신이었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섭리하셨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나이지만 마음으로라도 가당치 않은 욕심은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동녘의 아침 해가 떠오르면,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가슴 속에 심어 준 값진 보화, 잘 지켜지게 꼭 당신 곁에서 지켜 주리라 믿어 봅니다.

날리는 낙엽 같고, 마른 검불 같은데도 변치 않은 사랑으로 나를 감동하게 하는 당신만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보이는 세상 떠날 때까지 내 마음 밭에 가장 순한 숨결로 번져 내 정한 수업이 끝나게 된다면 어찌 서러워 하리오.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그날,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겁니다. 당신 곁에서.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권사 강미정 (광주 산수서광교회)

흐르는 세월
기다리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