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9-03-08 04: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니체의 신관-성경관 1 : ‘세계사 간섭과 보호자’ 하나님


“신은 생의 근거이자 세계사의 보호자로서, 그에게는 세계사의 경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권리가, 아니 부득이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 (……) 그렇게 됨으로써 신이 인간의 영역에 속박되는 것은 아닌가? 세계와 신을 그렇게 분리하는 철학적 근거는 있는가? (……) 그리스도의 삶에 교의적 형식을 부여하기 위해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관을 기초로 삼는다. 그런데 성서가 우리를 기만하지 않는다면, 이 기초는 우리가 이를 좀 더 진전시켜도 좋을 만큼 아주 인간적·인격적이었다. 이것은 완전히 신기원을 이룩하는 생애가 이를 판단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융해되는 진기한 현상이다. 거의 어떤 사건도 남아나지 않는다. 복음서와 관련된 의문은 얼마간 중단되어야 한다. <사도행전>과 <묵시론>의 그리스도론은 출처가 밝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의 그리스도론과 바울의 그리스도론의 차이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차이점들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진술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Friedrich  Nietzsche, 『유고(1864년 가을~1868년 가을)』, 니체전집19(KGW I4,II2,II4), 김기선  옮김, 서울: 책세상, 2003, 541~542쪽)


길어진 인용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1900)가 1865년 3~4월 사이에 메모한 내용이다. 당시 21세 니체는 고전문헌학을 공부하기 위해 스승 리츨(Friedrich Wilhelm Ritschl, 1806~1876) 교수를 따라 본 대학에서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 그런데 니체는 당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몸의 병은 점점 악화되고 류머티즘과 구토 그리고 매독 치료에 진을 빼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던 고전문헌학도 청년 니체는 그곳에서 그의 초기 사상에 영향을 준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만나기도 한다. 이 무렵에 자신의 성장 배경이 되었던 기독교의 하나님 그리고 성경의 문헌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메모했다. 이후 25세(1869년)에 바젤 대학교 고전문헌학 교수 시절부터 마지막 저작 활동까지 니체는 그의 저서에서 서양 기독교에 대한 전면적 해체를 시도한다. 이러한 일이 시작하기 전 청년 니체가 요약한 신과 성경에 대한 인상을 보면서 이 시대 성경권위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정체 모를 비성경적 종교로 전락하는 현실에서 다시 한 번 성경권위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고자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결국 서구 기독교 해체의 철학자 길을 간 그의 초기사상을 한번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리스-로마 고전에 심취했던 이 청년의 메모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면서 따라가 보자. 니체는 신의 존재를 인간 삶의 근거이면서 이 세계를 보호하는 자로 보았다. 세계 창조주이므로 보존도 신의 몫이며 신의 의무 사항으로 보았다. 니체는 이 부분에서 오래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신이 지금도 세계를 보호하고 있다면 피조 세계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승에 속박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되면 신의 전능성에 문제가 생기고 그렇다고 세계와 신을 연관 짓지 않을 수도 없고, 신을 아예 머릿속에서 비워버리지 않는 다음에야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서 니체는 기독교인의 삶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반드시 ‘신관(神觀)’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신관이 통일되지 않으면 각자 자기 신을 만들어서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뜻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리고 니체는 ‘성경이 진리라면’이라고 전제한 후 성경은 인간적이며 인격적인 책이라고 평가한다. 이 말은 적어도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신이 세계 속에서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인간적인 표현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성경이라는 뜻이 있고, 다른 또 하나는 인간적이라면 이것은 인간이 창작한 것이므로 성경은 신의 존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계시 기록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니체는 당시 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신학의 한가운데서 신학과 성경을 지켜봤다. 예수 그리스도는 도덕교사로 규정이 되었으며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은 독일 신학계에서 거의 정론(定論)으로 확정된 분위기였다. 그런데 니체는 성경 해석상에 나타나는 놀랄만한 광경을 평가한다. “완전히 신기원을 이룩하는 생애가 이를 판단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융해되는 진기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인간들이 조작한 편집 문서라는 평가부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그 해석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성경을 통해 각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로 불렀던 것처럼, 자기 방식으로 신을 믿는다는 비판도 포함하다. 다양하고도 무차별적인 해석 앞에서 청년 철학자는 ‘성경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의 사상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를 일관되게 우선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는 극단적이므로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는 없으며 누구나 자기 좋은 대로 자기 신을 만들어 숭배한다는 비판을 열어놓는다.

21세 그리스-로마 고전에 몰두하는 청년철학자 니체에게 성경은 이후 점점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절대진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점점 ‘하나님은 죽었다’는 명제를 선언하는 반기독교도가 된다. 우리는 니체의 생애와 그의 고민을 그 메모를 통해 분명히 읽어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관 즉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성경관임을 감지할 수 있다. 지혜의 근본인 ‘여호와 경외’ 그리고 그 여호와를 아는 명철의 유일하고도 확고한 토대인 ‘성경진리’에 대한 확증적 지식, 이 두 가지는 청년 시절 고뇌의 본질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올바르고 건전한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그리고 성경진리를 깨닫게 하여 여호와만을 경외케 하는 사역이야말로 인간의 공로가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무한한 은혜이며 그분의 사역임을 명심하게 된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2~14).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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