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03-08 09: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마흔 하나. 민중신학과 오순절주의의 대립, 인간중심주의로 퇴락한 기독교


1970~80년대 세계의 신학계는 기독교를 성경권위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주의로 변형시키고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érrez, 1927∼)가 남미에서 창시한 정치사회적 운동인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 解放神學), 흑인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맞서 인종차별철폐 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의 기독교 시민사회운동이 대표적 사례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간으로서 권리 회복과 공존의 가치 증진에 대한 세계 시민의 여론은 모든 대륙에서 다양한 기독교인들의 시민운동과 함께 전개되었던 시대였다. 오순절주의를 중심으로 교회 내에서 벌어진 기독교 신학의 실체 왜곡 내지 변형 즉 성경권위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주관적 체험과 물질적 번영 논리가 교회의 지배적 흐름이 되었는가 하면, 대사회적으로는 교회의 기둥과 터인 성경진리의 권위보다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그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 신학의 세속화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서구의 어떤 특정한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자생적으로 구축된 한국 토종 인본주의 신학이 있다. 한국에서 발생한 이러한 신학 이론에 대해 옥스퍼드대 교회역사가 메클로흐는 이렇게 소개한다. “1970년대 지구 반대편에서는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억압의 환경 속에 또 다른 개신교 해방신학이 부상하였다. 그것은 한국의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이었다.” 세계 신학 사전에 ‘민중’은 고유명사로 등록되어 있다. 즉 앞서 살펴본 해방신학이나 인종차별철폐 운동은 모두 서구 사상의 이론적 토대와 체계 내에서 만들었지만, 민중신학은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중’이라는 “교육적으로 숙련된 노동자들”(402) 계급이 주체가 된 신학 운동이라는 점이 특이하다고 평가한다.

다시 메클로흐의 설명을 들어본다. 한국의 민중신학은 “남미의 해방신학자들과 달리 마르크스주의적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민중신학자들은 북한의 마치 왕조와도 같이 왜곡된 김일성(Kim Il Sung)의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도, 북한의 잔인함과 비인간적 만행 이면에 놓인 ‘자급자족’(주체사상의 모토)에 대한 올바른 한국식 개념을 추구한다.”(402-403) 하지만 (2009년) 매클로흐의 이러한 주장은 이후 북한이 보여준 면모를 보면 그들이 말하는 주체사상으로는 결코 자급자족할 수 없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내몰면서 주체사상의 그 이론적 취약성과 허구성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민중신학이 말하는 ‘한국식 개념의 자급자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를 실현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남한이 입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주체사상까지 사상의 토대로 삼고자 하는 민중신학이나 비성경적 신비주의까지 동원하는 오순절주의는 모두 한국 교회에서 성경의 권위가 어떻게 붕괴해 갔으며 기독교가 인간중심주의의 한 종파 운동으로 변질·변형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민중신학의 확산 당시 같은 시기에 미국 교회의 영향을 받은 오순절주의와 이론과 실천에서 대립했다. 민중신학이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재벌 권력이 저지르는 불법과 억압에 맞서는 정치적 투쟁이 그 방향이었다면, 오순절주의는 국가와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을 축복했으며 정부를 향한 정치적 투쟁을 좌익운동으로 규정하면서 미국 보수주의처럼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맞섰다. 그리고 오순절주의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며 종국적으로 물질적 축복이 곧 하나님의 복으로 동일화하여, 경제발전 과정을 문제시하는 민중신학을 반대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 내의 이 두 진영의 대립에서 경제적 구조와 환경을 억압으로 비판하는 민중신학은 경제성장을 옹호하는 오순절주의의 대사회적 영향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면이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교회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두 운동은 모두 교회의 절대표지 하나님의 말씀 성경권위에서  점점 멀어졌다는 점이다. 물질과 건강의 축복을 중생과 성화 교리로 일치시키려는 오순절주의와 경제적 풍요가 야기하는 다수의 소외 계층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의로운 길이라고 하는 민중신학은 모두 인간중심주의다. 비록 두 진영이 모두 현실적으로 각각 설득력 있는 주장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 주장이 각각 하나님의 말씀 성경 진리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대해서는 근본 바탕부터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성경권위가 추락하면서 전개되는 교회 내의 모든 신학은 겉보기에 그 모습은 기독교처럼 보인다. 그리고 대다수의 공감대를 만들기도 한다. 개인의 건강과 물질적 축복, 구국(救國)의 이념, 경제정의 실현, 공정한 분배 등 모두 인간 사회가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들이며 설득력이 매우 강한 이념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된다고 하여 이 모든 것을 모았다고 성경진리 중심의 기독교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진리는 항상 부분들의 합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본질적 물음이다.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는 각 개인의 현실적 이해득실을 초월해서 창조주와 심판주의 살아계심을 확증하는 객관적 진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감동하는 실천도 기독교의 객관적 진리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222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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